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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반 컵 05화

이토록 평범한 미래

by anego emi

언젠가 지인들과 함께 한 술자리에서 누군가에게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인생의 어느 순간이 오면, 물론 인생의 후반기의 어느 시점이겠지만, 사람은 자신이 말 한대로 살게 되는 법이라고요. 그는 나를 힐끔 한번 처다 보고서는 반쯤 남은 소주잔을 입 속으로 털어 넣으며 말했죠. “너 이제 일은 예전처럼 못할 거다. ‘남은 생은 일하지 않습니다’라는 책을 써서 온 세상에 대고 네가 말해버린 셈이니까…” 그리고는 껄껄껄 웃었답니다. 그 당시 그 웃음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왠지 놀림을 당했다는 불쾌한 기분은 들지 않았습니다. 나는 손세례를 치며 자신 있게 말했죠. “ 에이… 책을 좀 제대로 읽으세요. 그 책의 골자는 남은 생은 일만 하지 않습니다 라는 뜻입니다. 일을 안 하겠다는 것이 아니고요.”


그런데, 그 말이 저주가 되었는지 잊어버릴만하면 찾아오는 단골손님처럼 나를 찾던 일들이 서서히 줄기 시작했습니다. 슬슬 앞으로 먹고살 걱정이 아침에 눈을 뜨면 자연스레 들 만큼요. 덜컥 걱정이 앞선 난 나는 카카오톡을 열고 쭉 친구들의 명단을 스크롤합니다. 그간 서로의 안부를 묻고 부담 없이 일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지인들을 골라냅니다. 잘 지내냐? 살아있냐? 별일 없지? 등과 같은 말들을 잉크 방울처럼 남기고 답을 기다리죠. 다행스럽게도 모두 잊지 않고 답을 해주지만도, 결국 일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하고 애꿎은 점심, 저녁, 술 약속만 잡네요. 그 순간 저는 반사적으로 다음과 같은 생각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맙니다. 지인들과 가족들 덕분에 2쇄를 겨우 찍고 대학 시절 인턴 월급보다 적은 쥐꼬리 같은 인세를 나에게 안겨준 그런 책 따위는 쓰지 말았어야 했나? 하는… 잔잔한 한숨을 쉬며 켜켜이 쌓아놓은 책더미로 눈을 돌리자 내 눈에 비수처럼 책 한 권이 꽂히네요. 마치 내 질문에 즉답이라도 하듯이… ‘이토록 평범함 미래’


몇 년 전에 읽은 그 책을 다시 꺼내듭니다. 인생이 흔들리는 순간에 나에게 온 책은 분명 어느 작가의 말처럼 책의 요정이 보낸 응원의 메시지이자 깜짝 선물임에 틀림없으니까요. 분명 이 책은 흔들리는 나를 거칠게 다시 한번 흔들다가 아무 일없었다는 듯 제자리로 나를 돌려놓으며 묻습니다. 이토록 평범함 미래를 위해 오늘을 살고 있는 것이라고. 네가 청춘을 거칠게 통과하며 꿈꾸던 너의 미래를 반추해 보라고…


그렇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오늘은 그 시절 내가 꿈꾸던 미래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내가 이렇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에 익숙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무리 완벽하려고 해도 실수를 반복하는 사람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때 내가 알았더라면 그렇게 힘들어하지 않았겠지요. 뿐만 아니라, 수시로 혼나는 것쯤이야, 몇 마디에 기죽는 것쯤이야, 어쩌다 자존심에 흠집이 나는 것쯤이야, 뒤돌아서면 피식하고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었겠지요. 그 시절 나는 매일매일을 자학에 가까운 비난과 질책을 스스로에게 퍼부으면서, 전쟁터를 방불쾌하는 회사를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캐리어를 쌓았습니다. 그러다가 힘에 부치는 날이면, 새벽녘까지 독한 술을 선후배들과 기울이며 내뱉곤 했죠. “ 나는 말이야… 나이가 들면 아주 시간이 많은 어른이 되고 싶어. 하루 종일 책도 읽고 산책도 가고 대낮부터 프랑스 파리지엔처럼 와인도 마시고… 일은 가능하면 안 하면서…”


그렇습니다. 나는 정확히 20년 전에 내가 했던 그 말 그대로 지금 나는 살고 있는 셈이네요.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저는 순간 소름이 돋았습니다. 서서히 빨라지는 심장 소리를 의식하며 이 두근거림의 의미를 잠시 생각해 봅니다. 한 손에 책을 들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 냉장고로 향합니다. 냉장고 문을 열고 반쯤 남은 샤르도네 병을 꺼내고 와인 잔 가득 따릅니다. 투명한 파도를 일렁이며 찰랑이는 와인 잔이 넘칠 세라 조심조심 까치발을 하고 자리로 돌아와 앉습니다. 그리고 생각할 거리가 남은 듯 눈을 게슴츠레 뜨고 와인 한 모금을 삼키자 향긋한 과일향이 입가와 코끝에 맴도네요.


이 책은 김연수 작가님의 단편 소설집입니다. 첫 번째 소설로 등장하는 '이토록 평범한 미래'에서 책 제목을 따왔죠.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몇이고 반복해서 읽게 되는 문장들이 너무나도 많지만, 무엇보다 작가님의 통찰력이 대단했습니다. 최근에 읽는 ‘나라는 착각’이라는 뇌과학서에 의하면 사람들이 자신이라고 믿고 있는 정체성은 자신이 아니며 뇌가 꾸며낸 허상에 불과하다고 하네요. 다시 말해 '나는 나의 정체성을 얼마든지 내 의지대로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죠. 작가는 이 책 속에서 이와 비슷한 관점에서 언어와 정체성에 관해 말하고 있습니다. 언어는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그 뜻이 달라질 수 있으며, 인간의 정체성은 나라는 착각이며 허상이라고요. 말로는 골백번 더 깨달았어도 우리 인생이 이다지 괴로운 까닭이 여기에 있다고 주인공의 입을 빌어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나라는 인간이 왜 '이 모양'일까라고 스스로 자책하는 대신 ‘이 모양’이 내가 아님을 먼저 깨닫는 것이며, 내 의지에 따라 '이 모양'이 '저 모양'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아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다르게 살 수 있다고요. 다시 말해서 과거가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 이 모양'도 '저 모양'도 될 수 있는 미래가 과거를 결정하는 것이라고요. 미래에서 과거로 날마다 뒷걸음친다고 상상해 보면, '나는 이렇게 되기 위해 그렇게 해 온 것이다'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지요. 책 속의 문장처럼 ‘최악의 순간이 최선이 되기 위한 과정’ 임을 떠올리면 인식의 패턴이 바뀌게 되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원인이 되어 현재의 일이 벌어진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제 경우를 빌어 생각해 보면, 결국 지금 내가 누리는 이토록 평범함 미래는 이미 나의 의지로 예정되었던 것이었으며, 지금 내가 일과 동떨어져 때때로 불안과 권태를 느끼면서 책에 의존하는 것은, 미래의 내가 작가로서 흔들림 없이 살아갈 수 있기 위한 맷집과 탄력성을 기르기 위한 과정인 셈이죠. 그러므로 내가 기억해야 할 것은 미래의 나라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 라는 잣대를 두고 오늘 나에게 닥친 일을 평가해야 하는 것이지요. 남은 반컵을 채울 미래의 나… 이것은 내가 정하기 나름이고 꿈꾸기 나름이지 않을까요? 오롯이 내가 나답게 내 멋대로 결정하고 결심하면 그만이지 않을까요?


광고회사에 첫 발을 내딛는 날, 저는 결심했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모처의 선배님처럼 꼭 광고의 꽃인 최고의 카피라이터가 되겠다고. 저는 매번 난관에 부딪칠 때마다 그 선배를 떠올리며 자문했죠. '그 선배라면 이때 어떻게 행동했을까?' '어떤 노력을 더 했을까?' 그러나 그 순간 제가 떠올린 것은 그 선배가 아니라 미래의 나였습니다. 비롯 여름날의 소나기처럼 짧았지만 그 굵고 강력했던 빗줄기는 내 인생에 많은 것을 변화시켰으며 또 다른 미래의 나를 꿈꾸게 했습니다. 향긋한 샤르도네 향을 음미하며 다음 글로 남은 반컵을 채워봅니다. '지금의 내가 하는 모든 행동과 말은 나의 미래를 기억하는 일이다'. ‘우리는 모두 뒷걸음치며 미래를 들어선다 - 폴 발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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