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으로 떠 오른 몇가지 단상 2.
최근 기성세대들 사이에서 "요즘 젊은이들은 애사심이 없다"라는 푸념을 자주 듣습니다. 하지만 이 현상을 제대로 들여다보면, 단순히 요즘 세대의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회사 생활을 접고 자영업을 십여 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알바생에 충성심? 애사심? 을 끌어 내기 정말 어렵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유는 아주 단순합니다. 최저시급이나 주는 소상공인, 그것도 언제 망할지 모르는 사업장에 자신의 ‘미래’를 걸 젊은이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시나요? 바로 이것이 조기퇴직을 앞둔 중년 직장인의 마음이라는 걸 말이죠. '애써봐야 종극에는 버려질 것, 나의 미래를 책임져주지 않는 곳'이라는 현실적 인식이죠.
문제는 이런 인식이 세대를 거쳐 전달된다는 점입니다. 직장에서 불안정한 지위를 경험하는 중년 부모들은 자신도 모르게 (부부간의 대화, 뉴스를 보며 내뱉는 한마디, 일상의 무심한 표현에서) 자녀들에게 ‘회사 믿지 말라, 결국 다 버린다, 사람은 쓸모없어지면 끝이야’라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결국 이는 자녀에게 축적되어 기업, 직장이란 조직에 대한 불신으로 자리 잡는 거죠. 결국 '애사심 없는 청년들'은 우리가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결과물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일수록 노동자의 권익 보호의 목소리는 더욱 중요해지지 않을까요? 젊은 세대들에게 ‘그렇지 않다. 기업의 이기적 행태를 국가가 제도적으로 억제하고 근로자 권익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러니 애사심을 가져라.’라고 어필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대기업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 요구를 '배부른 소리'라고 치부하는 시각이 존재합니다. 그것도 제법 강하게 말입니다. 사실 저도 그런 의식에 사로잡혔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당연합니다. 사회생활 30년 중 25년을 ‘고용주’ 입장에서 볼 수밖에 없는 위치였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와서야 진짜 ‘피고용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여하튼, 대기업 노동자들에게 ‘배부른 소리’라고 한다면 그래서 그들의 노동권 보호가 미진하다면, 중소기업의 상황은 어떻게 될까요? 뻔하지 않습니까?
최근 노란봉투법을 둘러싸고 많은 경제 전문가들과 언론이 이 법안의 경제적 부담을 우려하며 비판에 앞다투어 나서는 모습입니다. 이런 상태면 우리 기업들은 외국으로 빠져나갈 것이고 외국 기업은 투자를 꺼릴 것이다.라는 거죠.
하지만 정작 이 법안이 만들어진 배경—수많은 노동자가 파업으로 인한 막대한 손해배상에 시달리며 목숨을 끊고 그 많은 가정이 파탄 나는 현실—은 슬쩍 외면합니다. 기업이 노동자를 소모품으로 대하는 구조적 문제는 의도적으로 간과하는 거죠. 그들(언론 종사자)의 이런 태도 또한 직장에서 버티기 위한 치열하고 안쓰러운 몸부림이겠지만, 그래서 더더욱 씁쓸합니다.
예전 우연히 들었던 어느 유명 문화 평론가의 말은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시위는 불편하라고 하는 거지, 보기 좋으라고 하는 게 아니다
맞습니다. 시위의 본질은 그런 겁니다. 그것을 현실에서 극단적으로 보여준 사람이 바로 ‘청년 전태일’이었습니다. 평화시장 소녀 재봉사들의 극악한 노동환경(거의 매일 하루 12시간 이상 노동과 먼지로 인한 진폐증)에 전태일 열사는 스스로 몸을 불태워 세상에 경종을 울렸습니다.
"울지 않는 아이에게 젖을 주지 않는다"라는 속담처럼,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변화도 없다는 걸 그는 알았던 겁니다. 그게 누군가에게는 충격적이고 불편해 보이더라도 말이죠. 그렇게 청년 전태일은 차마 남에게 해를 끼칠 수 없었기에 자신을 불태웁니다.
참고로 ‘노동권’에 대한 의식이 거의 무지했던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미국과 호주는 파업 노동자들 무장한 민병대를 동원하여 무력으로 진압하고 심지어 학살을 자행했습니다. 우리는 그 시대를 역사서 속에서 ‘무지와 야만의 시대’로 표현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요즘 우리 사회에 회자하는 명언이 하나 있습니다.
그때는 총칼을 휘둘렀지만, 지금은 법 봉을 휘두른다.
유럽은 '프랑스 혁명'을 그렇게나 자랑스러워한다고 합니다. 유럽 사회에 민주주의의 기초를 마련하고 자유, 평등, 박애의 이념을 세계에 널리 전파했기 때문이라는 거죠. 그런데 그 혁명은 평화로운 대화로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누구나 압니다.
그런 맥락에서 영화 '깡패같은 내 애인'에서 백수 깡패 박중훈이 옆집 취준생에게 건넨 시니컬한 명대사(?)를 소개하고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우리나라 백수 애들은 착해요. 거 TV 보니까 프랑스 백수 애들은 취직 안 되니까 일자리 달라고 다 때려 부수고 개지랄을 떨던데. 우리나라 백수 애들은 다 지 탓인 줄 알아요. 지가 못나서 그러는 줄 알고... 아이구, 새끼들... 착한 건지 멍청한 건지. 취직 안 된다고 니 탓이 아니니까 당당하게 살아. 힘내, 씨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