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의 최고 치료제, 반려견
순식간에 집 안이 돼지우리가 되어 있었다. 또 시작이다. 마음 한 쪽에 감추어 두려고 애썼던 스위치를 누군가가 기어코 찾아내어 꺼버리는 느낌, 그 후로는 아무것도하기 싫어진다. 귀찮은 몸뚱이를 일으켜 무언가를 만들거나 치우고 싶지도 않을뿐더러, 애써 살려고 발버둥 치는 모든 시도가 다 귀찮게 느껴지는 순간이 나에게는 주기적으로 온다. 그럼 내 공간은 자연스레 돼지우리가 되는 것이다.
끝도 없는 귀차니즘, 밥도 먹기 싫어지려는 순간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다음 주에 엄마 다낭 여행 가는데 마리 좀 맡아주지 않으련?”
타이밍도 잘도 맞추시지, 여행갈 여유도 있고 좋겠네, 순간적으로 비꼬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얻을 게 없을 것 같아 말았다. 어찌 되었든, 내가 마리를 사랑하는 건 내 주변인이라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니까. 서울까지 30Km나 되는 거리를 왕복 운전해서 가뜩이나 무거운 몸으로 그 아이와 강아지 용품을 챙겨 와야 한다는 사실에 이놈의 귀차니즘이 최대치로 발동하려 했으나 마리를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으므로 알았다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집을 치우기 시작했다. 이 지저분한 방 위에 마리의 털과 분진이 휘날리는 꼴을 보고 있으면 한계가 오고 말 터이니, 그건 피해야 하지 않겠는가. 몸집도 조그만 게 발 한걸음 뗄 때마다, 몸 한번 털 때마다 길고 가는 털들은 또 얼마나 흩날리는지 믿기 힘든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를 데리러 가는 차안에서의 나는 음악을 틀어놓고 혼자 몸을 들썩이고 있었다.
집에서 대소변을 잘 보려고 하지 않는 마리의 습관 덕에 하루 한 번 이상의 산책은 의무적으로 해줘야 하지만 젠장, 엄마, 혹은 아빠가 전 날 이 아아에게 뭘 먹였는지 우리 집에 오자마자 마리는 배앓이를 하기 시작했다. 새벽 다섯 시에 현관 앞에 서서 똥 싸러 나가자며 날 재촉하다 못한 그 아이가 응가를 참고 참다가 헥헥대기 시작했다. 그 순간 들렸던 천둥같은 굉음은 3년 전 쯤, 아빠가 그 아이에게 몰래 탕수육을 먹이던 날 듣던 소리 이래로 가장 큰 방귀소리였다.
말없이 마리의 거대한 설사응가를 치워주고 같이 산책을 다녀왔다. 배앓이가 계속되는 것 같아 동네 동물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습식사료에 섞어서 먹이고는 두세 번 더 산책을 시켜줬다. 어렸을 적 내가 심하게 배탈이 났을 때, 엄마의 정성스럽고도 따뜻했던 약손이 떠올라 마리에게도 그렇게 해 주었더니, 마리는 고양이처럼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냈다. (이 아이는 몇 가지 불가사의한 버릇이 있다.)
마리의 배앓이는 이틀간 계속되다가 점차 나아졌다. 그 동안 나는 그 아이에게 약을 먹이고 밥을 챙기고, 산책을 시키고 산책 후 발과 얼굴을 씻겼다. 내 일을 하느라 몇 시간 동안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나에게 불만을 토로하는 그 아이와 짬을 내서 정신없이 놀아주고 그 아이가 거침없이 휘날린 털과 분진을 청소하느라 매일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했다. 수영을 다녀온 후엔 그 동안 혼자 있었던 아이에게 미안하여 한참을 놀아주었다. 다시 그 아이의 밥과 함께 나의 한 끼 식사를 차리고 함께 먹고 치웠다. 그렇게 며칠을 보냈을까, 어느 순간 나를 압도하던 우울증은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었고 집은 거짓말처럼 말끔해져 있었다.
엄마가 여행에서 돌아올 때 쯤 마리가 오기 전과 같은 공간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반짝거리는 내 공간을 보면서 혼자 피씩 웃음이 나왔다. 나는 마리를 쳐다보고는 다시 크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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