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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MU Feb 22. 2024

봄을 찾아가다

너에게도 나에게도 오늘은 한 번뿐

"아휴, 울보!"

초등 남아가 요새 즐겨보는 프로는 넷플의 'Captains of the World'와 '빨간 머리 앤'이다.

한 편을 보는 동안 세네 번을 주방에 있는 엄마에게 달려와 앤이 답답하다며 말한다. 

"엄마, 앤이 또 울어요."


Anne with an E  / 우리의 쏜 힘내

   울보가 울보를 답답해하다니, 나도 모르게 한 쪽 입꼬리가 쑥 올라간다. 사실, 오복이야말로 울보다.

작아진 옷을 동생이 입은 모습을 보고 주저앉아 자주 선택받지 못하던 옷과의 헤어짐에 슬픔의 눈물을 보이고, 전에 살던 공원 근처나 버스 정류장을 지날 때면 홀로 나만의 추억에 빠져 그리움의 눈물을 흘린다. 또한, 학교에서 작가와의 만남 시간, 낭독하는 성우의 목소리에 감동의 눈물 자국을 새겨오기도 한다.


   아이들을 울리는 건 쉽다. 

어느 저녁시간, TV에서 옛 노래가 흘러 흘러 내 귓바퀴에서 맴돈다. 무의식 중에 자연스레 흥얼거리며 따라 부른다. 입 밖으로 어떤 가사를 뱉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저 음악에 입과 몸을 맡긴 상태다. 노래가 끝날 때 즈음 남매가 다리 하나씩 붙들고 엄마를 올려다본다. 슬픈 가락이 분명하지만 엄마는 아직도 흥에 찬 모습을 하고 있다. 

"다시는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아이들의 촉촉해진 눈가와 울음을 참는 앙다물고 있는 입을 보니 이유가 궁금하다.

"응?" 되묻고 다시 불러본다. 


god, 거짓말

잘 가 (가지 마) 행복해 (떠나지 마)
나를 잊어줘 잊고 살아가줘 (나를 잊지 마)
나는 (그래 나는) 괜찮아 (아프잖아)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떠나가 (제발 가지 마)
잘 가 (가지 마) 행복해 (떠나지 마)
@ bugs 

   

   알파세대에게 난생처음 듣는 라떼의 '거짓말' 가사는 그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괄호 안을 부르지 않고 건너뛴, feel 충만한 엄마의 음성은 사이좋게 놀던 남매의 눈에 물폭탄을 터트리고 말았다. 둘을 품에 안고 너희말을 지키겠다며 고개를 끄덕이며 약속한다. 웃음을 참는 엄마는 가사에 대한 설명은 생략한다. 아끼고 아껴 다음에 한 번 더 불러봐야겠다는 엄마의 장난스러운 마음은 다른 노선에 오른다.



   구글 포토에 매일 빠짐없이 뜨는 본인들 아기 때의 사진과 영상은 아이들에게는 일과 중 하나다.

'꺄, 너무 귀여워!' 

화면 속의 과거의 나와 같은 말을 합창하며 다음 사진을 보기 위해 끊임없이 넘긴다. 푹 빠져있는 엄마를 보고, 아이들이 질문한다.

"엄마, 사진 속 아기가 좋아요, 내가 좋아요?"

본인에게 샘을 내는 아이들이 귀엽다.

"이 넓은 세상에 오복이는 하나, 오팔이도 하나야. 엄마도 아빠도 하나야. 예전에도 커다랗던 사랑이, 점 커져서 가늠할 수 없어. 너희랑 있으면 엄마, 아빠는 매일이 따뜻한 봄이야내일 또 우리가 함께 했던 봄날들을 만나보자."

사랑은 말과 표정으로 드러내야 한다는 것을 앎에도, 자고 일어나면 커있는 아이들보다 사진 속 아이에 열광한 나 자신을 반성한다. 붉어진 얼굴을 애써 감춰가며 한 명씩 눈을 맞춘다. 볼을 비비고, 뽀뽀 세례를 날린다.



   방으로 돌아갈 시간 9:30 PM, 오복이의 같은 말 퍼레이드가 시작된다.

"엄마, 오늘도 같이 안 자요?"

"응, 엄마 할 일이 너~무 많아."

"엄마, 그럼 5분만 옆에 누워있어 주면 안 돼요?" 문 뒤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고 말하는 오복이다.

"오복아, 네 방에서 따로 자볼까?" 웃으며 권유하는 엄마를 보고 웃기기도 서운하기도 한 아이는 갑자기 눈물을 쏟아낸다. 

"엄마, 나 다 기억나요. 오팔이 태어나는 날부터 오랫동안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는데, 자기 전에 할머니한테 엄마한테 전화해 달라고 울었던 거, 그런 거 다 기억나요." 얘는 왜 도대체 자기 전에 이러는 것인가. 시작된 눈물은 그칠 줄 모른다.

"우리 오복이 기억력이 대단하네. 엄마도 다 기억나는데. 슬펐구나, 우리 아들." 꽉 안아주며 토닥인다.

"그런데 오복아, 그때 우리 영상통화도 자주 하고, 매일 하나씩 열어보라고 선물도 스무 개 넘게 준비했었어. 또, 가을 운동회도 보러 가고, 조리원으로 면회 와서 어린이집 발표회 연습도 자랑하고 다 했었어."

"그래도 엄마를 안고 못 잤단 말이에요."

"맞아. 알았어. 그럼, 5분 누워있을게. 너희가 기분 좋게 잠들었으면 좋겠어."

당연히 같이 누워있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오복이는 엄마가 옆에 있으면, 엄마 손을 잡고, 안고, 설렘이 가득해 꿈나라 입구에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이에게 한마디(이상) 할 가까운 미래의 도화선에 불꽃이 튈 모습이 언뜻 보이지만, 마음을 다잡는다.


@ Unsplash

  얼마 뒤, 엄마의 열 마디 불꽃놀이를 감지한 오복이는 꼭 잡고 있던 손을 놓고 살며시 속삭인다. 엄마는 반 어리둥절과 반 피식으로 발걸음 가볍게 어두운 방을 나선다. - 오복이에게서 최애씨의 모습이 살짝 보였다. -


 "엄마, 이제 나가서 글 써요."





감사함으로, 오늘의 길러진 단단함과 소중함을 마음속의 새기며, 내일을 준비한다.





Photo _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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