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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윤 Mar 17. 2023

파리 댕댕이들의 포스

너와 함께 여행을

 가족 중 누군가가 장거리 여행을 갈 채비를 하고 있으면 마리는 궁금해 죽겠다는 눈빛으로 주시하기 시작한다. 나비처럼 생긴 큰 귀를 바짝 세우고 보호자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가는 시선이 귀엽기도 하지만 은근 부담스럽다. 어딘가를 떠날 때엔 짐을 싸면서 계속 그 아이 눈치를 살펴야 한다니까.

 마리에게는, 지금 저 사람이 큰 가방을 싸 들고 어디로 가는지, 무슨 일로 떠나는지 따위는 궁금하지 않다. 중요한 건, 자신을 두고 갈 것인지, 아니면 데리고 갈 예정인지의 여부이다. 큰 짐을 싸는 김에 자신도 싸 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캐리어나, 혹은 ‘숨숨 전용’  가방을 창고에서 꺼내면, 아이는 간식을 줄 때보다 더 기뻐한다. 출발하기도 전에 가방 안으로 먼저 들어가 기다리고 있는 마리를 보고, 우리는 웃음을 터뜨리며 카메라로 그 귀여운 모습을 담아두기도 한다.

 

 2년 전 쯤 마리와 부모님 동반으로 약 2주 동안 전라도 일대를 여행했던 적이 있었다. 장기간의 여행인데다, 부모님과 함께 해야 하기 때문에 동선과 숙소가 편하고 쾌적하도록 신경을 써야 했다. 그러나 여기에 마리가 끼자, 빠르고 합리적인 동선은 고사하고 묵을 수 있는 숙소도 몇 군데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망연자실했었다. 최대한 숙소를 알아본 후, ‘애견동반가능’이라는 표시가 따로 되어있지 않은 곳에 모두 전화를 돌려 양해를 구했다. 고맙게도 흔쾌히 허락을 해 준 분들도 있었지만 보통은 마지못해 알았다고 하거나 큰 리조트의 경우, 직원들은회사가 정해놓은 매뉴얼을 절대 어길 수 없는 입장이었다. 애석하게도 우리나라의 유명 리조트 중 반려견 동반을 허락하는 곳은 아직까지 많지 않다.

 

 마리를 데려갈 수 있는 곳을 맞추려다 보니 동선이 계속 꼬였다. 우리 가족은 이럴 땐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마리를 짐 가방에 숨겨서 입실하는 방법. 그래서 마리의 이동수단으로는 전용 캐리어뿐만 아니라 응급용으로 필요한 ‘숨숨가방이 늘 창고에 있다. 마리는 그 가방이 자기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가족이 어디론가 떠날 때, 그 아이에게는 숨숨가방이 나오는지 여부가 일생일대의 관건이 된다.     

 짐 가방에 들어간 아이는 들키면 안 된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다. 원래도 순둥이지만 그 순간엔 최고의 조력자(?)가 된다. 머리를 숙이고 엎드린 채, 숨을 죽이고 미동도 하지 않는 아이를 신기해하며 우리 가족은 마치 학창시절 보충수업을 거르고 땡땡이치던 소녀들처럼 즐거워한다. 규칙은 가끔 어겨줘야 제 맛이라고 했던가.     

 

 숙소의 문제는 하루 세 번 들려야 하는 식당 문제에 비하면 수월한 편이다. 음식점이야말로 반려동물을 동반할 수 있는 곳은 없다시피 하니, 우린 밥을 먹을 때마다 사장님들에게 아이가 세상에서 제일가는 순둥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사정해야만 한다. 캐리어 속에 미동도 않고 앉아만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인형도 아니고) 절대 다른 사람들 눈에 띄지 않을 거라는 점을 어필하며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허락을 받아 캐리어 안에 있었던 마리는 코를 찌르는 고기냄새와 자기만 빼고 고기를 뜯는 가족의 무정한 모습에 생각보다 자주 분노를 표출했다. 그 아이가 ‘왕!’하고 짖는 순간, 등갈비를 뜯던 시간도 멈추고, 우리의 동작도 멈춘다. 그 모습을 영상으로 담아뒀다면 희극적인 추억거리가 됐을 것이다.


 10년도 더 된 오래 전에, 처음으로 유럽여행을 갔던 적이 있었다. 유럽의 어느 도시보다 기대했던, 로망이자 대망의 파리에 도착한 순간, 기대했던 만큼이나 우아하고 세련된 도시의 모습에 반해버렸던 기억이 난다. 사진으로만 봤던 수많은 노천카페, 우아하고 질서정연하게 정비된 오스만 양식의 건물들, 성당에서 들려오는 파이프오르간 연주와 소년합창단의 성가는, 도시 안을 열 두시간 넘게 쏘다녀도 지치지 않는 아름다움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파리가 가진 모든 모습 중에서도 나를 가장 사로잡았던 건, 센느강 주변에 널부러져(?) 있는 사람들이 뿜어내는 여유와 자유로움, 그리고 파리의 모든 곳을 점거하고 있는 댕댕이들의 모습이었다. 밖의 인도에도, 지하철 안에서도, 화장품 샵에도, 카페 의자에도, 심지어는 정갈한 레스토랑에서도 혀를 내밀고 신이 나 있는 강아지들의 모습을 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심지어 그들은 캐리어 안에 있지도 않았다. 마치 인간처럼, 지하철에서 보호자의 옆자리에 착석하고 있었고 카페에서 마치 커피를 주문할 듯 웨이터를 주시했으며 음식점에서는 왠지 내가 먹던 숟가락으로 떠먹여줘야 할 것만 같은 포스를 뿜어댔다. 보호자, 사람들의 공간속에 어우러져 있던,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당한 댕댕이들의 모습은 꽤나 신박하게 다가왔다. 당시 난 반려견과 함께하던 시절이 아니었는데도 그 곳의 사람들에게는 그저 당연한 문화라는 것이, 강아지를 가족으로 둔 한국인에게는 그저 먼 꿈같은 얘기라는 사실에 슬픈감정이 들었다. 가족을 가족으로서 대하는 태도, 어찌 생각하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이 모습에, 강아지를 키우게 된다면 파리에 가서 살아야겠다, 싶었었다.      

  

 마리를 데리고 매번 사정사정하며, 어렵게 다니던 여행 기억 때문에 선뜻 아이를 데리고 나서는 것이 어렵다. 마리는 곧 우릴 떠날 텐데, 곁에 오랜 시간 있지 않을 아이에게 난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어디를 데려갈 수 있을까? 마리가 이렇게 나이 들어 버리기 전에 파리라도 한번 다녀올걸 그랬나보다. 귀차니즘의 대가인 내가 캠핑이나 차박이라도 계획해야 하는 걸까? 얼마 전 수술한 마리를 보고나서, 캠핑에 대한 영상들을 찾아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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