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명상 수업에 와서 자주 하는 질문입니다. 명상을 하면 좋다고 하고, 명상으로 괴로운 마음을 달래고도 싶어서 명상을 배워볼까 하고 왔는데, 몸의 감각을 느끼라는 단순한 지침을 반복해서 주면 살짝 당황합니다. 아마도 훨씬 신비롭고 근사한 것을 기대했나 봅니다. 해서 눈빛 속에 숨은 질문이 보인답니다.
‘이게 다인가요?!’
만약에 이렇게 묻는다면, 이게 다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먼저 지금 내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부터 잘 살펴야 한다고 답하겠습니다.
스트레스가 심하면 사람들은 몸을 잘 인지하지 못합니다. 몸에 주의를 기울일 여력이 없기 때문이에요. 마음이 온통 안 좋은 생각에만 가 있으니까요.
생각과 감정에 많이 허우적댈 때는 몸 감각과의 연결이 거의 끊어집니다. 주의력은 몸을 떠나고, 어떤 날은 종일 몸 없이 존재할 정도죠.
한번은 명상하러 온 중년의 여성이 이렇게 토로했습니다.
"식구들 걱정이 자꾸 떠올라서 도저히 호흡에 집중하기 어려워요."
아이랑 떨어져 지내니까 거기서 신경 써줘야 하는 것도 있고, 작년에 아버지가 암 판정을 받았는데 어떻게 돌봐야 하나, 최근에 오빠 사업 때문에도 걱정이고 하는 온갖 사연들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자신의 호흡을 보는 데 시간을 써보세요.”
이런 지침도 잠깐일 뿐, 회차를 거듭해도 좋아지지 않았어요.
“혹시 어린 시절에 손길을 많이 못 받고 자랐나요?”
제 질문에 그분은 깜짝 놀라면서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그러고는 자신이 어릴 때 받지 못한 보살핌을 식구들에게 계속 투영하느라 늘 마음이 바빴다는, 자신의 오랜 마음 습관을 알아차렸습니다.
그 사실을 알아차리자 평소에 달고 다니던 두통의 원인도 알 수 있었습니다. 걱정으로 온 에너지가 머리로 몰려 있음을, 그것이 길이 아니라는 것을, 몸이 머리의 통증으로 알려주고 있었던 거예요.
"어린 시절에 제가 받고 싶었던 보살핌을 식구들에게 해주고 싶었나봐요. 그건 식구들의 욕구라기보다는 제 욕구였어요."
그분에게 저는 일상에서 틈틈이 몸 감각을 읽으며 그대로 한동안 머물라는 숙제를 내주었어요. 식구들 걱정이 떠오를 때마다 지금 몸 감각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알아차려 보라고 했어요. 머리가 아프면 그 통증을 한발 떨어져서 지켜보되, 어린아이를 보듯이 따듯하게 바라보라고 했죠.
통증아, 빨리 지나가라, 통증이 없었으면 그런 의도 없이, 그냥 보는 거예요.
이건 통증이다 나쁜 거다 하는 마음 없이 단순한 느낌으로 알아차릴 거예요.
또 이때 내 통증이 아니라 '그 느낌'이라고 조금 물러나서 볼 거예요.
감각 자체에 어떠한 해석도 붙이지 않고, 그저 몸을 읽는 시간에, 몸과 마음은 깊은 대화를 시작합니다. 몸을 그저 느끼는 가만한 시간 동안 몸-마음은 연결되고, 그 연결로 면역력이 길러져요. 일단은 자신을 아프게 하는 생각과 감정에서 멀어지게 하니까요. 우리는 자기가 만들어낸 나쁜 생각과 감정 속에 있으면서 그것이 내가 만들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