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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윤 Feb 26. 2023

핵인싸, 반전의 측은지심

가족의 중심은 댕댕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지켜볼 때나 혹은 눈이 마주칠 때에 마리는 엄마에게 만큼은 항상 불쌍한 얼굴을 하고 있다.      

“얜 왜 엄마를 항상 이렇게 쳐다볼까?”

“뭐 얻어먹고 싶어서 그러겠지.”     

 다른 사람들을 보고는 그런 표정을 짓지 않는데 유독 엄마를 쳐다는 눈빛이 불쌍한 건 처음엔 엄마가 음식을 주는 사람이라 인식하기 때문이라고들 생각했었다. 불쌍한 척, 어리광을 부리는 전략적인 눈빛이라고. 그러나 어느 날 문득 나는 그 표정이 무엇인지 알아차려버렸다. 그것은 엄마에게 맛있는 걸 얻어먹기 위함이 아닌, 도리어 엄마가 짠해서 보내는 눈빛이라는 걸 말이다. 주방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엄마를 빤히 쳐다보는 그 아이의 눈빛은 다름 아닌 안쓰러움이었다음식을 만들고 가족이 먹은 걸 또 치우고, 청소를 하느라 늘 바쁘게 움직이는 엄마가 짠하고 불쌍하게 여겨지는 마리가 표현하는 마음이었던 셈이다.

 


 마리와 가족으로 함께 지내면서 강아지에 대해 알게 된 것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댕댕이도 사람처럼 모든 감정을 갖고 있다는 사실, 강아지도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모든 마음과 감정을 표현하고 전달할 수 있다사랑슬픔분노심지어는 측은지심까지 말이다.

 

  누군가를 종종 빤히 쳐다보는(진짜 사람처럼그 아이의 눈빛은 상대방이 누구냐에 따라 그 느낌이 각각 달라진다. 가족 구성원에 대한 애정도와 마음씀씀이가 달라지니 상대를 대하는 아이의 눈빛 또한 달라지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가령 아빠를 쳐다볼 때에는 보는 둥 마는 둥이다. 거의 아빠와 눈을 안 마주치던가? 아빠는 자신의 끼니를 신경도 쓰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엄마나 언니들처럼 ‘우쭈쭈’ 해 주지도 않을뿐더러, 간혹 본인이 심심할 때만 자신과 놀아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 또한 일방적으로 자신을 놀려먹으며 본인 혼자만 즐거워하기 때문에 그 아이 입장에서는 노는 게 아닌 매번 열 받는 일로 기억될 것이다. 

 예전엔 아빠가 지금보다 건강이 좋아서 자신과 산책을 나가줬을 때에는 그래도 아빠에게 애틋함이 있는 듯 보이기도 했다. 그 아이 입장에서는 아빠가 엄마, 언니들보다 유일하게 더 좋은 점이 있었는데, 산책 나가서 가끔 공원과 같은 공터에 자신을 자유롭게 풀어놔 준다는 점이었다. 사실은 자신을 계속 신경 쓰는 일이 싫었던, 아빠의 귀차니즘에서였지만, 덕분에 마리는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아빠는 종종 마리를 시야 밖으로 잃어버리고 허둥대다가 집 앞에 다 와서 찾을 때도 허다했다. (마리가 집 앞으로 와서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 멀리 나가기를 좋아하는 아빠의 역마살기질(?) 때문에 집에 돌아오는 길이 순탄치 않았을 텐데 도대체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돌아오는 길에 차도는 또 어떻게 건넜던 건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고 심장이 내려앉는다. 

 그런 이벤트(?)가 한 번씩 있을 때마다 우리가족은 경악하다 못해 발칵 뒤집어지고 아빠는 엄청난 타박의 대상이 되고는 했다. 한 번은 낯선 누군가가 길에서 마리를 안고 있을 때도 있었다. 자신이 임시보호를 해야 하나, 아니면 보호소에 신고를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였다고 했다. 동생은 마리를 만약 영영 잃어버린다면, 회사를 그만두고서라도 마리를 찾아다니겠다고 선포했다. 그 좋은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엄포를 듣고 난 뒤로 하얗게 질린 아빠는 산책 줄을 다시는 놓지 않았다.

 지금은 애석하게도 아빠의 건강상태는 많이 좋지 않은 편이시다. 이제 마리는 아빠와 ‘산책’이라는 공감대마저 사라진 셈이다. 아빠를 쳐다보는 마리의 눈빛은 예전보다 더 공허해 졌다.     

 

 반면 나를 보는 눈빛에는 애정이 뚝뚝 묻어난다. 그 눈빛은 신이 나 있고, 자주 수줍어하고, 사랑스런 온기로 가득 차 있다. 오랜만에 보는 날이면 언니 얼굴을 새겨 두기라도 하겠다는 듯 빤히 쳐다보는 그 순한 눈은 어쩜 사람을 그렇게 매번 감동시킬까가슴이 몽글몽글해진다. 언니가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순간엔 세상이 무너지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가지 말라고 붙잡지도 않는다. 보낼 때는 보낼 줄 아는 쿨한 아이, 그렇게 떠나도 다시 또 온다고 믿기 때문일까? 분리불안이 없는 아이가 대견하기도 하고 또 짠하기도 하다.


  가족구성원을 차별(?)하고 상대를 가리는 극명한 마리의 눈빛 때문에 아빠는 마리를 종종 미워한다. 하지만 어쩌겠어. 우리 집 인싸가 마리인 건 어쩔 수 없는 일인걸. 우리 가족은 마리의 아련하고 아스라한 눈빛을 받기 위해 사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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