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상처와 미래의 불안 사이에 머무르던 나는 있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이스탄불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어디든 상관없었고, 어디든 가야 했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당장 떠날 수 있는 가장 먼 곳으로. 어깨에 짊어진 무거운 배낭의 무게로 불안의 압박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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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에 도착한 뒤, 성 소피아 성당 뒷골목에 있는 낡은 호스텔에 자리를 잡았다. 콩알만 한 방안엔 이상하리만큼 커다란 침대 하나가 덜렁 놓여 있었고, 매일 밤 짙은색 나무문 밖으로 술 취한 여행객들의 소음이 넘어 들어왔다. 엄지 손가락 한 마디만 한 열쇠 구멍으로 누군가 내 방을 들여다보기라도 할까 봐, 나는 늘 그 구멍 속에다 휴지를 욱여넣어야 했다. 좁고 어둡고 낡은 호스텔 방에서 딱 한 가지 마음에 드는 것은 커다란 창문이었다. 창문 너머엔 하늘이 가득했다. 커다란 침대 한가운데 웅크리고 누워 창밖의 비를 바라보는 시간, 그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스탄불에서의 시간이었다.
호스텔을 나와 조금만 걸으면 성 소피아 성당이 보였다. 부슬거리는 비가 내리던 날, 하필 그날은 밸런타인데이였다. 꽁냥 거리는 연인들을 뒤로하고 발이 닿는 대로 걸었다. 트램을 탔다가 내리고, 아무 버스에 올랐다가 내렸다. 그렇게 베벡에 닿았다. 나는 선착장 옆에서 낚시를 하는 남자들을 구경하거나 버스킹 하는 현악 4중주 팀의 연주를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중식당에 들어가 터무니없이 비싼 라조기와 코카콜라를 먹었고 다시 바닷가를 걸었다. 여전히 흐린 하늘과 찬 바닷바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밸런타인데이를 즐기려는 연인들 틈에서 결국 짜증이 났다. 희한하게 생겨먹은 호스텔 방도, 며칠 째 내리는 비도, 점심값으로 엄청난 돈을 지불해야 했던 것도 짜증 났다. 커피를 마시러 들어간 카페에 앉을자리가 없었던 것도 짜증이 나는 데 한몫했겠지.
사소한 짜증은 한국에 두고 온 깊은 절망을 다시 불러들였다. 지난날 나에게 상처를 주고도 여전히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의 얼굴은 베벡에 선 내 두 발을 갯벌 한가운데 선 것처럼 질퍽하고 무겁게 만들었다. 얼굴 바로 앞까지 내려앉은 뿌연 스모그 같은 미래도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그렇게 '지금의 나'는 슬며시 사라지고, 또다시 과거의 상처와 미래의 불안만이 실존하게 된 것이다. 이런 위기의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인가. 도망치듯 잠을 잘 수도 없고 바다로 뛰어들어 유영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때, 내 눈에 새빨간 장미가 보였다. 털모자를 쓰고 휠체어에 앉아있는 남자의 무릎에 다소곳이 놓여있는 여러 송이의 밸런타인데이 장미들. 온통 회색인 베벡 거리에 유난한 색깔을 뿜어내는 꽃들.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는 꽃들. 시간으로부터 잘려버린 하찮은 꽃들이 참 예뻤다. 덧없고, 한시적이며, 아무 쓸데없는 꽃의 아름다움이 모든 시간에 얽매어 다 죽어가고 있는 나와는 달리 예뻤다. 나는 남자에게 50리라를 건네 꽃을 샀고, 콩알만 한 호스텔 방으로 돌아왔다. 열쇠 구멍에 휴지를 욱여넣고 비에 젖은 옷을 아무렇게나 벗어던져놓은 후 페트병에다 꽃을 꽂아 침대 맡에 두었다. 충성스러워 보일 정도로 지금 가장 아름다운 꽃 곁에서 잠깐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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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여섯 시, 배가 고파 잠에서 깼다. 아까 성 소피아 성당 앞에서 본 구운 옥수수 생각이 나서 새빨간 꽃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성당 앞 분수대에 앉아 샛노란 옥수수를 먹고 있는데 거기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갑자기 하늘을 올려다보며 탄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하늘을 덮고 있던 먹구름 틈에서 빛이 세어 나오더니 이내 모든 곳에 분홍색이 내렸다. 그리고, 무지개. 덧없고, 한시적이며, 아무 쓸데없는 무지개가 성당 위에 곱게 피어나자 사람들은 녹아내릴 것처럼 행복해했다. 물론 나도 행복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뭐하러 과거에 스스로 얽매어 있나, 그냥 개나 줘버리라지. 불안할 건 또 뭐야, 흥. 그냥 저 무지개처럼 살아야겠다. 그렇게 살 수 없어도,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처럼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