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번째
(未아닐 미 完완전할 완 成이룰 성)
1. 아직 덜 됨.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환승연애라는 말은, 단어만 들어도 사람들의 마음에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연애'라는 경험 안에서, 좀 불편하면서도 이상하게 계속 궁금해지는 단어다. 환승연애는 tvN에서 방영되고 있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의 소개를 보면 이렇게 적혀있다. [다양한 이유로 이별한 커플들이 한 집에 모여 지나간 연애를 되짚고 새로운 인연을 마주하며 자신만의 사랑을 찾아가는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우리 뇌가 제일 좋아하는 떡밥의 영역, "미완성"을 직접적으로 자극하는 프로그램이다. 심리학에서 이걸 "자이가르닉 효과"라고 부르기도 한다. 끝난 일보다, 애매하게 끝난 일을 더 오래, 더 자주 떠올리는 경향을 말한다.
환승연애는 "저 커플 진짜 끝난 거 맞아?, 미련 있는 것 같은데?" 하며, 계속 상상을 자극하게 해서 궁금하게 만드는 무한 떡밥 굴레를 만들기 때문에 사람들이 외면하기 쉽지 않은 도파민 충전 프로그램이다.
환승연애라는 단어부터 마음에 안 들어.
환승연애 프로그램은 말 그대로 "환승을 하는 연애 리얼리티"이다. 대신, 눈앞에서! 과거 연인이었던 사람들이 한 집에 모여 새로운 인연을 찾는 과정을 보여준다. 헤어지면 끝-이라고 믿고 싶은 사람들에게, 굳이 전 연인의 새로운 연애 과정을 눈앞에서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라니. 제목부터가 이미 약간의 환장파티를 예고한다. 시즌 1부터 시작해서 현재 시즌 4가 방영 중이니, 인기 프로그램이고 볼 수 있다. 다들 불편하기는 한데, 궁금은 하니까- 환승연애가 시작되면 나도 모르게 과몰입러가 돼있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나는 무한도전 이후에는 예능을 거의 보지 않았다. 유선방송을 끊고,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골라 보는 것에 익숙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예능과도 멀어졌다. 그런데 어느 날, 유튜브 알고리즘의 무한 학습 끝에 환승연애 클립 하나가 떴다. 그날 이후, 나는 환승연애를 어디서 봐야 하는지 네이버에 검색하고 있었다. 남편에게 환승연애라는 프로그램을 처음 알려주었을 때, 남편은 들으면 안 되는 걸 들었다는 표정이었다.
"환승연애라니.... 진짜 내 정서에는 안 맞아"
-"왜? 재밌지 않아? 어떻게 이런 걸 만들 생각을 했지?"
"몰라. 아무튼 단어부터 마음에 안 들어"
-"아니, 내가 환승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봐봐. 보지 않았는데, 제목부터 별 상상을 다 하게 만들잖아. 제목 진짜 잘 지었단 말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마음으로
남편이 좋아하는 분위기가 있다. 그중 하나가, 같은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분위기 ! 그걸 하기 위해 남편은, 정서에 맞지 않는 환승연애를 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남의 연애를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의 시선으로 의견을 공유하며, 서서히 환승연애에 몰입하게 되었다.
만약에 우리가 환승연애 프로그램에 나가면?
인간의 상상력 게이지를 100이라고 치면, 나는 99 정도에 가까울 정도로 상상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런 나의 상상력은 환승연애 프로그램을 보면서 신이 나버리게 되는데... 그렇게 남편에게 무한의 만약에-질문을 하게 되었다.
"오빠, 만약에 내가 환승연애 프로그램 나가자고 하면 나갈 거야?"
-"아니, 우리 결혼했는데 무슨 소리야?"
"아니~~ 만약에 만약에!"
현실에 일어나지 않는 일을 상상하거나 생각하는 것을 꽤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남편을 보면서 깨닫게 되었다. 남편은 환승연애를 보면서 내가 만약에-라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최대한 집중을 하며 내 이야기를 듣는 척을 한다. 상상이 안되니, 경청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주는 게 배려라고 생각했을까. 극 현실파인 남편은 우선 그렇다 치고- 마인드로 최대한 상상력을 쥐어짜 내 질문에 대답해 주곤 했다. 그렇게 나의 만약에 질문에 가까스로 대답을 해주던 남편은 어느새, 환승연애 과몰입러가 되어있었다.
"오늘 환승연애 예고편 봤어?"
“환승연애 나갈 거면, 나랑 나가 :)“
남편과 나, 각자 다른 포인트에서 멈추는 장면들
우리는 같은 장면을 보고도 완전히 다른 포인트에 꽂히게 된다. 나는 말의 논리, 말과 행동의 구조, 누가 더 잘못했는지에 집중한다면, 남편은 표정, 눈빛, 분위기에 집중하고 있다. 다툼장면이 있을 때면, 나는 "그래도 저 상황에서 저렇게 말을 하면 안 되지"하며, 책임과 선택의 문제를 짚었고, 남편은 "상처받은 이유"에 공감했다. 그러다 보니, 각자가 지지하는? 출연진들의 변호사가 된 것처럼 상대 출연자를 서로에게 변호하느라 바빴다. <환승연애>를 통해 우리의 사고방식의 차이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된 것이다.
환승연애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나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며, 스스럼없이 의견을 공유하고 00파, 00라인 등의 각자의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한다. 서로가 직접 한 경험이 아니기 때문에 좀 더 객관적으로 상대방이 어떤 생각과 가치관을 갖게 되는지 볼 수 있는 실험의 장소가 되기도 했다. 나름 우리 둘의 애착 유형, 연애를 바라보는 방식, 친밀감을 표현하는 방법까지 자연스럽게 고민해 보는 좋은 경험이었다.
未완성 말고, 美완성
환승연애에 빠지게 되는 과몰입의 포인트인, 미완성의 영역을 결혼에도 적용해 볼 수 있다. 결혼은 내가 전혀 알 수 없는, 그렇지만 애정하는 상대에 대한 끝없는 떡밥을 하나씩 풀어가는 과정 같다. 그렇게 미완의 하루들을 같이 걸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이미 완성에 가까워져 있는 우리를 발견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때의 우리의 모습은, 어떤 모양이든 지금보다 더 아름다울 것이라 기대한다.
에필로그-
내일은 결혼기념일이에요. 뚜벅뚜벅 미완의 길을 함께 걸은 지 3년 -
마침, 환승연애 4 방영일이네요. 맛있는 저녁을 먹고, 환승연애를 보는 기념일이라니!
소소하지만, 꽉 찬 행복이 이런 것이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