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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윤 Sep 24. 2023

행복은 개나 늑대에게 배워, 인간들.

철학자와 늑대

 지금껏 읽었던 모든 책 중 최고의 책이었다.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 라고 자신있게 꼽을 수 있는 그런 책.     

 반려견과 함께하는 사람으로서 철학자는 반려동물을 통해 느끼는 충만한 감정들을 글로 어떻게 표현해 냈는지가 궁금했었다. 개가 아닌 늑대이더라도 .     

 

 글은 중반까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늑대 브레인을 키우면서 느꼈던 충만한 감정들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나 사유가 아닌, 늑대가 존재하는 방식과 대조하는 인간의 비루한 존재와 생존방식을 부각시키는 분위기로 흘러가는게, 어째,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저자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극단적으로 회의적이고 염세적인데다 더 나아가 인류가 이룩한 문화와 종교, 모든 문명의 힘의 근원을 영장류, 인간이라는 존재의 치졸하고 사기꾼 같은 본성에, 더 적나라하게 얘기하면 섹스에 집착하는 생존방식에 기인한다는 뉘앙스까지 주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쇼킹했다. 안 그래도 사람을 그닥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 이 책으로 인해 인간 혐오증이 더 심해지는 건 아닌지, 책을 덮을까도 싶었다. 인간, 너무 더럽잖아. 

 

 이에 반해 짧은 번식기 이외에 허튼(?)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는 늑대는 서로를 속일 필요도, 그래서 치졸하거나 간사해질 필요도 없다는 점에서 인간보다 우월하다는 주장은 꽤나 신선하게 다가온다. 늑대와 개는 한결같이 솔직하고 우직하며 진실한 존재라는 점에서 인간보다 더 믿을만하다.     

 

 

 난 이미 에세이 초반부터 늑대 브레닌을 사랑하기 시작했던 터라, 인간보다 수명이 짧은 브레닌이 저자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던 지점에서는 책장에 눈물을 뚝뚝 떨어트렸다. 그 상태로 한 시간 넘게 울었던 것 같다. 눈이 얼마나 부었던지 아침에 일어나서도 눈가는 불그스름한 채로 있었다. 그러고 나서도 전 날 생각이 나서 또 눈물이 났다.      

 

 책은 중반부를 넘어가서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중간에 책을 덮었다면 일생일대의 인생 책을 놓치는 꼴이 됐을 터였다. 

 

 책의 후반부에는 심오한 철학과 종교적 사상이 혼합되어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작가만의 이론이 펼쳐진다. 지적 충만감을 넘어 마치 깊은 산속 정상에서 열반에라도 이른 것만 같은 정신적 충격이 한꺼번에 와 닿아 정신을 못차렸다. 브레닌을 잃은 충격이 가시지 않은 상태라 계속 눈물은 나는데 여기에 지적인 희열감을 강하게 얻어맞은 상태가 되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 되었다. 책 때문에 잠을 못자고 밤을 꼬박 새운 건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불교의 사상을 기본으로 깔고 있는 그의 인생론은 테드 창이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서 펼쳤던 심오한 순환 인생의 개념까지 더해져 흥미진진하다. 

 사람은 미래를 위해 ‘투자’라는 명목으로 현재를 희생하며 살지만 미래의 끝에는 죽음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는 한다. 우리는 한 시간씩 더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이지만 대부분 이 사실을 모른다. 시간은 직선과 같은 화살인 인간세계에서는 오히려 내가 가진 이 순간은 더 없이 소중하다. 그러나 순간순간을 있는 그대로 느끼며 살아가는 것은 인간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미션이나 마찬가지이다. 이 불가능한 일을 늑대와 개는 매 순간 해내고 있다. 그들은 순간을 영원처럼 산다. 매일 같은 일상이 반복되고 같은 산책로에 같은 간식, 같은 밥이 나오더라도 그들은 항상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해 기뻐할 줄 안다. 그들의 그런 점이 그들의 시간을 직선이 아닌 순환의 원형으로 만든다는 점은 소름끼치도록 놀랍다. 이것이 인간이 결코 누리지 못하는 순환 인생이자, 그들의 강점, 인간보다 위대하다는 점을 작가는 설파하고 있다. 너무 소름끼치지 않아?


 당시 테드 창의 작품을 영화화했던 ‘컨택트’를 보고 적지 않게 흥분했었는데 이 책은 그 영화에서 받았던 임팩트 그 이상이다. 직선적 시간을 쫓고 현재를 손가락 사이로 다 놓치며 사는 인간은 순간적인 영원을 간직할 줄 아는 순환적 인생을 사는 개와 늑대에 비해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이 묘한 패배감과 무력감 앞에서 생을 살아야 할 의미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를 갖게 된다.

 

 끝까지 시니컬하고 끝까지 인간에 대한 경멸과 연민의 태도를 놓지 않지만 어쩌면 그런 점 때문에 이 작가에게 더 끌리는지도 모른다. 이런 면에 슬프게도 너무 공감하니까.          

 

 새삼 부모님댁에 있는 마리가 너무 보고 싶어졌다. 순간의 영원을 간직할 줄 아는 마리, 나에게 아무리 서운해도 그때뿐이었던 그 쿨한 인격(?)은 그 아이의 그런 인생론(?)에서 나왔던 태도였다. 개가 무슨 인생론이냐고? ‘철학자와 늑대’를 읽어보라. 사고의 대 전환이 일어날 것이니. 나와 너를 보는 눈이 바뀌고 세상과 자연의 모든 만물을 보는 눈이 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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