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을 보러 나라에 갔다. 입구에서 사슴들에게 나눠 줄 전병을 산 뒤 떨리는 마음으로 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엔 많은 무리의 사슴들이 사람들과 어울려 있었다. 무서워하는 쪽이 있었다면, 그건 사슴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사슴들이 엉덩이로 사람들을 밀거나 전병을 달라고 콧등으로 손을 툭툭 치기라도 할 때면 사람들은 어쩔 줄 몰라하며 그들의 품을 사슴들에게 내어 주고 말았다. 나도 가지고 들어간 전병을 순식간에 털리고 말았지만 가까이서 사슴들을 볼 수 있었기에 그걸로 만족했다.
공원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면, 거기엔 공원 초입보다 훨씬 더 평화로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노목을 잘라 만든 벤치에 앉아 사슴에게 전병을 나누어주는 노부부의 모습, 병아리 같은 모자를 쓴 유치원생들의 삐약거리는 소리, 슬램덩크에서나 보았던 그런 교복을 입은 학생들의 수줍은 눈 맞춤. 정오를 막 지난 햇살은 늦가을의 단풍 위에 고이 내려앉아 잎들을 투명하게 만들었다. 그 볕 아래 반쯤 누워 꾸벅꾸벅 졸고 있는 아기 사슴. 나는 그 아기 사슴 옆에 앉아 아까 사둔 도라야끼를 먹었다.
오후엔 비가 내렸다. 노목에 앉아 있던 노부부도 비를 피해 사라졌고, 삐약거리던 아이들의 소리는 빗방울에 묻혔다. 검은색 교복을 입은 남학생들 몇몇만 남아 여전히 사슴들과 놀고 있었지만, 이들도 곧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비 속에서 태연한 건 사슴들뿐이었다. 큰 눈만 꿈뻑일 뿐, 사슴들은 비를 피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는 것 같아 보였다. 추울 텐데, 얼른 집으로 들어가렴.
챙겨 온 우산을 쓰고 공원을 나와 한참을 걸으니 소박한 동네다. 내 앞으로 커다랗고 각진 책가방을 멘 초등학생 여러 명이 작은 우산 하나를 나눠 쓰며 하교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자리를 번갈아가며 공평하게 비를 피하고 맞는다. 그 예쁜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다가 더 좁은 골목으로 꺾어 들어갔다. 낮은 건물들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나는 더 좁은 골목으로 더 깊은 데로 걷다가 결국 길을 잃었다.
그다음엔 모든 것이 꿈같았다. 전병을 먹는 사슴들과 투명하게 빛나던 단풍나무들은 아득해졌고, 작은 우산을 돌려가며 쓰던 아이들은 이곳 나라가 아닌 서울 어디께에서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바스락, 주머니에 들어있는 도라야끼 비닐만이 이건 꿈이 아니라고, 여전히 너는 일본을 여행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