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의 진짜 이유는 공동체의 붕괴다
얼마 전, 처의 조카가(남자) 어렵게 아이를 얻어 현재 두 부부가 부지런히 육아 중인데, 맞벌이다 보니 ‘처형(그 조카의 엄마)’이 아들 집에서 한동안 살림살이는 도왔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고부지간’은 절대 쉽지 않은 관계죠.
그러던 어느 날, 며느리가 처형에게 수건을 개지 말고 세탁 수건 모아 넣는 바구니에 넣어달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이 말에 처형은 빈정이 상한겁니다. 수건을 보기 좋게 개서 수납장에 고이 넣어주면 고마워할 일인데 고맙다고 하기는커녕. 대충(?) 던져 놓으라고 하니 말이죠.
이 일화를 전해 들은 저도 - 나름 요즘 시대를 이해한다는 자부심을 가진 사람으로서 - 좀 의아했습니다.
‘아니 세탁한 수건을 바구니에 그냥 던져 놓으라고? 그리고 보기 좋게 개어 놓은 게 싫다고?’
이런 의아함은 처조카 며느리의 ‘요즘 젊은 부부들은 다 이렇게 해요’라는 말에서 이해의 실마리를 발견했습니다.
그러니까 요즘 젊은 부부 대부분은 맞벌이다 보니 수건 갤 시간조차 아깝고 또 수건은 구겨져 있다고 문제 될 것 없으니 그냥 예쁜 바구니에 넣어두고 티슈 뽑아 쓰듯 하는, 그러니까 형식이 아닌 실용을 택한 겁니다. 그런데 이런 문화가 정말 낯설었던 처형이나 우리 부부는 오해한 거죠. 사실 이 작은 일화는 이 시대의 화두인 ‘저출산’ 문제까지 확장됩니다.
언젠가부터 ‘독박육아’란 단어가 우리 사회에 자주 오르내립니다. ‘독박육아’는 누구나 알 듯 여성 혼자 육아를 하는 것을 말하죠. 그런데 ‘독박육아’의 고통과 위험(?)은 맞벌이 주부가 아닌 전업주부에게도 상당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독박육아로 인한 산후 우울증으로 일어나는 사건, 사고가 뉴스에 심심치 않게 오르는 게 그 방증이죠. 그런데 참 이상하죠? 여러 명도 아니고 애 하나 키우는데 맞벌이도 아닌 전업 주부가 그리 힘들어 한다고 하니 말이죠. 그런데 이에는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독박돌봄’이란 단어까지 등장했습니다. 바로 연로한 부모를 한 사람 또는 소수의 가족이 돌보는 현상을 말합니다. ‘독박육아’에 ‘독박돌봄’ 즉, 젊어서는 아이들 육아에 돈벌이 외 모든 시간을 쪼개 넣어야 하고, 이제 겨우 안정을 찾은 중년에는 연로하여 병약해진 부모님 수발에 자신의 시간을 쪼개야 하는 상황이 된 겁니다.
그럼 왜 ‘독박’이 되었을까요? ‘핵가족’을 넘어 이제 ‘핵개인화’란 단어까지 등장하게 만든 ‘공동체의 붕괴’ 때문입니다. ‘가족 공동체’의 붕괴 ‘마을 공동체’의 붕괴로 어린 자식과 늙은 부모를 혼자 감당해야 하는 시대가 된 거죠. 이러니 애를 낳고 싶겠습니까?
그런데 나이 든 중장년들이 가끔 착각하는 게 있습니다. ‘야 우리 때는 애를 기본적으로 서너 명은 낳았어, 그리고 논밭에 나가 일도 했다.’라며 요즘 세대가 허약하다고 타박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그때는 가족 공동체와 마을 공동체가 존재하여 아이들을 공동으로 육아했고 노인들은 마을 공동체에서 어른으로서 존중과 대접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이 그 부분을 간과하는 겁니다.
이제는 맞벌이로 수건 몇 장 갤 시간도 아까운 세상입니다. 직장 일로 피곤함에 절어 집에 오면 청소와 빨래 그리고 저녁 식사까지 준비하고 치워야 하죠. 아 로봇 청소기와 세탁기가 있다고요? 전문가들은 이렇게 이야기 하더군요.
“집안일을 도와주는 그 모든 가전의 개발 명분은 사람들의 여가 시간 확대였지만, 현실은 사람들에게 그 남는 시간만큼 더 많은 일을 하게 만들었다.”
맞습니다. 지금 우리는 너무 많은 시간을 일에 할애합니다. 청년은 말할 것도 없고 이제 중장년은 70세까지는 일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심지어 이전에는 주거 지역 근처가 일터였지만 지금은 수 킬로 또는 수십 킬로 밖의 일터로 나가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야 합니다. 그 결과 공동체는 붕괴하고 핵가족, 핵개인화의 시대가 열린 겁니다.
유명 작가 유발 하라리는 그의 저서 ‘사피엔스’를 통해 우리 현대인들의 이 상황을 아래와 같이 표현했습니다.
오늘날 풍요의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일주에 평균 40~45시간 일하지만, 개발도상국에선 평균 60시간, 심지어 80시간씩 일한다. (제 지인은 설계 회사에서 일하는데 신입시절 110시간 씩 일하기도 했습니다. 실화입니다.) 이에 비해, 지구상의 가장 척박한 곳에서 살아가는 수렵채집인, 예컨대 칼라하리 사막 사람들은 주 평균 35~45시간밖에 일하지 않는다. 이들은 사흘에 한 번밖에 사냥에 나서지 않으며 채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하루 3~6시간에 불과하다.
(중략)
수렵채집 경제는 농업이나 산업 시대보다 사람들에게 더욱 흥미로운 삶을 제공했다. 오늘날 중국의 직공은 아침 7시경에 집에서 나와 오염된 거리를 지나 노동착취 공장에 도착한다. 그가 똑같은 기계를 똑같은 방식으로 장장 열 시간 동안 멍하게 돌리고 나서 집에 돌아오면 저녁 7 시다. (필자의 직장인 시절을 돌이켜보면 언제나 아침 7시에는 집을 나서야 했고. 귀가 시간은 평균 8시, 9시였습니다.) 이때부터 접시를 닦고 빨래를 해야 한다.
3만 전 중국의 수렵채집인은 가령 아침 8시에 동료들과 함께 캠프를나섰다. 이들은 인근의 숲이나 초원을 오가며 버섯을 따고, 먹을 수 있는 뿌리를 캐고 개구리를 잡았다. 가끔은 호랑이를 피해서 도망쳤다. 오후에는 캠프로 돌아와 점심 준비를 했다. 덕분에 남는 시간에 이들은 가십을 나누고, 아들과 놀아주기도 하고, 지어낸 이야기를 하면서 한가롭게 보낼 수 있었다. 물론 호랑이에게 물려 가거나 뱀에게 물리는 일도 가끔 일어났지만, 자동차 사고나 산업공해에 대처할 필요는 없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 아프리카 속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