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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MU Feb 15. 2024

마법의 주문을 외우다

막담타단 미시기장

   "일주일에 한 개니까 9개만 쓰면 되겠어요."

3학년 반배정을 받은 오복이는 새 학년 새 학기의 설렘으로 방학 막바지, 똑 부러지는 계획을 세운다. 오복이는 참으로 계획적인 아이다. ENTP인 그는 데드라인만은 기가 막히게 칼같이 지킨다. 일주일에 한 번 쓰는 일기 제출일 전날 저녁이면, 책상에 앉는 아이 뒤, 엄마의 답답한 표정을 읽은 아빠는 '일기는 그날의 기분으로 당일에 써야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내 오복이의 대답을 듣고, 알아서 잘 하라며 머리를 쓰다듬으며 하이파이브를 한다.

"일기는 바로 쓸 수 없어요. 제출일까지 더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오복아, 미리 쓰면 급하게 대충 하지 않아서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까?"

에둘러 예쁘게 말해보는 엄마의 말은 그의 귀에 빠른 속도로 스치며 일찌감치 공기 중으로 사라진다. 어떻게 해도 본인이 만족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인지 '미리'라는 단어는 그의 삶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오빠, 우리 아들은 추억거리를 만들고 있어. 나중에 성인이 돼서 추억을 떠올리겠지. 일기 몰아 쓰기 추억."

팔짱을 끼고 뭐가 그리도 재미있는지 얼굴에 웃음이 번지는 최애씨다.

"사실, 나도 그런 스타일이야." 부자의 진한 피를 확인한 아비는 기분이 좋다.

오복이가 공부 -아니 숙제에 - 매진하는 순간을 볼 수 있을까.


  하지만, 진한 피를 의심할 때도 종종 있다. 오복이는 횡단보도를 건널 때면 버스 기사님께 허리 숙여 반가움을 표하고, 친구들의 가족들을 기억하고 멀리서도 아는 체한다. - 그들은 기억을 못 하지만 - 유세현장의 국회의원들과 악수를 하며 새해 많이 받으시라 큰소리로 인사를 하기도 한다. 옆에 있던 최애씨와 나는 멀찌감치 떨어져 잠시 고개를 돌려 외면한다.

"엄마, 오빠가 아는 사람이야?" 오팔이 조차 궁금해하는 그는 우리와 다르다.


   집을 나서기 전, 식탁 끝에서 빈 쪽지를 손으로 가리고 무언가 열심히 적는 오복이. 또 엄마를 얼마나 놀라게 해 줄라고 준비하는지 벌써 기대된다. 엄마가 듣기 싫은 말을 할 때마다 '잠시만요'의 손짓으로, 주머니 안의 쪽지를 꺼내 해리포터가 주문을 외듯 검지 손가을 휘저으며 크게 외친다. 괴물을 물리치듯.


@ Unsplash


막담타단 미시기장 (莫談他短 靡恃己長)

"다른 사람의 단점을 말하지 말고, 자기의 장점을 믿지 말라!!" 용의 전사인 양 눈에 힘을 준 오복이를 보는데 효과가 있는 것인지. 1초간 몸이 굳었다 풀어지는 느낌이 든다. 어이없이 뼈 때리는 그의 말을 듣자니 마법의 주문이 확실한가 보다. 이어서 웃음도 함께 터진다. 얼마나 많이 말했던지, 우리 집 유행어가 되었다. 서로 사랑의 잔소리를 날리는 남매의 대화 속에는 '막담타단 미시기장'이 자주 등장한다.




  아침부터 오팔이가 엉엉 우는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들어보니 침대 끝에 서서 흐르는 눈물을 얼굴 전체에 바르고 있다.

"왜, 어디 부딪혔어?"

"아니, 아빠가, 아빠가, 내가 만들어 준 팔찌를 안 하고 갔어."

"아빠가 씻다가 깜빡하셨나 보다."

"아, 그렇구나."

아침에 눈 뜨자마자 아빠의 흔적들을 확인한 오팔이는 쿨한 여자답게 언제 울었냐는 듯 금세 웃음을 보인다.


다음날 최애씨의 인증샷, 막상 오팔이는 관심이 없어졌다.


   "엄마! 엄마 눈앞에 보이는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답은 정해져 있는 표정을 오팔이가 질문한다.

"음, 반짝이는 우리 딸인가?"

"지금 엄마는! 바로바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을 보고 계십니다!"

지난주부터 오팔이는 홀수가 좋다고 했다. 알파벳 G, 자음 ㅅ, 달리기 기록 7초 등 일곱 번 째이거나 7이 들어가면 행운이라며 신나 한다.


   오복이와 오팔이는 싸우다 사랑하다를 자주 반복하는데, 오팔이가 심술을 부릴 때가 많다.

"오팔아, 오빠한테 그러면 오빠 마음이 많이 아플 거 같아. 오빠 사랑한다고 매일 안아주고 생각해 주면서 행동이 왜 그럴까? 졸리니?"

입을 꾹 다문 채 눈만 바라보는 오팔이가 한마디 한다.

"내 마음속에 마음도둑이 있나 봐요. 예쁜 마음을 자꾸 훔쳐가요." 축 처진 어깨로 속상해한다.

"그렇구나. 엄마 마음속에는 마음 경찰이 있으니까. 잡아서 다시는 못 오게 해 줄게."

"또 나타나면 말할게요."


   "엄마, 엄마는 어렸을 꿈이 뭐였어요? 그런데, 아빠 꿈은 줄 알아요?"

"글쎄, 뭐라고 하셨을까?"

"오팔이 아빠가 꿈이었대요!"

"어머, 정말 신기하다. 엄마도 오팔이 엄마가 꿈이었는데, 엄마 아빠 둘 다 이루었네!"

아이의 눈은 커지고 입꼬리는 올라간다.

"고마워, 오팔아. 덕분에 우리 성공했다."



@ unsplash


무지개처럼 여러 색을 가진 아이들의 빛이 드러날 때, 그들의 모습은 너무나 예쁘고 아름답다.

오늘도 소중한 시간을 감사히 기억하며, 사라지려 하는 예쁜 빛깔의 순간들을 온전히 품 안에 모아 본다.

마지막으로 나를 향해 주문을 외운다.

막담타단 미시기장!



우리가 진정으로 소유하는 것은 시간뿐이다.
가진 것이 달리 아무것도 없는 이에게도 시간은 있다.
- 발타사르 그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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