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운동을 가장 많이 시작하는 시기는 언제일까요? 여름휴가를 앞둔 5월 즈음일 것 같지만, 사실 아직 추운 1~2월이 많아요. 봄이 오려면 멀었지만 해가 바뀌면 뭔가 도전하고 싶습니다.
그 계절만 되면 드는 기분이란 게 있어요. 또 자기만의 계절 기분도 있습니다. 제 친구는 무언가를 시작하는 시점이 언제나 가을이었다고 했어요. 찬바람이 불면 괜히 마음이 급해지면서 어학이든 운동이든 이직이든 연애든 계산 없이 그냥 저질렀다(!)고 하더군요. 이상하게 그해 첫 찬바람에는 뭔가 있다는 겁니다.
생리학에서는 그걸 빛의 양에 따른 호르몬의 변화로 설명하지요.
해가 오래 뜨면 기분이 위로 올라가요. 여름이 긴 나라의 사람들은 표정이 밝습니다. 추운 나라 사람들은 어쩐지 좀 심각해보이죠? 함부로 웃지 않습니다. 이것만 봐도 왠지 빛과 기분에 연관성이 짐작이 되지요.
세로토닌은 빛을 기다리는 호르몬이에요.
그 반대편에는 멜라토닌이 있어요.
멜라토닌은 어둠을 관장합니다.
세로토닌이 낮아질 때 나타나
우리를 잠재우는 역할을 해요.
세로토닌은 행복감,
멜라토닌은 마음의 안정을 주관해요.
그런데 세로토닌과 멜라토닌은 두 가지 호르몬이 아니에요. 한 호르몬의 앞뒷면이죠. 빛에 따라 작용이 바뀌기 때문에 이름을 따로 붙였을 뿐이에요. 아미노산 중 하나인 트립토판이 세로토닌에서 멜라토닌으로 바뀌어가요.
뇌 한가운데 시교차상핵에 그 바꿈 단추가 있거든요. 시교차상핵은 생체 리듬을 관장하는 곳이에요. 빛이 많아지면 이 바꿈 단추가 눌러지고, 그 정보가 송과선에 전달되어 멜라토닌에서 세로토닌으로 바뀝니다.
그러니까 빛의 양에 따라 행복감과 안정감이 계속 교차돼요. 빛이 많은 낮은 행복감에, 빛이 적은 밤은 안정감에 지배를 받는 식입니다.
계절로는 봄-여름은 행복감에, 가을-겨울은 안정감의 손아귀에 있죠. 봄은 겨우내 깊은 안정감에서 행복감으로 갑자기 점프하는 때예요. 햇볕 양이 크게 느는 탓이죠.
봄이 올 즈음엔 행복감이 올라간 만큼, 안정감은 떨어져요. 기분은 좋은데 잠이 오지 않아요. 설레는데 불안하죠. 웃다가도 문득문득 슬프며, 슬프지만 세상이 아름답게 보여요. 그러니까 삶에 빛이 얼마만큼 들어오느냐에 따라 기분이 출렁출렁 달라집니다.
《동의보감》에 ‘사계절의 기후에 맞게 정신을 조절한다(四氣調神)’는 내용을 보면 어떤 계절엔 어떤 기분으로 살면 좋을지를 말해주고 있어요. 빛에 따라 조절되는 기분이긴 하지만, 그 계절에 맞는 자연스러운 마음을 활용하란 이야기입니다.
* 가을에는 마음을 깨끗하게
절기상의 가을은 8, 9, 10월이지요. 8월이면 한참 여름휴가를 떠나는 사람도 많은데 하늘에는 벌써 가을이 옵니다. 새벽에 일어나면 한여름인데도 찬바람이 조금 불어와요. 바람의 온도가 달라지면 마음의 온도도 달라집니다. 봄바람에 들떴던 마음이 찬바람에는 차분하게 내려가요.
가을철 석 달을 용평(容平)이라고 한다. 이때는 천기는 쌀쌀해지고 지기는 맑아진다. 따라서 일찍 자고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되 닭 울음소리와 함께 일어나고 마음의 뜻을 안정되게 하여 가을의 숙살지기를 부드럽게 하며, 신기를 거두어 가을철의 기후에 적응하게 하고, 마음속에 다른 생각이 없게 함으로써 폐기를 맑게 해준다. 이것이 가을에 적응하여 거두는 기운을 길러주는 방법이다. 이것을 거역하면 폐를 상하게 되고 겨울에 가서 손설을 하게 되며, 겨울의 감추는 작용에 공급되어야 할 것이 부족해진다.
여름의 한가운데인 것 같은 8월은 이제 절정에 이르렀다는 생각을 하게 마련이에요. 올 한해 들뜬 기분의 정점이구나 하고 무의식적으로 알아차리죠. 다들 휴가 끝에 오는 이상한 기분을 기억할 겁니다. ‘잘 놀아서 즐거웠어.’나 ‘아, 일하러 가기 싫다.’만이 아니라 뭔가 차분해지면서 엄해집니다. 이 기운에 붙어 있는 이름은 숙살지기(肅殺地氣)입니다.
숙살지기란 떨어뜨리고 죽이는 서슬 퍼런 기운을 말합니다. 가을은 무성한 나뭇잎을 거둬가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죠. 겨울에 알맹이만 남겨 저장하기 위한 자연의 커팅 작업이 시작되는 때예요.
이 거두어감은 마음가짐으로도 이어지지요. 여름날 들뜨게 했던 감각 가운데 계속 붙잡고 싶은 알맹이만 남기고 나머지는 시들하게 버려둡니다. 쓸데없이 잡스럽게 했던 일들, 공연한 약속들은 의미 없게 느껴지는 시기죠. 바로 가을에는 ‘마음의 뜻을 안정되게’ 할 때라서 그렇습니다.
비워라,
잘라라,
쓸모 있는 것만 남겨라,
이런 마음은 가을에 해당하는 장기인
폐의 기능을 북돋웁니다.
폐는 맑은 기운을 관장해요.
쓸데없이 붙은 것을 치우고 버려야
숨을 잘 쉴 수 있어요.
가볍게 숨 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
또 홀가분한 마음 가지기,
이는 가을이 보내는 전언입니다.
*
이처럼 철마다 자연의 기운은 계속 변화해요. 몸의 오장도 그에 따라 기운이 강해지고 약해집니다. 그러면 사람의 마음도 이에 맞게 조절해야 한다는 원리예요. 동의보감에는 이를 받아들이며 사는 일이 ‘죽고 사는 근본’이라고 말합니다. 이를 ‘거역하면 재해가 생기고’ ‘순종하면 큰 병이 생기지 않는다.’고 해요. 이것은 ‘양생의 도’ 그러니까 자기 안의 생기를 기르는 고대의 방법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