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보다 멀리, 함께 가는 길의 지혜
아프리카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흔히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인용되는 문구지만, 그 원류를 따라 올라가 보면 여러 버전의 속담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 중 탄자니아 루오(Luo) 민족 버전은 “청년은 혼자 빨리 달리고, 노인은 천천히 가지만, 청년과 노인이 함께 가면 멀리 간다”라는 구절이라고 합니다. 확실히 오리지날 버전은 좀 더 깊은 함의가 느껴집니다.
속담의 피상만 보면 험하고 먼 길을 걸음이 느린 노인과 동행해야 한다니 굉장히 모순적입니다, 그런데 조금만 더 들여다 보면 그들의 지혜야말로 위험이 상존하는 긴 여정을 버티게 하는 힘이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의사이며 작가인 아툴 가완디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서 정보화 사회가 노인을 더 이상 지혜의 상징으로 존중하지 않는 현실을 지적했습니다.
과거에는 생존의 비밀과 삶의 기술을 노인들이 쥐고 있었지만, 오늘날엔 검색창이 그 자리를 대신하면서 노인의 존재가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는 겁니다. 실제 요즘 우리 자녀들인 청년 세대가 부모와 조부모에게 지혜를 구하는 모습은 굉장히 보기 드문 풍경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노인의 지혜는 철지난 낡은 정보에 불과한 시대가 도래한 갈까요?
우리 곁의 몇몇 인물들을 떠올려 봅시다. 최재천 교수의 생태적 성찰, 도올 김용옥의 인문학적 해석, 이제 장년에 접어든 유시민 작가의 사회 비평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오랜 시간 시행착오와 숙성을 거쳐야만 만들어질 수 있는 통찰입니다. 인터냇 월드에 차고 넘치는 정보 따위와는 비교 불가한 지혜이며 요즘 청년들 말로'인사이트'입니다.
저는 이것을 위스키 또는 브랜디와 같은 숙성주에 비유하고 싶습니다. 정보란 숙성주의 재료인 과실일 뿐이죠. 아무리 좋은 과실이라도 그것만으로는 완성되지 않습니다. 장인의 손길, 오크 통 속에서의 숙성, 그리고 긴 세월이 더해져야만 깊은 향을 내는 위스키와 같은 숙성주가 됩니다. 지혜란 바로 이 과정의 산물이죠.
따라서 멀리 가는 사회는 단순히 정보를 많이 가진 사회가 아니라, 그 정보를 숙성시켜 지혜로 전환할 수 있는 세대를 존중하는 사회일 겁니다. 속도와 효율만을 추구하는 문화 속에서 ‘느린 동행자’인 노인을 다시 공동체의 길잡이로 세우는 일, 그리고 그들의 지혜가 공통체의 등대가 되는 사회야 말로 지속 가능한 사회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