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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아 Oct 31. 2020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요

몸의 뿌리에 숨은 불안

벌어도 벌어도 불안한 사람들

A 씨는 홀어머니 아래서 형편이 어렵게 자랐습니다. 행복한 결혼을 꿈꾸었지만, 자신도 엄마처럼 삼십대에 이혼하고, 아이 둘을 홀로 키웠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양장일을 하면서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부동산 투자에 눈을 떴고, 재능과 노력, 또 운이 받쳐주면서 제법 잘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주변에서는 50대 후반이 된 그에게 '이제 편하게 살아도 된다.'고 했지만, 그는 그 말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부동산 투자와 관리로도 바빴지만, 본업인 옷 만드는 일도 계속했습니다. 거기다 장례 지도사 자격증까지 땄습니다. 낮에는 양장 일을, 저녁에는 장례지도 일을, 주말에 틈틈이 부동산 매물을 보고 세입자를 관리하는 일까지, 엄마와 주부라는 역할과 병행하기를 몇 년째. 

그러던 중 임차인에게 소송을 당하면서 일이 벌어졌어요. 잇단 소송과 패소는 물론이고, 마침 경기가 나빠져서 부동산 매매도 되지 않아 여러 이중고를 겪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졌습니다.


그는 몇 달 간 재활치료를 받았습니다. 몸이 삐딱하게 틀어지고 말이 어눌해졌지만, 다행히 걸을 수 있게 되었고 손의 감각도 많이 돌아왔습니다. 그가 가게 문을 다시 열었을 때, 손님들은 그만하길 천만다행이라고 그를 위로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뜻밖의 말을 건넸습니다. 장례 지도사의 실무는 관두었지만, 그 상조 업체의 금융상품을 세일즈 하기로 했다면서, 어눌한 말로 금융상품을 소개해갔어요.

소송비용도 많이 나갔고, 부동산 시장도 불안하며, 거기다 병원 치료비에 매우 큰돈을 썼기 때문에 이제부터 정말로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목표의식이 생겨서인지 병마 끝에 약간의 생기가 돌았지요. 삐딱한 몸에 깃든 묘한 생기에 사람들은 숙연해졌답니다.


무엇이 그를 돈에 집착하게 할까?

불안 때문에 성장했고 발전했지만, 그 불안 때문에 삶이 많이 틀어지고 마는 일, 주변에서 많이 보지요? 이 같은 뿌리 깊은 집착과 두려움, 불안은 1차크라와 관련이 깊습니다.

요가이론에서는 이유 없이 계속되는 불안을 1차크라에 에너지가 막혀 있다고 봅니다. 1차크라는 뿌리 차크라, 산스크리트어로는 물라다라(Muladhara) 차크라라고 하는데요. 물라다라는 바탕, 토대를 뜻하는 말입니다.


이 차크라는 신체, 심리, 관계에서의 지지(support)와 관련이 있어요. 1차적인 생존 감각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이 차크라에 문제가 생기면 안전과 방어, 보호받는 느낌을 갖기 어렵습니다. 생존 자체에 대한 만성적 불안을 겪는 것이지요.

그렇게 되면 돈을 벌어도, 사랑을 얻어도 그저 불안합니다.

돈이나 어떤 관계에 강하게 집착하게 되거나 아니면 완전히 반대의 삶이 펼쳐질 수도 있죠. 자기 토대를 갖는 일을 갑갑해하고 거기서 벗어나려 떠돌 수 있다는 이야기예요. 앞엣것이 집착해서 움켜쥐려 한다면, 뒤엣것은 반대로 겁을 먹고 도망 다니는 셈이지요.


만약 일생을 불안감 속에서 살고 있다는 자각이 든다면, 어릴 적 트라우마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아주 어릴 때 생존에 위협받을 상황에서 처하면 1차크라에 큰 손실이 생깁니다.

이 시기에 극심한 불안정, 불안을 경험하면 그것은 인생 전체의 불안감을 형성할 수 있어요.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에 힘든 부모의 이혼, 폭력, 끼니를 해결하기 힘들 만큼의 가난도 여기에 포함되지요. 또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가정이라도 사랑이 많이 부족한 상황에서 양육된다면 아기에겐 생존의 위협이 되겠지요.  


누구나 가진 근원적 불안감이 있다

트라우마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 안에는 크고 작은 마음의 상처가 있습니다. 다들 더 안정된 환경에서 더 사랑받으며 자랐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아 있죠. 어른의 삶을 살고 있지만, 아이 때 본능적으로 형성된 두려움이 끈질기게 그림자를 만듭니다.

이제 다 컸지만, 여전히 부모의 사랑과 지지를 구하는 그 아이의 마음이 되어 헐떡입니다. 부모의 사랑과 안정감의 대체물로써 돈이나 사랑에 목을 매면서 말이죠.

뿌리 차크라에 생긴 문제는 어린 시절 겪은 불안감과 결핍감을 충분히 알아보고, 그 아이의 마음을 껴안아주는 연습으로 나아질 수 있어요. 깊은 불안감이 마치 주인처럼 나를 끌고 다닌다면, 이제라도 고삐를 쥘 수 있어야죠.          

뿌리 깊은 불안감은 트라우마와 관련 있겠지만, 우리 안에는 그밖에 크고 작은 불안이 늘 숨어 있어요. 게다가 사회가 마치 불안을 권하고 있다는 느낌도 듭니다. 생존 자체가 불안할 때 어떻게 마음을 다스리세요?

불안과 자꾸 마주치는 시즌에는 일상의 뿌리, 내 몸의 뿌리를 찾아야 해요.


요가이론에 따르면 인간도 식물처럼 땅에 뿌리를 잘 내려야 안정감과 풍요로움을 느낀다고 합니다. 혹시 만족(滿足)한다는 말에 발 족자를 쓴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만족한다를 줄여서 족하다고 하기도 하죠. 그럼 발이 있으면 만족한다는 거야? 발을 잃으면 불만족인가? 만족의 어원을 찾다가 그렇게 궁금해 한 적이 있어요. 이때 발 족자는 발이 뿌리, 토대가 된다는 상징어였습니다.

이에 대해 곰곰 생각해보면 좋아요. 왜 만족한다는 뜻이 발이 있다, 뿌리가 있다는 의미인가 하고 말이죠. 지금 발 딛고 선 자리에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만족하는 마음을 일으킬 수 있다는 뜻이 아닌가 합니다. 반대로 지금 이 자리에서 의식이 저 멀리 어딘가로 달아나려 하면 만족은 요원하다는 이야기겠지요.


마음이 흔들릴 때,

지금 내 몸은 땅과 잘 만나고 있나 가만히 봅니다.

꼭 맨발로 흙을 밟고 서야 땅과 접촉하는 건 아니고, 지금 여기에 내 몸과 마음이 함께 있는 자체가 중요합니다.

서 있고, 걷고, 앉아 있을 때, 내 몸이 안정감 있게 지지하고 있나, 마음이 미래로 먼저 가서 걱정하고 있지 않나, 돌아보면 1차크라를 튼튼히 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아주 일상적인 일을 할 때도 지금 나는 뭐하고 있나? 하고 자주자주 물어봅니다. 뭐하고 있나 잠깐 돌아보고 알아차릴 때 땅과의 접점이 생깁니다. 마음이 과거의 나쁜 기억을 되새겨 반응하려는 습관을 내려놓고, 지금-여기에 안정감 있게 머물러 봅니다.


지금 발이 땅에 잘 닿아 있나요?

마음이 여기에 잘 머물러 있나요?

나란 존재의 뿌리는 힘들었던 과거나 두려운 미래가 아닌,

부드러운 지금-여기라는 땅에서,

또 몸이라는 땅에서,

단단하게 뻗어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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