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완 있는 살림꾸리기

열두 번째

by 쿠키

수완

(手손 수, 腕팔뚝 완)

1. 일을 꾸미거나 치러 나가는 재간.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결혼을 하면, 혼자 살 때와는 다르게 '살림'이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살림은 한 집안을 이루며 살아가는 일로서, 그 생활에 필요한 모든 재산이나 도구를 통틀어 의미한다. 경제활동과 가사활동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 가정의 '살림'인 것이다.

'살림을 잘 꾸려 살아간다는 것'은 관습에 의해 흔히 밖의 살림은 남자역할, 안의 살림은 여자역할로 단순하게 나눌 것이 아니라 우리 가족의 구성원이 어떤 일에 특히 수완이 있는지 섬세하게 관찰해 볼 필요가 있다. 결혼하고 보니, 살림의 영역은 생각보다 훨씬 넓었다.



살림에도 수완이 있다.

어떤 사람의 손만 타면, 일이 술술 풀릴 때가 있다. 그때 우리는, 수완이 좋은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요즘 말로, '일잘러!' 하나를 알면, 두세 가지를 해낼 정도로 요점과 맥락을 정확히 파악해 내는 센스 있는 사람을 말한다.

수완은 손과 팔뚝을 의미하는 한자어로 조합된 단어이다. 일을 꾸미거나 치러 나가는 재간, 즉 재주와 솜씨를 말한다. 그렇다 보니, 수완이라는 것은 카테고리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더 있을 수도, 누군가에게는 아예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살림에는 정말 다양한 분야의 수완이 필요하다. 요리, 청소, 정리, 경제활동, 재테크 등 각자가 조금 더 수완있는 부분을 꾸려나가면 될 일이다.


남편은 요리하는 것에 수완이 있다. 자취를 오래 한 경험 덕분인지, 나보다 요리를 꽤 먼저 시작했다. 이것저것 만들어보는 것을 좋아하고, 본인이 생각했던 맛이 나오면 그게 그렇게 재밌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을 생각해 쉽게 메뉴를 구성하는 편이다. 양념을 재는 것도, 불 조절도 능숙해서 솔직히 나보다 잘하는 것 같다. 반면, 나는 레시피가 꼭 있어야 한다. 요리는 나에게 늘 도전과제이고, 해내야 하는 영역이다. 그렇다 보니, 조금 더 수완 좋은 남편이 요리를 맡게 되었다.

대신, 나는 정리하는 것에 수완이 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정리를 하는 습관이 있을 정도로 정리하는 것을 즐긴다. 흩어진 물건을 보면, 그것들이 어디에 있어야 할지 보인다. 주방, 드레스룸 등의 서랍 안의 구조, 옷장의 배치, 책장의 순서.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정리시스템이 머릿속에 잘 그려지는 편이다. 그래서, 남편이 물건을 찾을 때마다, 나는 이미 그게 어디 있을지 알고 있다.

나의 정리 수완은 요리할 때도 꽤 도움이 되는 편이라고 한다. 남편에게 미리 저녁메뉴를 전달받고, 나는 재료준비에 들어간다. 씻고, 다듬고. 남편이 끓이고 간을 맞추는 동안 나는 뒷정리하는 것에 집중한다. 각자 잘하는 영역을 하다 보니, 이런 부분에서 우리는 스트레스가 없다. (그리고, 각자의 영역은 혼자 하는 게 편하다. 서로 한다고 했다가 괜히 짜증만 더해진다.)



남들이 정해 놓은 규칙 말고 우리의 수완대로

나는 어렸을 때부터 '전통', '관습'이라 불리는 것에 약간의 반감이 있었다. 반감이 있었던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전통이나 관습이라는 틀로 사람을 '제한'하고, '재단'하려는 모습에 대한 불만이었던 것 같다.

나는 꽤나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자랐는데, 아빠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 있다.

"엄마한테 요리 좀 배워. 여자가 요리를 할 줄 알아야지"

그럴 때, 어머니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할 때 되면, 알아서 다 한다. 네가 하고 싶고, 먹고 싶은 요리가 생기면 그때 해도 충분해"

어렸을 때는, 아빠의 말에 속상하기보다는 의심이 먼저 들었다. '왜 여자가 요리를 해야 되는 거지?, 요리를 잘하는 사람이 요리를 하면 되는 것 아냐?'. 머리로 이해가 돼야만, 진심을 다해 행동하는 INTJ. 어린 나에게 여자가 요리를 배워야 한다는 아빠의 말은 정답 없는 수수께끼였다.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았지만, 당시에 가정살림을 전적으로 담당했던 엄마의 가치관 덕분에 나는 결혼하고 나서 '요리'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해보니 알겠더라- 내가 요리에 수완이 없긴 했다.

"오빠, 미역국 맛이 왜 이래?"

-"그니까.. 맛이 없지?"

"고기핏물도 빼고, 육수도 고기로 낸 건데... 이거 오빠가 살릴 수 있어?"

-"미역국 말고, 그냥 고기만 먹는다는 생각으로 먹을까?, 앞으로 요리는 내가 할게ㅋㅋㅋ"


엄마한테, 미역국 에피소드를 전해주었을 때, 엄마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웃으면서 말했다.

"엄마, 나는 요리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 " 동생들이랑 봐도, 너는 소질 없어 보이긴 했어.ㅎㅎㅎ 그리고 처음엔 다 오래 걸리지 뭐~"

"소질 없는 게 어렸을 때부터 티가 났나 봐?"

-"먹는 걸 워낙 좋아하지 않던 아이였는데, 요리를 좋아할 수가 있나. 그리고, 한 번은 칼로 사과를 깎다가 네 손이 크게 베인 적이 있어서. 엄마가 겁이 나더라고"

"맞아! 그 상처 아직도 있긴 해. 아 그리고, 요즘에는 야채나 과일 같은 거 깎아주고, 채 썰어주는 기계들 좋은 거 많더라. 간 맞추는 건 모르겠고, 다른 건 꽤 재밌어."

-"요즘 세상이 좋아ㅎㅎㅎ 그렇게 뭐든 너에게 맞는 방법대로 꾸려가면 돼"


엄마의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남편도 나와 비슷하게 '경제활동을 책임져야 한다'는 관습적 책임감에 승진을 꽤 신경썼던 것 같다.

남편과 나는 같은 직장에서 만났기 때문에, 남편이 회사에 대해서 말하지 않아도 회사의 시스템부터 문화까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남편에게 '하고 싶은 대로 해', '애쓰지 마.괜찮아.' 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 덕분인지, 남편은 언제든 꺼낼 수 있는 '휴직카드'를 품고 다닌다. 남편의 목표가 회사에서의 승진이면 그 뜻을 응원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응원할 이유가 없다. 경제적 여유 때문에 승진을 고민한다면, 재테크 방법을 서로 고민해보거나, 나의 경제활동으로 보완하면 된다. 결국은, 가정을 위해 각자 '가장'의 역할을 고민해보고 나아가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행복한 결혼 생활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실천하기 위해 각자의 수완을 잘 찾아볼 필요가 있다. 사회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정해진 역할 말고, 진짜 내 수완! 그것을 같이 찾아보는 것이야말로, 즐거운 결혼 생활의 키(key)가 되지 않을까!



완벽한 사람은 없다.

모든 부분을 완벽하게 해내는 사람은 없다. 저마다 잘하는 분야가 있고, 잘 해낼 수 있는 분야가 있는 것이다. 시대나 관습에 따라 상황을 재단하는 방법 말고, 각자의 방법에 대해 진심으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결혼에 있어서는 서로 원하는 삶의 모습을 먼저 나눠보고, 그에 맞게 각자의 수완을 충분히 관찰하고 이야기해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결혼=행복' 공식은 무조건 성립되는 것이 아니다.




에필로그-

남편이 어제 저녁을 먹으면서, 오늘 저녁 메뉴를 고민하더라고요?

무조림을 저녁 메뉴로 선정해 놨던데, 얼른 무조림 준비에 들어가 봐야겠네요.

하다 보면, 제 요리 수완도 조금씩 늘어가겠죠?

간 맞추기는 꽤 오랜 기간 남편의 몫이겠지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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