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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현 Mar 23. 2024

잘 살고 있다고, 말해주세요

혼자 힘으로 살아온 청년들

이 길의 끝은 어디일까.
어디까지 너와 함께 걸어야 하는 걸까.

계속 함께 걷다보면, 어디서부턴가는 너 스스로의 힘으로 걷게 되는 걸까.

'윤희'를 대하기가 어렵다.
‘제자, 윤희’를 알게 되고 만나온 10년 이상의 시간동안 나는 많이 지쳤고 냉랭해졌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것 같은 윤희의 대책없는 행동들. 그리고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냉엄한 현실들.


윤희는 이제 서른 살이 되었다.

누군가의 삶을 평가하고 판단할 수 있는 절대적 기준은 없겠지만, 돈도 없고, 도와줄 가족도 없고, 대학을 나온 것도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취업은 커녕 몇 달 이상 알바를 지속해본 적이 없는, 이 무직無職 무업無業청년의 미래가 나는 참을 수 없이 암담하고 답답했다. 변화하지 못하고 극복하지 못하는 윤희에게 점점 화가 났다.

나는 매일매일 걸려오는 윤희의 전화가 무섭게 느껴지곤 한다. 전화를 받고 혼내고 화내는 내 모습이 싫기 때문이다.
오늘은 잠시 고민하다가, 받지 않는다. 어차피 매일 반복되는 화가 나고 답답한 이야기 들일텐데, 하고 생각한다.

‘그냥 걸었어요. 불안해서요’
‘남자친구랑 싸웠어요.’
‘알바 그만뒀어요, 다른 자리 좀 알아봐주세요.’


윤희는 나의 복잡하고 지친 마음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으니까. 몇 년 동안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나도 더 이상 다 커버린 이 청년의 어리광을 받아줄 힘이 남아있질 않다.


오래전 처음 만났던 때의 윤희는 열일곱살의 총명하고 반짝이는 아이였다.

사진과 영상과 글쓰기로 자신과 주변 세계를 그려내는 독특한 시선과 감수성에 여러 사람들이 기대를 가졌었다.
대학을 보내보려고, 예술가로 키워보려고 했고, 직접 월급을 주면서 단체의 상근자로 키워보려고도 했다. 멘토도 연결해주고 마음 좋은 사장님을 찾아 취업할 곳도 연결해 주었었다.
하지만 서른 살이 되도록, 윤희는 나와 우리가 애쓰고 이끌었던 길들 어느 곳으로도 끝내 가지 못했다.


윤희는 가지 못하는 걸까, 아니면 가지 않는 걸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윤희에게 실망하고 지쳤다가도, 세상에 발붙일 곳이 없고, 이미 나와 우리가 책임져야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윤희를, 나는 계속해서 만나야만 했다.




윤희의 삶은, 내가 만나온 ‘위기 속의 청년들’ 중에서도 유난히 험난하고 기구했다.
말도 트이기 전에 엄마가 집을 떠났고, 몇 해 지나지 않아 아버지도 떠났다. 아주 작고 허름한 집에서 할머니와 단둘이 가난하게 살아가야 했다.
중학생이 되면서 망상과 환청에 시달리는 병을 얻게 되었고 학교를 그만뒀다. 몇 년 동안 정신과병동에서 입원과 치료를 반복했다.

스무살 무렵, 할머니와 단둘이 살아가던 그 작고 허름한 집이 불에 타 없어졌다.


더 이상 살아갈 곳이 없어 할머니는 요양원에 들어가고 윤희는 지인의 집이나 여관 장기방에 몸을 맡기는 불가피한 자립이 시작되었다. 친척 어른들이 몇 있었지만, 윤희를 거둘 형편이 되는 이는 없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조금씩 자립을 시도할 무렵. 망상과 환청이 두 번째로 발병했다. 또 다시 입원해 2년이 흘러갔다. 면회를 오고 간식비를 넣어줄 이도 몇 없었다.

어렵게 퇴원을 하고 나서는 지역 복지단체의 도움으로 주거지원을 받으면서 다시 자립을 시도했다. 사회적기업들이 일할 기회를 주기도 했고, 나름대로 열심히 해서 실력을 키워갔다.
이번에는. 정말 이번에는 윤희가 사회 속에 자리를 잡아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던 스물다섯 살 무렵, 망상과 환청이 세 번째로 발병했다. 

세 번째 입원을 했고 또 1년의 시간을 병원에서 보냈다.
한 번의 입원을 지날 때마다 이 아이의 총명함은 반토막이 났고 멍하게 허공을 보는 시간이 늘어났다. 세 번의 입원과 퇴원. 그 시간들은 윤희가 가지고 있던 작은 것들조차도 잃게 했다.



윤희는 오늘도 어제처럼 전화를 걸어온다. 오늘은 마음을 쥐어짜, 간신히 윤희의 전화를 받는다.
‘왜...’
‘오늘 알바 면접 세군데 봤다구요.’
‘그래, 알았어.’
‘... 잘했다고. 말해주세요.’
‘뭐?’
‘잘했다고... 열심히, 잘 하고 있다고 말해주세요.’
‘꼭 말을 해야 아니..’
‘불안해요. 잘하고 있다고 누가 확인해주지 않으면. 내가 잘 살지 않으면, 사람들이 또 나에게 실망하고 떠나가니까요.’

나는 윤희를 칭찬하기가 어렵다.

 내 마음은 아직도 열여섯살, 혹은 스무살 무렵의 반짝이던 윤희에 머물러있다.
어린 날의 총명했던 윤희를 기억해내며 이 청년이 앞으로 나아가도록 채근한다. 윤희가 다시 그렇게 돌아갈 수 있을거라고, 혹은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믿으면서.


나의 부당한 바람과 기대를 버리고 보면, 윤희는 참 많이 변화하고 성장했다. 밤을 새지 않고 아침에 일어나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고, 학원을 등록하면 끝까지 다녀서 수료를 할 수 있게 되었고, 1-2주 정도는 지각하지 않고 알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빚을 지지 않고 자기 수입에 맞춰 돈을 쓸 수 있게 되었고, 매일 밤 불안에 떨며 잠들지 못하는 일도 없어졌다.

다른 또래들보다 많이 늦어졌고 훨씬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윤희는 자기 나름의 노력을 멈추지 않아왔고 한발씩 내딛어왔다. 일머리가 없고 의사소통의 능숙함이 부족해 오래 일하지 못하고 해고 되는 것 뿐이다.

윤희는 자신의 노력이 존중받고 인정받기를 원한다. 세상의 눈으로는 대단할것이 없을지 모르지만, 자기 삶에서는 결코 작지 않은 노력과 극복의 과정들을 칭찬받고 싶어한다. 내가 윤희를 대하는 마음은 그만큼 더 너그러워지고 더 가벼워져야한다.

얼마 전 윤희는 정부 전세자금지원을 받아 처음으로 자기만의 집을 가지게 되었다.
윤희가 늘 겁내던 ‘길거리에 나앉을 걱정’을 당분간은 하지 않아도 된다. 혼자서 여러 곳의 집을 알아보고, 가격을 조정하고 계약을 하는 과정을 경험하면서 ‘서른살의 윤희’는 또 한단계 성장했을 것이다.

윤희가 집들이를 하거든, 오랜만에 크게 칭찬을 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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