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보다는 그냥 안녕이 나을까? 넌 친구들과 수행여행을 떠나고 있던 어린 학생이었으니까 내가 누나가 맞을 거야. 그래도 너를 잘 모르니 말을 높여 쓰겠습니다. 아아, 안녕하세요? 나는 한국에 사는 사람입니다. 기억할까 모르겠어요. 우리는 할슈타트에서 잘츠부르크로 가는 기차에서 만났었어요. 그때 나는 유럽을 여행하던 중이었습니다. 처음 떠나는 유럽이었기에 참 많이 설렜고 또 그만큼 많이 긴장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고 싶었지만 돈이 넉넉하지 않아 정말 가보고 싶었던 나라 몇 군데를 추려서 여행을 했어요. 그중에 당신이 살고 있는 나라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오스트리아는 정말 아름다운 나라더군요! 영화 속에서나 보던 오래된 카페의 그윽한 매력이나 알프스 산맥의 위엄, 아기자기하지만 또 어느 면에선 굉장히 웅장해 보이던 건물들이 지금도 마음에 남아있습니다. 내가 지내던 비엔나 숙소 근처에는 강을 낀 공원이 있었는데요, 거기서 맞이하는 고요한 시간은 제게 깊은 평안의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긴 줄을 서서 표를 샀던 오페라 하우스의 공연과 매일 사 마셨던 비엔나커피도 지금 생각하면 나에게 너무나 큰 행복이었습니다.
많은 것들이 좋았지만, 사실 저는 오스트리아를 여행하면서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이 참 좋았습니다. 아침 산책을 다녀오는 길, 아침거리를 사러 들어간 동네 맥도날드에서 여행의 행복을 바라 주던 직원의 얼굴을 잊을 수 없어요. 할슈타트 호숫가에서 대화를 나누었던 가게 주인아저씨 역시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그 아저씨는 백조들에게 빵을 나누어주고 있었는데요, 그 모습에 매료되어 내가 먼저 말을 걸었었지요. 그는 내가 기대했던 것처럼 참 좋은 사람이었어요. 벼락이 치는 운터베르크에 올랐을 때 우리를 지켜주던 가이드 아저씨도, 코카콜라를 사러 들어갔던 구멍가게 할머니도, 숙소 호스트 할아버지도 참 친절했습니다. 시장에서 소시지를 살 때,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애를 쓰던 정육점 사장님과 내게 와인을 건네던 카페 사장님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저 심심풀이로 내 발을 걸었거나 친구들에게 우쭐해 보이고 싶은 마음에 배낭을 멘 여행자의 발을 걸었을지도 모릅니다. 정말 아니길 바랍니다만, 어쩌면 내가 동양인이기 때문에 발을 걸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약간 욱하는 성질이 있어서 넘어질 뻔하고는 그냥 못 지나가겠더라고요. 당신한테 다시 돌아갔고 사과하라고 요청했지요. 하지만 당신의 표정이나 태도는 내게 전혀 미안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당신 주변의 친구들이 나에게 사과했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난 다음, 오스트리아를 떠나기까지 아니 떠나고 나서도 꽤 오랫동안 그 나라가 조금 싫었습니다. 수많은 좋은 만남들이 있었음에도 한 번의 나쁜 만남은 그 힘이 세서 좋은 만남들 모두를 까마득하게 만들었거든요...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도 이런 생각은 좋은 게 아니라는 걸 알아요. 좋은 일은 좋은 일대로 두고 나쁜 일은 나쁜 일대로 두어야지요.
아무튼 지금에 이르러서 이 글을 쓰는 건 당신의 사과가 필요해서는 아닙니다. 나도 십 대 때는 자존심도 세고 쓸데없는 객기를 부리기도 했었기 때문에... 이제는 당신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결국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나에게 미소와 친절을 보여준 당신의 나라 사람들에게 고맙기 때문이고, 더 큰 오해를 불러들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고, 나 역시 당신에게 쬐금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는 이 글을 쓰면서 또다시 다짐합니다. 누구에게라도 친절해야겠다고. 나보다 덜 가졌거나 혹은 약해 보이거나, 가난한 나라의 사람에게도, 설령 나에게 해를 가한 사람일지라도. 선입견을 버리고 일단 먼저 이해해야겠다 라고. 나는 이미 어른이지만, 진짜 어른이 된다면 정말 좋은 어른이 되었으면 합니다.
어쨌든 나에게 경험을 주어 고마워요. 안녕히, 잘 지내시길 바라요. 다시 만날 일은 없겠지만 가끔씩 멀리서 축복을 빌게요.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