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을까, 엄마가 나에게 더 이상 적극적인 스킨쉽을 하지 않게 되었을 때의 내 나이가. 두세 살 터울로 동생들이 태어났고 아마 부모의 관심은 자연스레 더 어린 동생들에게로 옮겨갔을 것이다. 세 남매 중 맏이인 내가 엄마의 품으로부터 일찍 멀어졌던 건 그래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 모른다. 네다섯 살 쯤부터의 여러 가지 단편적인 기억이 떠오르는 놀라운 기억력을 가졌지만 엄마의 애정어린 손길이나 입맞춤은 그 나이 이후로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쯤 막내가 태어났으니 그 아이가 그걸 다 가져갔겠지. 서운한 건 아니다. 자연스러웠던 일이라 생각한다. 막내는 자라도 평생 막내라, 초등학교 입학하고 나서도 꽤 오랫동안 엄마의 손길을 받았던 것 같다. 그러나 막내도 쑥쑥 자라서 중학교에 입학하고 변성기가 오는 미운, 아니, 징그러운 청소년이 되자 엄마의 손길도 자연스레 끊어지게 된 건 마찬가지였다. 자식이니까 사랑하는 마음이야 늘 있었겠으나 글쎄, ‘그 사랑이 예전만 할까’에 대한 의문을 개인적으로 갖고 있는 편이다. 이 '예전만 못하다'는 사랑에 대해 부모들은 반박할수 있을까? 자식을 키워보지 않은 입장으로써 확신할 수는 없으나, ‘품안의 자식’이라는 말이 괜히 있지는 않을 거다. 한번은 궁금하여 중학교에 입학하는 자식을 둔 친구들에게 물어보기도 했었다.
"아 몰라, 빨리빨리 커서 집 나가 지가 알아서 살았으면 좋겠어." 헐, 우리 엄마도 설마 이런심정이었을까? 반은 과장이고, 반은 분명 진심이었을 그 대답, 갑자기 슬퍼진다.
애정표현에 특히나 더 인색한 한국인인지라 우리는 조금 더 자라서 연인이 생기기 전까지는 ‘스킨쉽의 공백 기간’이 생긴다. 한국인이 그토록 ‘가족주의’를 수호하는 이유 중 하나는 손길과 포옹의 결핍으로부터 오는 마음 속 큰 구멍을 빨리 메우고자 하는 심리도 있을 것이라는 추측도 해 본다. 어릴 적의 스킨쉽의 단절을 보상받고자 적극적(?)으로 나를 만져주고 나 또한 마음껏 만질 수 있는 상대를 옆에 두고 싶은 게 아닐까.
스킨쉽이 정신적 건강 뿐만 아니라 신체 건강에도 유익하다는 연구결과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가까운 누군가로부터의 손길을 받으면 뇌의 시상하부에 있는 신경세포에서는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옥시토신은 스트레스를 감소시키고 행복감과 안정감을 높여 주는 기특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 더 나아가 암과 각종 질병에 걸릴 확률을 낮춰 주는 데에도 큰 도움을 준다 하니, 예쁜 호르몬이다. 살면서 적극적으로 만들어내야 할, 인간에게 프렌들리(?)한 호르몬. 기혼자가 독신자보다 암에 걸릴 확률이 훨씬 낮게 나온다는 연구결과는 이런 연유에서이다. (결혼했다면 과연 나는 암을 피해갈 수 있었을까?)
옥시토신을 위해서 원치 않는 결혼을 하라는 건 아니다. (나 같은 비혼주의자들을 위해) 단절된 엄마의 스킨쉽과 연인, 배우자를 만나기 전까지, 스킨쉽의 공백 기간을 채워주고도 남을 존재가 있다. 10년 전 우리 집으로 입양 왔던 막내, 마리와 같은 반려 견, 그들이 바로 그런 존재이다.
팔에 쥐가 나도록 만져줘도 머리를 또 들이미는 뻔뻔스럽고도 귀여운 아이, 한 번의 스킨쉽이라도 더 얻어내기 위하여 사람 무릎에 턱을 괴고 ‘슈렉의 장화신은 고양이’ 흉내를 내는 놈은 여러 영상들을 찾아보아도 마리 뿐만은 아닌 것 같다. 복슬복슬, 포슬포슬한 털의 촉감이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그들은 매일 봐도 매일 심장어텍을 당하기 때문에 평생 자발적으로(?) 만지는 게 가능하다. 쓰다듬어 주는 것 뿐이겠는가. 물고 빨고 부비고 입 맞추고.. 그 아이가 질려서 도망갈 때까지 할 수도 있다.
‘자라지 않는 아이’. 반려동물이 인간과 다른 점은 나이를 먹으면 어느 순간부터 부모의 품 안에서 멀어지는 인간과는 다르게, 그 아이의 일생이 다하도록 ‘품안의 자식’ 노릇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나이를 먹고 노화가 진행되어도 그들은 우리에게 영원히 아기로 남을 수 있다.
비단 비주얼에서 오는 사랑스러움 때문만은 아니다. 강아지를 예로 든다면 그들은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 보호자의 손길이 항상 필요하다. 먹이고 씻기고 옷을 입히는 사소한 모든 일상을 챙겨줘야 하는 건, 성견이 되나, 노견이 되나 마찬가지라, 이 아이가 이제 나이가 들은 할머니라고 인지할 수가 없다. (마리는 올해 열두 살이 된다.)
만져달라고, 놀아달라고, 산책 가자고, 간식을 달라고 보채는 아기 할머니(?)는 사람이 울적해지려고 할 때면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애교를 던지기도 한다. 이런 귀엽고 사랑스러운 할머니가 인간세계에는 없다.
난 힘든 직장 생활을 하면서 부모님 집에서 나오면 안 되었었나 보다. 마리에게 매일 위로와 치유를 받았다면 큰 병은 피해갔을지도 모른다.
심신의 안정과 행복을 원하시나요? 직장생활에서 받은 온갖 짜증나는 일을 단숨에 날리고 싶으신가요? 큰 육아 스트레스 없이도 자식과 같은 사랑스러운 존재를 원하시나요? 반려견, 반려동물과 함께 한다면 가능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