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정현 Mar 17. 2024

왜, 이 일을 시작했을까?

청년이 된 학교밖청소년들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입니다.

저는 학교밖청소년들의 비인가대안학교의 교사였습니다.

좋은 동료 선생님들이 많이 있었고, 그 틈에서 저도 나름대로 애썼습니다. 사회와 가정으로부터 충분한 존중과 돌봄을 받지 못하는 학교밖 청소년들에게 좋은 학교였습니다.

그곳에서 7년간 일하며 많은 학교밖 위기청소년들이 회복과 성장의 시간을 가지며, 성인이 되어갔습니다.


하지만 그 청소년들이 성인기가 되었을때, 마땅한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보통의 청년들이 흔히 갖게 되는, '대학'이라는 선택도 '취업'이라는 선택도 그들에게는 어려웠습니다.


부모나 가족은 그들을 도울 수 없었고, 오히려 그들의 걸림돌인 경우가 많았고, 당장의 먹고살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생계형알바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빈곤과 위태로운 환경에는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나마 지속적으로 알바를 할 수 있다면 그래도  다행이었습니다. 많은 학교밖청소년들은 심리정서적 문제, 습관이나 태도의 문제, 직업능력의 문제들 때문에 지속적으로 알바를 하기도 어려웠습니다.

대안학교에는 청년기를 현실적으로 준비할 수 있는 과정이 부재했습니다.

학교를 다니지 않거나 학습의 경험이 부족했던 청소년들이 대학에 진학하기도 어렵지만 진학을 하더라도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지속적인 취업의 기회를 얻을 수도 없었습니다.

청년기에는 더 이상, 청소년기처럼 즐겁게 성장하는 시간을 갖는 것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었습니다.

철저히 혼자 힘으로 살아나가야 했던 학교밖청소년들은 생활을 위해 일을 해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청소년기에 경험했던 문화체험과 인문학 교육을 통한 성장이 당장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했습니다.




사회의 문턱에서 좌절하는 청년들



진로에 대한 흥미와 자신감을 높이려고 인턴십 프로그램을 여러번 시도해 봤습니다.
하지만 일터에서 오래 견디지 못했습니다. 누군가 좋은 일터를 소개해주더라도 금방 그만두고 사라지곤 했습니다. 항상 자신이 잘 해내지 못하고 있고 회사는 지신을 내치려한다고 생각했고 스스로 포기하곤 했습니다.

사회는 학교밖청소년들의 무책임과 어리석음을 비난했습니다. 회사들은 이 학교밖청년들에게 두 번의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 좌절의 순간들을 무수히 보았습니다.

그리고.. 어렵게 청년기를 보내던 한 청년이 스스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 친구는 긴 시간 정신병동에 입원해 만날 수 없었습니다.


아마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무수히 많은 젊고 어린 친구들이 떠나갔을 것입니다.


많은 제자들이 준비없이 닥쳐온 성인의 세계에서 쓰러졌습니다. 사회진입에 실패하는 제자들의 모습에 자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 더 적극적으로, 구체적으로 일할 준비를 시키지 않았을까. 왜 고통과 어려움을 견디는 연습을 시키지 않았을까.

왜 대학을 잘 다닐 준비를 시키지 않았을까.

왜, 대학에 가지 않아도 문제가 없을것처럼, 취업하지 않고도 다양한 살아갈 방법이 있을것처럼 헛되고 무책임한 희망을 품게 했을까.


이 청년들이 일하고 자립하게 하려면 뭐가 필요한걸까. 학교밖청소년들이 어려운 시간들을 견뎌내고 직업적으로 성장해, 사회인으로 정착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위기청(소)년 자립을 위해 필요한 것은?

함께 고민하던 우리들은, 이렇게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1. 잘 성장해 자립한 선배 모델이 생겨야 한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의심과 회의가 들때마다 떠올리며 스스로를 지킬 수 있게 하는, 확실한 성공의 모델이 필요하다. 자신과 비슷한 환경들을 극복하고 이겨낸 실제 사례가 필요하다.

2. 오래 관계를 이어가는 기댈언덕이 필요하다.
한시적인 취업 프로그램으로 만나는 서비스 제공자와 수혜자의 관계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으로 만나 오랜시간 이어가며 사회적가족의 역할을 하는 지지관계가 필요하다.

3. 다양한 직업현장의 전문가,사업주와의 긴밀한 협력관계가 필요하다.
당장 취업을 기대하기 어려운 학교밖청소년에게는 다양한 현장일경험을 통해 직업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필요할때 가끔씩 일회성으로 도와주는 사장님이 아니라, 학교밖청소년의 직업과 자립에 대해서 언제나 함께 고민하고 의논할 수 있는 관계과 조직구조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이런 고민들 속에서, 지역사회의 교육활동가와 사업주가 조합원으로 참여해 학교밖청소년들의 일경험과 직업적 성장을 견인하고,
한편으로 그렇게 성장한 청년들이 다시 조합원 진로멘토가 되어 후배 학교밖청소년들의 성장모델 역할을 하는.
<사회적협동조합 일하는학교>를 2013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간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11년간 500명 이상의 위기청년들을 만나왔고 그들중 다수가 사회로 나아가 자립했고,

이제는 후배청년들을 위해 애쓰는 후원자가 된 제자들도 많아졌으니 고생한 보람은 넘치고도 남습니다.


이전 01화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것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