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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미림 Dec 28. 2020

밤에 섞여 든다

카파도키아

    터키 카파도키아는 나에게 있어서 가장 외로운 곳이었다. 


    신이 빚은 경이로운 자연물 앞에 인간은 겨우 한 알의 모래 같다. 그 작은 모래알들도 가족끼리 혹은 친구끼리 함께 모여 다녔지만, 그곳에서 나는 철저히 혼자였다. 열기구를 타고 하늘 높은 데에 이르렀을 때도, 수많은 계곡을 지날 때에도, 땅 속 깊은 데에 있는 지하도시 데린쿠유를 다닐 때에도 나는 혼자였다. 그래서였는지 카파도키아를 떠날 땐 마음이 홀가분했다.


    카파도키아떠나는 날, 이스탄불로 가는 야간 버스표를 예매하고 배낭을 맡겼다. 건조한 바람이 부는 겨울날이었다. 마음을 데워줄 정찬이 필요했기에 부러 외곽에 있는 오래된 레스토랑을 찾아 들어갔다. 레스토랑은 다른 카파도키아 건물들이 그렇듯 묵직한 돌로 지어져 있었다. 천장엔 낡은 빛의 샹들리에 여러 개 걸려있었고, 호두나무로 만든 식탁과 의자들이 정갈하게 늘어서 있었다. 여러 개의 포와 나이프, 그 사이에 놓인 접시들과 와인잔과 황금색 냅킨. 창문으로 들어오는 석양빛 여전히 밝아 촛불을 켜 두지 않았다. 그곳엔 어떤 음악도 들리지 않았다. 다른 방에서 들려오는 흐릿한 웃음소리만 간간이 들려올 뿐이었다. 나는 눈을 돌려 건너편 바를 바라보았다. 그 위엔 수많은 잔들과 술병들, 그리고 그곳과 어울리지 않는 회색 유선 전화기와 작은 금고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얼마가 지나니 할아버지 웨이터가 가죽으로 감싼 커다란 메뉴판을 가지고 왔다. 나는 토마토 수프와 새끼 양고기 요리와 사과주스를 주문했고, 할아버지는 아주 잘 결정했다는 듯 빙긋 웃었다.


    음식이 나왔을 땐 이미 해가 많이 누워 내부가 컴컴했다. 하지만 누구도 촛불을 붙이거나 조명을 켜주지 않았다. 대신 조용한 바이올린 연주곡을 들려주었다. 토마토 수프는 아주 맛있었고, 새끼 양고기 요리는 입에 맞지 않았다. 거기에 후추도 뿌려보고 소금도 더 쳐보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요리는 한 접시에 삼만 원이나 하는 비싼 요리였는데... 아무도 없는 커다 홀이 완전한 어둠에 잠식되기 직전에서야 희미한 조명이 켜졌다. 나는 양고기 요리를 다 비우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루 바닥이 삐걱거렸다. 할아버지가 입에 맞지 않느냐고 물었지만, 난 버스 시간이 다 되었다고만 답했다.


    완연한 밤이 되었다. 배낭을 맡겨 두었던 직원 대신 다른 직원이 이것저것을 확인하고 내 배낭을 순순히 내어주었다. 그녀는 내게 몇 가지 안내 사항을 들려주었다.


    "이 버스를 타고 여기보다 더 큰 버스 터미널에 가게 될 거야. 거기에서 이 버스보다 더 큰 버스로 갈아타면 돼. 그런데 버스 시간이 잘 맞지 않으면 오래 기다려야 할 수도 있어."


    그의 말투는 좀 흐리멍덩한 데가 있어 귀에 쏙쏙 박히지 않았다. 피곤한 탓도 있었다. 나는 대충 알았다고, 고맙다고 인사를 한 뒤 작은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는 서서히 카파도키아를 떠나며 작은 언덕길을 올랐다. 광활한 계곡들, 동굴 호텔들. 밤이 내려앉은 카파도키아 위에 반짝이는 불빛들이 피어나고 있었다. 깜깜하고 반짝이는 카파도키아, 건조한 겨울바람이 몰고 온 모래 알갱이들이 온 마을을 훑고 지나는 오래된 도시. 거기에다 나의 무거운 외로움을 묻어 두었고, 한결 가벼워진 나는 아무런 죄책감 없이 밤에 섞여 들었다.


2018, 카파도키아, 터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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