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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반 컵 06화

머물다 지나가 주세요

by anego emi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명상을 처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작정하고 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정확히 따져보지는 않았지만, 불쑥불쑥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불안 때문입니다. 심지어 이제는 혼자 오지도 않습니다. 비슷한 감정들을 원플러스 원에서 둘 플러스 투로 자꾸 덤으로 데리고 오네요. 당연히 반갑지 않습니다. 게다가 초대받지 않은 이 손님들은 꼭 새벽에 옵니다. 잠이 너무나 간절해서 잠이 달콤하길 바라고 또 바라는 그런 날의 새벽에 말입니다. TV 소음의 힘을 빌어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기어이 저를 깨우고 침대를 박차고 나오게 해 기필코 그들을 맞이하게 합니다. 그래서 당당하게 그들을 맞이하기로 했습니다. 명상의 힘을 빌어서 말이죠.


저는 결심을 합니다. 그들이 오든 안 오든 마음을 독하고 단단하게 먹기로요. '마음을 독하고 단단하게 먹는다'는 말은 어떠한 감정에도 흔들리지 않는 평정한 마음을 유지하여 소중한 나의 하루를 지켜내겠다는 의지의 실천 입니 다. 먼저 명상 앱을 깔았습니다. 침대를 정리하고 물 몇 모금을 마시고 정신을 가다듬습니다. 적당히 도톰한 방석을 바닥에 깔고 가부자를 틀고 앉습니다. 눈을 감고 잔잔한 자연의 소리 위에 겹쳐지는 가이드의 멘트에 따라 숨을 크게 들어마시고 내뱉습니다. 스멀스멀 불안과 두려움이 심장 소리에 맞춰 마음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합니다.


저는 더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새벽녘의 잔잔한 파도 소리 같은 숨소리를 내며 숨을 내쉽니다. 그리고 며칠 전에 읽은 명상에 관한 책 속의 몇 구절을 떠올려봅니다. '사랑도 미움도 행복도 지속되지 않는다. 때가 되면 희석되고 사라진다.' 즉슨 모든 감정은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제 마음을 흔드는 '이 감정이 또 다른 어떤 감정을 가져올까' 하고 두려워말고, '이 감정이 지나가면 또 어떤 새로운 감정이 지나갈까'하고 생각해 보는 것이죠. 숨을 쉬고 내 쉬는 동안 불안이 머물렀다 지나가고, 두려움이 머물렀다 지나가고, 우울함이 머물렀다 지나갑니다. 이렇게 저에게 온 손님들이 마음껏 제 앞에 머물렀다가 스스로 돌아갈 때까지 침착하게 지켜보는 것이죠. 그렇게 그들을 배웅하다 보면 마음은 차츰 홀가분해지고 그들은 결국 '내 안에 있는 무의식의 나'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고 합니다.


저는 오늘 단골손님인 불안과 마주 앉아 적당한 거리를 두고 그를 지켜봤습니다. 총기를 잃은 눈빛과 축 처진 어깨가 애처로웠습니다. 그 이유를 묻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는 답을 찾지 못할 것이고 그 답을 찾지 못한 대가로 또 다른 손님을 불러올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니 그냥 지켜보고 불안을 불안 그대로 인정하고 안아주기로 했습니다. 불안은 불안입니다. 뒤돌아 보면 저는 늘 불안했고 그 불안을 끼고 청춘을 보내고 그 불안을 장작 삼아 저를 불태웠습니다. '지금 이 불안으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냥 인정하고 안아주고 그를 제 반컵 속에 잠잠히 넣어 둘 생각입니다.


아침 명상과 함께 시작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날마다 제 곁을 지나가는 타인을 위해 10초 동안 행복을 빌어주는 명상입니다. 매일 2명씩 10초간 낯선 이들의 행복을 위해 천천히 호흡을 하고 그들의 행복을 떠올려 봅니다. 어쩌다가 그들이 빙긋하고 저를 향해 미소 짓는다면, 아마도 타인의 얼굴로 저에게 온 천사를 만난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네고 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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