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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윤 Mar 12. 2023

가족을 안고 병원으로 뛰어가는 일이 아직 재미있는 곳

 “내가 개만도 못해?”

 오래 전, 잠깐 만났었던 그 사람은 일찍 들어가려는 나를 붙잡고는 이렇게 말했다. 마리가 싱가폴에 있는 동생네에서 우리 집으로 옮긴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바다 건너 먼 거리를 온 사랑스러운 천사에게 난 마음이 온통 뺏겨 있었고 떨어져 있는 동안엔 늘 생각나는 마음은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변함이 없다. 


 “내가 개만도 못해?”

 당시 만났던 그 사람이 내뱉었던 수많은 ‘뜨악’ 발언들 중, 가장 싫었던 이 물음을 곰곰이 생각해 봤던 적이 있었다. 그 사람이 던졌던 질문에는 무슨 의미가 담겨 있었을까? ‘개보다 월등해야만 하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물음이었나, ‘개보다 깊어야 하는 애정의 정도’에 대한 질문이었을까, 이 둘 다였을까, 아니면, 그 사람의 머릿속처럼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던 텅 빈 질문이었을까.      

 

 얼마 전 책모임에서는 ‘오리집에 왜 왔니’ 라는 만화책을 다뤘었다. 저 세상 귀여움을 담은 토실토실한 오리그림에 눈을 뗄 수 없었던 책, 책의 저자가 우연한 계기로 집오리를 반려동물로 함께 하는 과정에서 겪는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몇 가지 크게 터질만한 웃음 포인트들이 있었지만 우리 회원 중 누군가는 그 중 하나로, 오리의 건강상태에 안달하는 보호자의 과장된 모습을 들었다.

 

  “툭하면 오리를 안고 병원으로 달려가는 ‘유별남’이 저를 웃게 만들었어요.”     

  

 그는 그것을 유별남과 지나침, 쓸데없고도 재미있는 과잉으로 받아들였고 다른 사람들도 그의 웃음코드에 공감하는 듯 했다. 그러고 보니 열 명 가량 앉아있던 사람들 중 오랜 기간 반려동물과 함께했던 사람은 나를 포함해 두 명 뿐이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들 대부분은 ‘동물은 동물일 뿐’ 반려동물이라는 의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반려동물은 정확히, ‘가족과 같은’ 존재가 아닌, ‘가족’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가족이 아픈데 안고 병원으로 달려가는 행동이 그들에게는 개그로 다가갔던 거다. 반려동물과 함께 해 본적 없는 그들 입장에서는 ‘반려’라고 한들, ‘가축과 가족의 중간 어디쯤’이자, 여전히 ‘인간가족보다는 덜 귀한 존재’로 생각하고 있는 듯 보였다. 마리는 우리 가족들 중 내가 생각하는 1순위인데, 쯧. 


  토론한 주제 중에는 ‘채식주의자’들에 대한 생각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회원들은 육식을 자제하는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육식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이해하는 차원에서 접근하는 게 아닌, 그런 행동자체를 ‘반려동물을 안고 병원으로 뛰어가는’ 행동만큼이나 지나치고 과잉된, 쓸데없는 태도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자리에 홀로 앉아있던 나는 마치, 지구로부터 11억 9500만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토성에 앉아있는 기분이 될 수밖에 없었다.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그들을 100% 이해하고 있는 나로서는 모임회원들 사이에 앉아있는 게 그렇게 낯설었던 적이 없었다.     


  강형욱이 언젠가 보호자들에게 이런 당부를 한 적이 있었다.

 “보호자에게 강아지는 그들이 갖고 있는 다양한 세계 중 일부로서 존재할지 모르지만, 강아지에게 보호자는 세계의 전부로써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 말은 틀렸다. 함께 살아온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나에게 가장 큰 위로와 사랑을 줬던 나의 반려견은 이미 내가 만들어 온 세계의 일부라고 표현하기에는 그 존재가 너무 커져 버렸다. 그 아이는 나의 동생이자, 자식이자, 우울한 멘탈을 달래주는 최고의 소울메이트이다. 아무런 조건 없이 나를 사랑해 주는 천사이기도 한 마리를, 이 정도면 거의 내 세계의 전부라고 해도 괜찮지 않나. 가장 소중한 존재를 안고 백번이고 병원으로 뛰어가는 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한국도 이미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인구가 천만이나 된다고 한다. 인구의 25%라면 결코 소수라고 할 수 없는 큰 비중이다. 반려동물에 대한 문화와 인식이 바뀌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느낀다. 좋은 사람들 틈새에 앉아 책에 관해 얘기했던 그 날, 유독 외롭고 쓸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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