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빵을 굽고 있는 가게를 보고 반가움에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프라하를 여행하면서 언젠가 저걸 꼭 먹어봐야지 싶었는데 느닷없이 굴뚝빵 가게가 나타난 것이다. 나는 어디를 가고 있는 중이었는데, 그 사실조차 다 까먹어버리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가게는 좁고 기다랬다. 그 좁고 기다란 데를 벽돌을 쌓아 만든 낮은 화덕과 과연 쓸모가 있을까 싶은 초록색 차양, 과일이 담긴 유리 냉장고와 등받이가 없는 나무 의자 서너 개가 채우고 있었다. 벽에 걸린 메뉴들은 과하다 싶을 만큼 종류가 많았다. 화덕 앞에서 쇠 손잡이를 열심히 돌리며 빵을 굽던 아저씨는 무심한 듯 친절했다. 그는 여전히 손잡이를 돌리며 눈썹과 눈빛으로만 '뭐 먹을래?'라고 물었다. 그의 눈썹 사이에 땀이 흐르고 있었다. 그 땀은 뭐랄까, 숭고해 보였다. 그가 자기 직업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노동은 땀이 되지 않았는가. 몸을 써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겸손해져 버린다. 나는 곧 손가락으로 굴뚝빵 안에 딸기와 크림이 담겨있는 사진을 가리켰고, 아저씨는 몇 분 후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빵을 건넸다. 그 빵은 정말 크고 따끈했다. 얼마를 지불하고 가게를 나왔다.
길에서 빵을 먹다가 가게 안에서 말 한마디도 듣거나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집으로 돌아가 굴뚝빵 아저씨를 떠올릴 때 나는 목소리 없는 그의 얼굴만 기억할 것이다. 빵 안에 담긴 크림이 자꾸 녹아 내려서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었다. 골목에서 더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 누군가의 흉상이 걸린 벽에 기대앉았다. 더운 날이었다. 손은 녹은 크림 때문에 찐득해졌고, 시럽은 너무 달아 입안을 텁텁하게 만들었다. 그토록 먹고 싶었던 굴뚝빵이 귀찮아진 것이다. 나는 쓰레기통에 먹다 남은 빵을 던져 넣었다. 벽에 걸린 흉상이 '너 빵을 쓰레기통에다 버렸지?'라고 쏘아대며 째려보는 것만 같아서 골목을 급하게 빠져나갔다.
그러곤 어느 성당 안에 들어가 버렸다. 대학교 과제 때문에 명동 성당 미사를 참석한 적이 두어 번 있었고 도시들을 여행하면서 유명하다는 성당에 가본 적이 몇 번 있었지만, 이렇게 불쑥 동네 성당 안으로 들어가 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낯설었지만, 빵을 쓰레기통에 버렸다는 순진한 죄책감을 해결할만한 장소로 성당만 한 곳도 없겠다 싶었다. 성당은 어두웠다. 내가 성당 안으로 몰고 들어온 바깥 습기는 순식간에 작은 물방울들이 되었고, 몸에 착 붙었다. 모자이크는 오후의 빛을 잘게 쪼갰고 높은 천장은 작은 발소리도 크게 울렸다. 굴뚝빵 아저씨의 땀과는 또 다른 숭고함에 몸이 움츠러들 때쯤, 이층 발코니 너머에서 웅장한 파이프 오르간 연주가 시작되었다. 더 이상 걸어 다닐 수도 서있을 수도 없어 바로 옆에 있는 기다란 의자에 앉았다.
아주 낡은 나무 의자였다. 누군가 지루한 강론을 못 견디고 펜으로 긁어냈을 낙서에다 손을 대었다. 그러자 몸에 감기던 찬 기운이나 웅장한 오르간 소리는 내게서 멀어졌고, 나는 순식간에 의자에다 흠집을 낸 사람을 생각했다. 필체를 보니 어린애는 아닐 것 같았고, 아마도 남자 어른일 것이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지만 여전히 자기 내키는 대로, 그러니까 강론이 지루하면 지루한 티를 내고 아내가 차려준 밥이 맛이 없으면 맛이 없다고 투정을 해버리는 남자가 아닐까. 아니면 할머니? 손주들에게는 신을 믿을 것을 강요하면서 정작 본인은 거룩한 성당에다 몰래 흠집을 내며 쾌감을 느끼는 이상한 할머니면 좋겠다. 어두웠던 실내가 끼익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잠깐 밝아졌다 다시 어두워졌다. 누군가 들어온 것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아 붙이고 기도하는 척을 했다. 들어온 사람은 내 옆을 지나 성당 앞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다시 웅장한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크게 들렸다. 나는 그 소리에다 내 목소리를 숨겨 이렇게 말했다.
"굴뚝빵을 버려서 죄송해요."
밖은 여전히 더웠지만, 해는 많이 누워있었다. 오후 다섯 시 삼십 분. 굴뚝빵 가게를 지나기 전, 내가 가고자 했던 데가 어디였는지 기억났지만 그냥 가지 않기로 했다. 숙소, 그러니까외곽의 낡은 나의 아파트로 돌아가 찐득한 손과 텁텁한 입을 얼른 씻고만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