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고백을 하자면... 퇴사를 한 후 가장 낯설고 암담했던 마음이 들었던 날은 다름 아닌 일요일이었습니다. 회사를 내 집처럼 다니던 시절에 일요일의 오전은 기절에 가까운 꿀잠으로 채워졌지요. 그러다 타는 목마름 혹은 애달픈 신음 소리를 내는 뱃속의 허기가 물먹은 솜 같은 제 몸을 겨우겨우 침대에서 일으켜 세우면, 금쪽같은 일요일이 얼마 남지 않음을 뉘엿뉘엿 지는 해가 알려주곤 했답니다. 하는 일 없이 금세 깜깜한 밤이 되고 월요일이 시작되기 두어 시간 전이 되면, 스멀스멀 밀려오는 불안감과 두려움이 남은 시간을 바닥에 깔린 안개처럼 채웠죠. 그런 일요일이 참으로 싫었답니다.
그런데 이제 퇴사를 했으니 기쁘게 일요일을 맞이하고 그 저녁은 여유로 충만해야 하는데, 자꾸 애매한 감정들이 밀려드는 겁니다. 그 감정들이 무엇인지 찬찬히 들여다보지도 않고 냉큼 내쫓고 싶은 마음에 별 짓을 다해봤지만, 이미 내 마음 어딘가에 진득하게 눌어붙어, 때때로 존재감이 약해지기는 해도 사라지지 않았더군요. 그러나 세월엔 장사 없다고 몇 년이 지나니 무감각 해지긴 했는데, 문제는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즉슨 토, 일, 주말이 그날 평일이 되고, 심지어 특별하게 아무것도 안 하는 혹은 안 하고 싶은 날이 되었다는 것이지요. 월요일 아침마다 저는 반성과 다짐을 반복합니다. 이런 식으로 주말을 보내는 것은 참으로 헛된 일이다. 어디서 읽은 이런 글도 곱씹어 봅니다. '시간은 쓰면 사람의 것이다. 그냥 두면 쓸모없이 사라진다.'
쓸모없이 사라진 나의 주말들을 쓸모 있게 써야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드디어 저는 주말을 쓸모 있게 쓸 묘책을 책에서 찾아냅니다. 딱 맞게 찾아와 주신 책 신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어떤 유명 작가가 좀처럼 집 밖을 나가지 않는 자신을 위해 생각해 낸 방법인데요, 다음과 같습니다. “ 오늘 오전 10시 역 근처 스타벅스에서 데이비드와 약속이 있음 ”이런 메모를 노트북 모니터 앞에 붙어두고 다이어리에도 큼지막 한 글씨로 써둡니다. 여기서 그가 만날 ‘데이비드’은 바로 작가 자신입니다. 그는 이런 자신과의 '약속하기 방법'이 방 안에서 한 줄이 글도 쓰지 못하고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자신을 카페로 나가 글을 쓰게 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많은 작가들이 그러하듯이 글이든 그림이든 일단 시작하면 몇 줄이라도 쓰게 되고 밑그림이라도 그리게 되는 법이지요.
그래서 저는 이제 주말마다 저와의 약속을 만들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어쩌다 지인들과 약속이 잡히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지요. 이번 주말에는 어디에서 저와 만날까를 고민하다가 종묘로 정했습니다. 유명한 일본 건축가가 세계 최고의 건축물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우리의 빛나는 문화유산. 평일에는 만원을 내고 투어를 해야만 들어갈 수 있지만, 문화가 있는 날로 지정된 주말에는 단돈 천 원이면 입장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저를 붙잡은 침대를 거칠게 밀치고 벌떡 몸을 일으켜 세웁니다. 그리고 첨벙첨벙 소리를 내며 세수를 하고 양치질을 합니다. 적당한 메이컵으로 나이를 숨기고 드디어 나를 만나러 갑니다.
<아네고 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