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至이를 지 福복 복)
1. 더 없는 행복.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지금 행복하신가요?
매일 똑같이 반복된 하루를 살다가, 우연히 이 문장을 만나게 될 때, 우리는 순간 멍해지곤 한다. 행복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고 막연하게 행복을 좇다 보면, 잡히지 않는 행복에 길을 잃을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에 대해 시간을 들여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다. 행복이라는 게 우리 인생의 이정표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행복에 대해서 고민을 끝내고 나면, 심화문제로 “지복”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복은 더 없는 행복을 말한다. 모든 것에 우선순위가 있는 것처럼 우리의 행복에도 밀도가 높고, 더 큰 행복을 가져다주는 지복이 존재한다. 지복은 각자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깊고 충만한 행복으로, 행복의 극점이다. 과장된 기쁨이라기보다는, 더는 무엇도 바라지 않아도 될 만큼 꽉 찬 만족을 말한다.
지속성이 있는 나의 행복은 어떤 모습일까
행복은 지속성이 있는 것에 초점을 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 결과나 순간과 같은 지속성이 없는 것에 행복의 초점을 맞추다 보면, 시야가 좁아지는 경험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시간과 공간적 배경이 바뀌더라도 내가 지속해야만 하는 행복의 지속성에 대해 고민하다 보면, 지복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생각해 볼 수 있다. 손에 잡히지 않는 막연한 행복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지속할 수 있는 지복에 대해 고민해 보면, 우리는 좀 더 선명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지복이라는 단어를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 그날 지복을 읽은 순간부터 온통 나의 더 없는 행복이 무엇인지 고민에 빠졌다. 처음에는 막연하게 행복한 삶이 무엇일까부터 고민하다 보니, 날씨 좋은 날 걸었던 아침 산책, 글을 쓸 때, 꿈에 대해서 생각할 때가 떠올랐다. 이후, 지복으로까지 고민을 이어가다 보니 나와 남편, 우리가 함께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되었다. 내 생각이 거기서 멈췄어야 했는데, 결국 아빠가 된 남편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쳤다. 오 마이갓.
나는 딩크였다. 결혼하면, 당연히 아이를 낳아야지!라는 물음에 물음표가 한가득했다. 나한테는 당연히라는 건 없기 때문이다. 내 질문에 스스로의 해답이 풀리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으니 나는 딩크라고, 결론을 내렸었다. 딩크였던 이유는, 나에게 육아는 제로섬게임처럼 여겨졌었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과정이 행복, 기쁨, 슬픔, 괴로움 등의 감정이 합쳐져 결국 제로가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을 것이냐? 는 스스로 묻는 질문에 답을 내리지 못해, 나는 딩크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 것이었다.
결혼 전에 아이에 대한 대화를 짧게 한 적이 있다.
“오빠, 나는 아이 생각이 없어”
-“그럴 수 있지, 나도 아이 존재는 아직 모르겠어.”
“그냥 우리 둘이 잘 살았으면 좋겠어, 그리고 그건 자신 있는데, 아이가 생기면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사실 잘 모르겠어.”
당시에 우리는 서로의 의견에 대해 크게 부딪힐 일이 없었다. 나는 딩크였고, 남편은 미지수였으니까.
결혼한 지, 3년째가 되던 해에 남편에게 딩크냐고 다시 물었다. 우리가 아이에 대해서 나눈 2번째 대화였다.
“오빠, 오빠도 딩크지?”
-“나? 나 딩크 아닌데!”
“아니, 결혼 전에 우리 아이 이야기했을 때, 내 의견에 동의한 거 아니었어?”
-“그럴 수 있다고 했지. 내가 딩크라곤 안 했어.”
“엥??? 그럼 내가 지금도 딩크로 산다고 하면?”
-“딩크로 사는 거지. 아이를 선택하는 건, 전적으로 여자가 결정해야 된다고 생각해. 출산하는 과정이나 커리어적인 부분이나, 아직은 여자가 감수해야 되는 부분이 많은 게 현실이니까. 여자 입장에서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건 인생 2막인 것 같아. 그러니까 2막 선택은 여자가 하는 게 맞지”
“당황스럽네..”
-“충분히 고민해 보고, 결정하면 되지. 그 결정에 난 따를 뿐이야. 근데, 만약 우리가 이렇게 지내다가 10년 뒤에 아이 생각이 났어. 그때는 아이가 우리한테 안 올 수도 있잖아? 그럼 우리는 그 선택도 받아들여야지. 나는 그런 생각까지 했어.”
남편과 대화는 나에게 또 많은 생각이 들게 했다. 곱씹을수록 맞는 말이었는데, 한편에는 내가 생각했던 제로섬게임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행복을 고민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지속되는 삶의 모습을 생각하게 되었고, 그때 문득 들었던, 나, 남편 그리고 아이까지 있는 셋이 된 우리 모습과 계속 대조되었다.
그렇게 몇 달이 흘렀다. 나는 용기를 내어 남편에게 나의가장 솔직한 생각을 꺼내기로 했다.
제로섬일 수가 없는-
아이를 키우는 과정이 제로섬게임이라고 들었던 내 생각은, 솔직히 조금 숨기고 싶은 생각이었다. 주변에 얘기하면 모난 돌 취급을 받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기 때문에 나의 생각을 남편에게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게 썩 내키지 않았다. 그래도, 부모님도 이해 못 하는 내 생각을 남편은, 모난 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겠지라며, 털어놓았다.
“오빠, 나는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과정이 제로섬 게임처럼 여겨져. 아이를 키우면서 누리는 행복과 기르는 과정에서 감내해야 할 고통이 합쳐져 결국 제로가 되는 거 아냐? 그럼 그 제로가 되는 과정을 우리가 알고 선택하는 게 맞을까?”
-“그럴 수 있지, 아이를 기르는 과정이 좋은 일만 있을 순 없으니까! 근데 나는 제로섬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해. 행복한 건 행복한 거고, 슬프고 힘든 건 그대로 힘든 거지. 둘이 합쳐질 수가 없다고 생각해. 근데, 같이 해내는 그 과정이 의미 있고 좋을 것 같아.”
“그런가?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었나?”
-“쉽게 생각한 건 아닌 것 같아, 너무 많은 고민을 한 것 같은데. 그냥 그런 생각 말고, 엄청 쪼꼬미가 재잘거리는 거, 그런 거 생각해 보면 귀엽지 않아?”
“그렇네. 귀엽긴 하네. 아오. 귀여운 건 진짜 어쩔 수가 없네.”
남편의 말은 나를 새롭게 생각하게 한다. 행복과 슬픔은 합쳐져서 제로가 되는 게 아니라, 각각 그대로 존재하는 거였다. 행복한 순간은 행복한 대로, 힘든 순간은 힘든 대로.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을 함께 겪어내는 과정 자체가 의미일 수 있다는 것. 제로섬 게임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생각해보지 못했던 또 다른 세계를 준비해 보게 되었다.
그렇게, 내 머릿속에 “셋”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가 생겼다.
그래서 나의 더 없는 행복은?
나에게 지복은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한 끼, 건강한 삶, 그리고 좋아하는 일을 지속하는 삶이라 생각한다. 결과나 순간에 있는 행복이 아니라, 지복을 유지하려고 나아가는 모습이 내 삶의 이정표가 되어 나를 나아가게 한다.
우연히 마주쳤던 “지복”이라는 단어에서 나는 “셋이 되는 모습”까지 그려보게 되었다. 진짜 원하는 삶의 모습에대한 고민은 전혀 생각지 못했던 다른 방향으로 나를 움직이게 하기도 한다.
에필로그-
둘에서 셋을 고민하다 보니, 앞으로 용기가 많이 필요할 것 같아요. 그 용기는 아마 제로섬이 아니라는 걸 믿는 용기, 함께 해내는 과정을 의미 있게 만드는 용기이겠죠? 그때마다, 제가 생각했던 지복을 떠올리며, 잘 헤쳐나갔으면 좋겠어요. 우리 둘이, 그리고 언젠가는 셋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