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윤 Feb 26. 2023

핵인싸, 반전의 측은지심

가족의 중심은 댕댕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지켜볼 때나 혹은 눈이 마주칠 때에 마리는 엄마에게 만큼은 항상 불쌍한 얼굴을 하고 있다.      

“얜 왜 엄마를 항상 이렇게 쳐다볼까?”

“뭐 얻어먹고 싶어서 그러겠지.”     

 다른 사람들을 보고는 그런 표정을 짓지 않는데 유독 엄마를 쳐다는 눈빛이 불쌍한 건 처음엔 엄마가 음식을 주는 사람이라 인식하기 때문이라고들 생각했었다. 불쌍한 척, 어리광을 부리는 전략적인 눈빛이라고. 그러나 어느 날 문득 나는 그 표정이 무엇인지 알아차려버렸다. 그것은 엄마에게 맛있는 걸 얻어먹기 위함이 아닌, 도리어 엄마가 짠해서 보내는 눈빛이라는 걸 말이다. 주방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엄마를 빤히 쳐다보는 그 아이의 눈빛은 다름 아닌 안쓰러움이었다음식을 만들고 가족이 먹은 걸 또 치우고, 청소를 하느라 늘 바쁘게 움직이는 엄마가 짠하고 불쌍하게 여겨지는 마리가 표현하는 마음이었던 셈이다.

 


 마리와 가족으로 함께 지내면서 강아지에 대해 알게 된 것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댕댕이도 사람처럼 모든 감정을 갖고 있다는 사실, 강아지도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모든 마음과 감정을 표현하고 전달할 수 있다사랑슬픔분노심지어는 측은지심까지 말이다.

 

  누군가를 종종 빤히 쳐다보는(진짜 사람처럼그 아이의 눈빛은 상대방이 누구냐에 따라 그 느낌이 각각 달라진다. 가족 구성원에 대한 애정도와 마음씀씀이가 달라지니 상대를 대하는 아이의 눈빛 또한 달라지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가령 아빠를 쳐다볼 때에는 보는 둥 마는 둥이다. 거의 아빠와 눈을 안 마주치던가? 아빠는 자신의 끼니를 신경도 쓰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엄마나 언니들처럼 ‘우쭈쭈’ 해 주지도 않을뿐더러, 간혹 본인이 심심할 때만 자신과 놀아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 또한 일방적으로 자신을 놀려먹으며 본인 혼자만 즐거워하기 때문에 그 아이 입장에서는 노는 게 아닌 매번 열 받는 일로 기억될 것이다. 

 예전엔 아빠가 지금보다 건강이 좋아서 자신과 산책을 나가줬을 때에는 그래도 아빠에게 애틋함이 있는 듯 보이기도 했다. 그 아이 입장에서는 아빠가 엄마, 언니들보다 유일하게 더 좋은 점이 있었는데, 산책 나가서 가끔 공원과 같은 공터에 자신을 자유롭게 풀어놔 준다는 점이었다. 사실은 자신을 계속 신경 쓰는 일이 싫었던, 아빠의 귀차니즘에서였지만, 덕분에 마리는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아빠는 종종 마리를 시야 밖으로 잃어버리고 허둥대다가 집 앞에 다 와서 찾을 때도 허다했다. (마리가 집 앞으로 와서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 멀리 나가기를 좋아하는 아빠의 역마살기질(?) 때문에 집에 돌아오는 길이 순탄치 않았을 텐데 도대체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돌아오는 길에 차도는 또 어떻게 건넜던 건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고 심장이 내려앉는다. 

 그런 이벤트(?)가 한 번씩 있을 때마다 우리가족은 경악하다 못해 발칵 뒤집어지고 아빠는 엄청난 타박의 대상이 되고는 했다. 한 번은 낯선 누군가가 길에서 마리를 안고 있을 때도 있었다. 자신이 임시보호를 해야 하나, 아니면 보호소에 신고를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였다고 했다. 동생은 마리를 만약 영영 잃어버린다면, 회사를 그만두고서라도 마리를 찾아다니겠다고 선포했다. 그 좋은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엄포를 듣고 난 뒤로 하얗게 질린 아빠는 산책 줄을 다시는 놓지 않았다.

 지금은 애석하게도 아빠의 건강상태는 많이 좋지 않은 편이시다. 이제 마리는 아빠와 ‘산책’이라는 공감대마저 사라진 셈이다. 아빠를 쳐다보는 마리의 눈빛은 예전보다 더 공허해 졌다.     

 

 반면 나를 보는 눈빛에는 애정이 뚝뚝 묻어난다. 그 눈빛은 신이 나 있고, 자주 수줍어하고, 사랑스런 온기로 가득 차 있다. 오랜만에 보는 날이면 언니 얼굴을 새겨 두기라도 하겠다는 듯 빤히 쳐다보는 그 순한 눈은 어쩜 사람을 그렇게 매번 감동시킬까가슴이 몽글몽글해진다. 언니가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순간엔 세상이 무너지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가지 말라고 붙잡지도 않는다. 보낼 때는 보낼 줄 아는 쿨한 아이, 그렇게 떠나도 다시 또 온다고 믿기 때문일까? 분리불안이 없는 아이가 대견하기도 하고 또 짠하기도 하다.


  가족구성원을 차별(?)하고 상대를 가리는 극명한 마리의 눈빛 때문에 아빠는 마리를 종종 미워한다. 하지만 어쩌겠어. 우리 집 인싸가 마리인 건 어쩔 수 없는 일인걸. 우리 가족은 마리의 아련하고 아스라한 눈빛을 받기 위해 사는 사람들이다.


이전 04화 그냥 나라서 고맙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