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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현 Mar 16. 2024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것들

쌤, 어디에요? 5만원만 빌려줄 수 있어요? 차비가 없어요.


왜 돈이 없어? 공장 일 시작했다면서. 거기서 가불 좀 받아.
짤렸어요. 자꾸 빠지고 늦게 간다구요.
....
‘같이 일하는 언니들도 짜증나고, 안 그래도 그만두려고 했어요.’

많은 제자, 청년들과 연락을 주고받는 여러 개의 분주한 카카오톡 대화 창들 속에서, A의 연락은 늘 내가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막막한 상황을 전했다.


A는 늘 돈이 없고 일자리가 없고 빚을 갚아야하고 하루하루 살아나갈 길이 막막했다


A는 스물일곱 살의 청년이고 여성이다.

내가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에서 일하던 시절 만났던 오랜 제자다. A가 열다섯 살 무렵에 만났으니, 이제 십년이 조금 넘었다.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세상은 빠르게 변했고 아마도 A의 동갑내기 청년들은 20대가 되어 대학도 다니고 취업도 하고 여행도 다니고 연애도 하면서 ‘청년의 삶’을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A의 삶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청년의 삶’과는 너무나 다르고, 고된 시간들이었다.


A는 어려서부터 부모나 가족의 도움 없이 살아왔다. 일찍 양육을 포기한 부모들 때문에 보육시설에서 아동기를 보냈고 보육시설을 뛰쳐나왔다가 청소년쉼터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중학교 2학년 무렵에는 학교를 그만뒀다.


부모나 가족 없이 보육시설에서 일반학교를 다닌다는 것은 특별한 인연이나 특별한 노력이 없다면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일 것이다.

A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고 아껴주는 친구나 선생님을 만난 적이 없었다. 적어도 A의 기억 속에서는 그랬다.

중학교를 그만두고 대안학교를 다녔지만, 대안학교 생활도 순탄치 못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손을 놓았던 ‘공부’라는 것이 검정고시로 중학교 졸업장을 얻는 것조차 어렵게 했다.

중학교를 그만두게 만들었던 친구나 주변사람과의 ‘의사소통의 어려움’도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A는 스무 살 무렵 청소년쉼터를 나와 고시원에 살거나, 일하며 만난 어른들 집에 얹혀 지내거나, 남자친구와 동거를 하며 자기 나름의 자립을 시도했다.

중학교 중퇴학력으로 좋은 직장은 얻을 길은 없어서 편의점, 호프집, 생산 공장에서 일하며 살아갈 길을 찾았다.


하지만 들끓는 성격 탓에 일자리를 구해도 한 달, 두 달을 넘기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머리는 좋다거나 말재주나 손재주가 좋다거나 하는 것도 없어서 미래를 준비할 뾰족한 수단이 없었다.

A는 일을 그만두고 새로 얻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다가 돈이 떨어지면 주변 어른들에게 돈을 빌렸고 그것도 한계에 부닥치면 연락이 두절되곤 했다.

A의 삶에는 어렵고 막막한 순간에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나 어른들이 거의 없었다. 그의 삶에 많은 사회복지사나 상담사가 스쳐지나갔지만, 계속해서 연락을 주고받고 의논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아마 내가 연락을 주고받으며 사소한 의논이라도 할 수 있는 극소수의 어른들 중 한 사람일 것이다.   


삶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혼자 고민하고 혼자 해결해야 하는 막막하고 고립된 삶. 매일매일 잘 곳과 먹을 것을 걱정해야하고 그나마 잘 곳 먹을 것 걱정에서 조금 여유로워지면 불안한 미래걱정에 더 마음이 어두워지는 삶이다.


내 능력으로는 답을 찾아주지 못하겠는, 도무지 답이 없어 보여 A의 삶을 걱정하는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미안한 생각도 여러 차례 해보았다.



얼마 전 연락이 끊겼던 A로부터 한해인지 두해인지 만에 전화가 걸려왔다.


선생님, 밥 좀 사줘요.


또 돈을 빌려달라고 하려나. 일자리를 구해달라고 하려나. 뭐라고 답을 해야 할까. 나는 무거운 고민을 안고 A를 만나러 갔다.


많이 지쳐 보이는 A의 얼굴에서 한해 두해 사이에 A가 홀로 겪었을 수난과 고통들이 잠시 마음을 스쳤다.

A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어른아이 가리지 않고 거칠게 말하고 대하던 A는 내게 깍듯이 존대말을 하고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A는 내가 전혀 생각지 못한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이라도, 검정고시 보면 합격할 수 있을까요? 제가 머리가 많이 나쁘잖아요...


합격하면, 어린이집 선생님.. 그런 것도 해볼 수 있을까요?
해보고 싶어요. 잘 못할것 같지만.. 선생님이 도와주세요.



나는 갑자기 알 수 없이 눈시울이 뜨거워져 말을 잇지 못했다.


그래. 잘할 수 있을 거야. 잘 해보자.
너 머리 안 나빠. 선생님이 알잖아.


A는 검정고시 공부를 어떻게 시작할지, 어떻게 새로운 일자리를 구할지 의논하고 돌아갔다.

어색하게 꾸벅 허리를 숙이고 돌아가는 A의 뒷모습을 보며, 잠시 A를 그만 포기하고 싶었던 마음들이 떠올라 미안하고 아팠다.


포기하지 않고 있구나. 여전히 잘해 보려고 하는구나.


A라는 청년이 겪어왔던, 험하다거나 고되다는 말로는 감히 설명할 수 없을 고난들. .그 녀석은 보통 사람들이 당연히 가지고 살아가는 것들을 하나도 갖지 못했으면서, 무슨 힘으로 그 모든 일들을 견디고, 틈바구니를 뚫고나와 다시 여기까지 왔을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모르겠지만, 뭐든 시작해보자.
멋진 일이 생길거야. 포기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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