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이 아직 맑은 새벽, 억지로 잠들기 위해 거실과 안방 둘 사이에서 고민한다. 들어가 잘까, 여기서 그냥 자리 잡을까. 이불을 바닥으로 떠나보냈을 아이들과 최애씨가 눈에 선해 휴대폰 플래시를 켠다. 패밀리 침대에 각자 편한 대로 가로, 대각선으로 각기 자리 잡고, 잠들기 전 서로 차지하려고 열 올리던 이불들은 침대 위에 없다. 최애씨는 아들의 발에 가격 당하기 1분 전인 듯한 한 치 앞도 모르는 상황에 그의 티셔츠 사이로 나온 배는 겁도 없이 느긋하다. 세 명의 이마를 쓸어주며 뽀뽀 선물과 함께 이불을 목까지 덮어준다. 이불이 꼼짝 못 하게 등 아래로 껴 넣으며 말이다. -가끔 이를 갈 때면 상냥한 손길로 턱을 잠시 잡아주기도 한다.- 추위를 타는 건지 더위를 타는 건지 도통 모르겠는 최애씨에게는 담요 더하기 이불로 서비스를 해준다. 그리고는 아이들 사이에 누우며 매일 하는 다짐을 또 해본다.
내일은 예쁜 말만 하리라.
눈을 살짝 감았다 뜨자 아침이다. 평온한 아침을 맞이 하고 싶었지만 이미 아이들은 거실에서 옷을 입으며 에너지를 끌어올린다. 이상한 주문을 외우는 듯한 오복이는 안 봐도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추고 있을 것이고, 오팔이는 이 옷, 저 옷, 여름옷, 겨울옷 매칭하고, 계속 고민하며, 인상 쓴 얼굴로 오빠의 소음을 간헐적으로 귀를 막아가며, 필사적으로 방어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음. 사이즈를 보니 5분짜리다. 말싸움이 시작되겠다. 침대 위를 벗어나 바닥에 두 발을 닿을 때 '얘들아, 잘 잤니?'라고 맑은 솔(sol) 톤으로 오늘의 첫 음성을 내보내고 싶은 마음은 가득한데, 오늘도 어려우려나.
향기로운 말은 언제나 상상 중이다
결코, 샤우팅은 아니었다. 복식 호흡을 조금 했을 뿐이다. 여전히 타격감은 제로다. 오히려 와서 안고 뽀뽀를 선물한다. 엄마가 이렇게 만만한 존재라니. - 사실 아무도 화를 내도 모르긴 한다. -
어제의 내가 나름 독하게 했던 결심이 무색하게도. 오늘의 나는, 철저히 무시하고 폭탄을 터트리고야 만다. 폭탄은 나다. 아이들 주변에 떨어진 폭탄 조각들을 밟으며, 스스로 통증에 아파하고, 반복되는 반성과 함께 뾰족한 파편을 수거해 보는 하루를 쓴다. 예쁜 말로 바닥을 닦으며.
오복이는 예민하다. - 모든 사람은 예민하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부정적으로 비칠 수 있는 예민함이란 말은 내 새끼를 보며 긍정적으로 변하게 된다. 그래, 예민하다는 건 주변 환경에 반응을 잘한다는 것이고, 이는 공감으로 이어져 효과적인 커뮤니케이터로 될 것이라 말이다. 실제로, 주변에 친구도 많고 어른들과도, 처음 보는 사람들, 처음 가는 장소에도 잘 적응한다.
5살 시절인가. 아침에 눈을 뜨면 말했다.
"엄마, 아침에 달걀이랑 복숭아, 호두 두 알, 그리고 따뜻한 우유, 홍이장군 주세요."
"아! 엄마,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사도 잊지 않았던 아이. -엄마의 자아는 저녁 버전은 싫었는지 뇌의 주름이 느슨해졌는지 기억도 안 난다. 더 길었음이라.- 주로 건강식만을 먹는 오복이는 지금도 과자, 아이스크림, 빵을 먹지 않는다. 음료도 우유, 물만 마신다. - 다행히 커서 우유를 마시겠다던 결심이 바뀌었다. 엄마, 아빠와 맥주를 마시겠다며, 뿌듯해하고 '건강하자' 건배사를 외치는 오복이다.- 그에 맞춰 우리는 생선구이, 삼계탕, 삼겹살, 소고기, 두부, 솥밥의 여섯 개의 메뉴를 돌려가며 맛집을 검색한다. 둘이 데이트를 나갈 때면 식당가를 몇 바퀴를 돌고 돈다.
"엄마, 오늘은 엄마 드시고 싶은 데 가요." 철든 표정을 하고 말하는 아이. 사장님께 기가 막히게 여러 메뉴를 주문한다. 다 먹을 것처럼. 다 잘 먹는 아이처럼. 음식이 나오면 한 입 먹고, 구역질을 보여주며,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마스크를 쓴다. 새것 같은 한 상은 너무나 너무나 고맙게도 온통, 내 차지다.
"엄마, 나 때문에 살쪘네요. 오늘 만 보 걷게 해 줄게요." 진심의 눈동자로 말하는 아이의 양볼을 살포시 감싸 사랑스럽게 살짝 꼬집는다.
오복이의 숙제가 테이블 위에 펼쳐져있다. 6개월 후의 자기 예언. 5개의 예언 중, 하나만 눈에 띈다. 외식할 때 본인 위주로만 메뉴가 정해져,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며 여러 음식에 도전해 본다는 것이었다. 순간, 내가 아이에게 무의식 중에 너를 위해 희생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주었나. 바늘 여러 개가 갑자기 두근 거리는 가슴을 콕콕 아프게 찌른다. 오복이 맞춤 외식을 할 때마다 혹시 너무 생색을 냈었나, 아니면 오팔 이에게 고맙다고 말하라고 했었나. 아이가 고마움을 느끼는 대신 미안함, 죄책감이란 감정을 가진 것 같아 미안했다. 최애씨와 글을 공유하고,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우리만의 오복이를 위한 금지어를 만들어 본다.
학교 도서관에서 돌아온 아이. 보자마자 두 팔 벌려 품에 안았다.
"오복아, 엄마가 마음이 안 좋았어, 너의 건강과 사회생활이나 많은 경험을 바라며 여러 음식을 권하고 싶었던 건데, 너의 마음에 슬프거나 부정적인 감정이 찾아오게 해서 미안해."
"내가 엄마 마음을 아프게 했어요? 나는 아무렇지 않은데, 내용을 바꿔야겠다. 그럼 안 아프겠죠?
도리어 아이가 처방해 준 말의 약발을 받아 마음이 평온해진다.
언젠가 육아의 언덕 정상에 올라, 고개를 돌려 지나온 길을 내려다보았을 때, 단단해진 두 발은 어쩌면 육아의 언덕이 아닌 나의 언덕을 딛고 올라온 것이 아닐지 상상해 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