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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단 Nathan 조형권 Mar 11. 2023

킬리만자로, 아쉬움을 뒤로한 채, 5,300미터의 성취

칠십에 떠난 아프리카 배낭 여행기

이 이야기(2013년 배경)는 저희 아버지인 조승옥 님이 쓰신 글을 제 브런치에 올린 것이니, 미리 양해 부탁 드립니다. 앞으로 10회 정도 연재 계획입니다. 아프리카 배낭 여행 계획하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아침 8시 14킬로미터 떨어진 키보 산장을 향해 출발했다. 어제 도착했을 때는 안개가 끼어 보이지 않던 정상이 아침에 일어나 보니 청명한 하늘에 선명하게 보였다. 호롬보 산장에서부터 길가 모래가 서리에 얼어 있었다. 등산로는 모래와 흙과 돌이 뒤섞여 있고 경사는 아직 완만했다. 출발해서 바로 앞에 있는 작은 언덕을 넘으니 우측에 마웬지봉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호롬보 산장으로부터 고도 300여 미터를 오르면 황무지지대로 들어간다. 관목은 키가 아주 작아지고 군대 군대 말라붙은 풀밭과 맨땅이 보이기도 한다. 이곳에도 희고 노란 영구화가 군락을 지어 피어 있다.  

2시간쯤 올라가니 고도 4,200미터의 라스트 워터 포인트(Last Water Point)라는 간판이 보인다. 표시판 주위에는 개울물도 흐르고 물기가 번져 있는 습지도 있다. 그러나 여기를 지나면 물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이곳부터 점차 사막화되어 키 작은 식물들이 듬성듬성 산재해 있으며 검붉은 색의 흙과 바위만이 보인다. 이곳에서부터 보행이 느슨해지고 힘들어진다. 고산증세를 보이는 사람도 나타난다. 


라스트 워터 포인트를 지나면 가파른 오르막길이 펼쳐진다. 고개를 넘는데 1시간쯤 걸린다. 고개를 넘어 12시쯤 도시락을 들고 30분쯤 올라가니 마웬지봉과 키보봉을 연결하는 새들 지역에 진입했다. 말안장 같이 생겼다 해서 새들saddle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곳부터 전형적인 사막지대가 펼쳐지는데 마치 달나라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곳에서 우후루 피크까지 오르고 내려오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20대 한국인 청년 2명을 만났다. 그들은 마치 개선장군처럼 당당하게 보였다. 정상이 어떻더냐고 묻자 엄청 춥다는 것이다. 젊음이 부러웠고 정상 등정에 성공한 것이 부러웠다. 


새들 진입지점부터 키보 산장까지 걷기가 무척 힘들다. 특히 키보 산장 직전 가파른 오르막길은 정말 힘이 들고 숨이 찬다. 몇 발자국 걷고 쉬어 가기를 반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키보 산장까지 1.46킬로미터라는 표지판이 세워진 지점부터 키보 산장까지 2시간 정도 걸린 것 같다. 


한 시간에 약 700미터를 가는 셈이다. 이렇게 해서 고도 4,700미터의 키보 산장에 도착하고 보니 오후 2시 30분, 그래도 5시간 반이니 여행사에서 책정한 시간보다 30분 빨랐다. 




이제부터 진짜 고산병에 주의해야 한다. 고산병 증상이 나타나면 등산을 멈춰야 하며 상태가 악화될 경우 반드시 하산해야 한다. 또 장비를 철저히 갖춰야 한다. 겨울 산행을 위한 전문 복장을 준비해야 한다. 


키보 산장의 등산객 숙소는 돌로 지은 건물 한 채에 2층 침대에 10여명이 잘 수 있는 방이 있고, 화장실을 수세식이 아니다. 12명이 투숙할 수 있는 방을 배정 받고 들어가니 1층 침대는 모두 차지하고 2층 침대만 남아 있었다. 2층 침대를 오르자니 자꾸 몸이 비틀거려 중심을 잡기 어려웠다. 이를 본 서양인이 입구 부근 1층 침대를 양보해주었다. 옷을 겹겹이 입은 채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6시 경 저녁 식사가 왔다. 따로 식당이 없어 침대가 있는 방에 놓인 간이 식탁에서 식사를 했다. 식사는 수프에 누들로 간단히 했다. 음식을 많이 먹으면 속이 불편해지거나, 만일 고산증으로 구토라도 하게 되면 많은 양의 음식은 부담스러울 것이다. 실제로 숙소 건물 주위 곳곳에는 토한 음식들이 널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소변이 마려 화장실을 자주 가게 되었는데 이런 증상도 고산증이 아닌지 모르겠다. 


저녁 식사를 하고 침낭 속으로 다시 들어갔지만 잠은 오지 않는다. 비몽사몽으로 시간을 보냈는데 10시 30분쯤 되니까 인접 방에 투숙한 한국 단체 팀이 출발하려고 하는 준비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 단체 팀에 합류해 정상 등정을 하려고 나도 일어나 출발 준비를 했다. 배낭은 정리해 침대 옆에 두고 스틱과 카메라만 휴대하고 물은 가이드에게 맡겼다. 


옷은 최대한 따뜻하게 입었다. 하의는 내의와 내가 가지고 간 겨울 바자에 가이드로부터 빌린 겨울 등산용 바지를 껴입고, 상의는 런닝샤츠 긴팔 티셔츠 방한내피 그 위에 방한외피를 걸쳤다. 모자는 겨울용 등산모를 착용하고 방한외피의 두건을 썼다. 이렇게 하니 복장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장갑이었다. 겨울 등산용 장갑이나 스키용 장갑 대신 겨울용 일반 장갑과 털장갑 그리고 면장갑을 지참했으니 말이다. 


11시 쯤 헤드랜턴을 켜고 한국 단체 팀을 따라 정상 도전에 나섰다. 출발하면서부터 화산재와 크고 작은 암석들로 이루어진 급경사 길이 전개되었다. 1시간 정도 지나니 양손의 엄지 검지 중지 손끝이 시려오기 시작했다. 장갑을 벗고 사타구니 부분에 양손을 밀어 넣으니 좀 나아지는 듯 했다. 그러나 이것은 임시방편일 뿐 언제까지 이렇게 하고 올라갈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래서 가이드와 장갑을 바꿔 끼었다. 가이드 장갑도 시원찮았다. 게다가 발끝도 아려오기 시작했다. 추위 때문이겠지만 이것도 일종의 고산증인 듯싶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한국 단체 팀은 발열 팩을 지참하였다.




힘은 점점 더 들고 경사가 완만해질 것 같지도 않다. 이제 체력에도 한계가 오고 몸은 자꾸 비틀거려 넘어지려고 한다. 2시간쯤 올라갔을 때 나는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순간 여러 생각이 스쳤다. 무엇보다 먼저 몸조심하라는 가족들의 호소가 귀에 들리는 듯했다. 호롬보 산장에서 만난 젊은이가 무리하지 말라고 하던 말도 생각났다. 그가 무리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그만큼 정상 도전이 힘들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나는 결국 정상 도전을 포기하기로 했다. 


아마 고도 5,300미터 정도 올라왔으리라. 가이드는 계속 가자고  자꾸 재촉하지만 일단 포기하고 나니 다시 도전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이미 일행의 대열에서 이탈하고 있었다. 


다시 키보 산장으로 내려오는데도 올라갈 때 못지않게 무척 힘들었다. 몸은 중심을 잃고 자꾸 넘어진다. 가이드가 부축해 주어도 마찬가지. 얼마 올라오지 않은 것 같은데 산장까지는 멀게만 느껴졌다. 1시간쯤 걸려 키보 산장에 도착했다. 시간은 이미 날짜가 바뀌어 6일 01시다. 숙소에 들어가서 침대에 누워 있는데 또 한 사람이 포기하고 들어왔다. 


20대로 보이는 일본 여성인데 고산증 증세가 심한 듯 무척 괴로워하고 있었다. 한국 단체 팀에서도 두 사람이 처음부터 아예 정상 등정을 포기했다. 그러니 10명 가운데 2명 정도만 킬리만자로 정상 등정에 성공한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이드에게 아침 일찍 하산하자고 이야기 하고 잠을 청했다. 이미 정상 도전을 포기한 이상 되도록 이면 이 지역을 빨리 벗어나는 것이 고산증 위협에서도 벗어나는 최선의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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