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으로 떠 오른 몇가지 단상 1.
최근 '노란봉투법'이 우리 사회에 꽤 비중있는 화두로 떠오른 느낌입니다. 노동계의 환영과 재계의 일제 반발 속에서, 문득 떠오른 몇 가지 단상을 풀어볼까 합니다.
1989년, 패기 넘치는 젊은 다큐 감독 마이클 무어는 '로저와 나(Roger & Me)'라는 작품을 만듭니다. 제너럴 모터스(GM)의 공장 폐쇄로 몰락한 미시간주 플린트 시의 참혹한 현실을 다룬 다큐였죠. 훗날 미국은 이런 동네를 '러스트 밸트'라고 부르게 됩니다. 말 그대로 '녹슬어 몰락한 지대'죠.
GM은 높은 인건비와 강성 노조를 피한다는 명분으로 하루아침에 공장을 멕시코와 남부 저임금 지역으로 이전했고, 수만 명의 일자리가 사라지며 지역사회가 붕괴했습니다.
무어 감독은 GM 최고경영자 로저 스미스를 만나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결정을 내렸나?'라는 질문을 품고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끝내 실패합니다. 기업은 '경쟁력 확보'라는 명분으로 한 도시 전체의 운명을 바꿔놓았지만, 그 사회적 책임을 지는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당시 러스트 벨트 지역 중 하나인 '오하이오 미들타운'에서 5살 아이 하나가 살고 있었습니다. 천성이 착한 아이였지만, 자신의 가정과 이웃에 넘쳐나는 마약, 알코올, 폭력 속에서 성장했죠. 머리가 커가면서 이 아이는 자신이 겪는 모든 부조리가 지역의 빈곤과 몰락한 노동자 가정에 기인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1980년대 레이건 시절부터 본격화된 신자유주의 정책 덕분에 미국 제조업체들은 공장을 개발도상국으로 이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경제학적으로는 합리적 선택이었죠.
하지만 무어가 던진 질문은 다른 차원이었습니다. "기업의 효율과 비용 절감이라는 명분 앞에 인간의 존엄과 지역 공동체가 언제나 뒷전으로 밀려도 되는가?"
GM을 시작으로 다수의 글로벌 대기업들이 개발도상국으로 철수 한 이후 러스트 벨트 지역은 극심한 빈부격차와 몰락을 겪었습니다. 중산층 제조업 노동자들은 극빈층으로 추락했고, 술과 약물 남용, 범죄가 만연해지며 천문학적인 사회비용을 발생시켰습니다. 그리고 이때 생겨난 사회적 상처는 시간이 갈수록 더 깊고 넓게 악화되고 있습니다.
30여 년이 흐른 현재, 우리는 흥미로운 사람을 매일 뉴스에서 봅니다. 바로 '트럼프'입니다. 그의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정책은 역설적으로 해외로 이전한 제조업을 다시 미국으로 돌리고, 동맹국 기업들에게도 미국에 공장을 지으라고 압박하고 있죠.
그는 '위대한 아메리카'의 기둥인 노동자들의 경제적 지위 향상을 목청 높여 외치고 있습니다. 즉, MAGA는 '러스트 벨트'를 이전의 '스틸 벨트', '팩토리 벨트'의 영광으로 되돌리겠다는 겁니다.
그런 트럼프 옆에 부통령으로 곁을 지키는 사람이 있습니다. 언제나 터프한 수염과 무뚝뚝한 얼굴의 그는 젤렌스키와의 회담에서 그를 코앞에서 쏘아보며 '개망신'을 주어 화제가 되었죠. 최근 이재명 대통령과의 회담에서도 시종일관 찌푸린 미간으로 모든 발언을 모니터링하고 있었습니다.
부통령 'J.D 밴스', 그는 30년 전 가난과 마약, 알코올, 가정폭력이 넘쳐나던 러스트 벨트 지역, 오하이오 미들타운에서 살았던 바로 그 아이였습니다.
밴스는 자신을 "노동자 계급을 위해 싸우는 사람"이라 자임합니다. 민주당을 "엘리트 중심"이라 비판하며 미국 노동자들의 삶의 질 개선을 미국 경제의 중심 목표로 제시하죠. 한때 트럼프를 반대했지만, 이제는 MAGA 기치 아래 가장 충직한 지지자로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참으로 흥미롭지 않습니까? 자본주의 첨병 국가의 가장 친기업적일 것 같은 미국 보수 정치인들이 어쩌면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일 수밖에 없는 몰락한 미국 노동자들을 위한 정책을 펼치며 전 지구촌을 압박한다는 사실이 말이죠.
오늘 이 글은 '노란봉투법'으로 떠오른 몇 가지 단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