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미림 Dec 26. 2020

깊은 밤의 메디나

카이르완

    튀니스에서 낡은 폭스바겐 골프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갔다. 가는 길 내내 펼쳐지던 메마른 광야와 올리브 나무들, 선인장들은 내가 북아프리카에 있다는 사실을 쉬지 않고 알려주며 '어때, 신기하지?'하고 묻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으로 마음이 들뜨지는 못했다. 자리가 너무 좁았다. 내 옆에 앉은 꼬마는 차 안에서 졸며 나에게 포옥 기대곤 했는데, 퍽 무거웠다. 내게 기대어 잠든 아이는 자기 방을 내게 내어주고 대신 거실 소파에서 불편한 잠을 자며 며칠을 보내고 있었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들어 그 애가 더 편하게 기댈 수 있도록 몸을 고쳐 앉았다. 뒷좌석 창문은 아주 검게 코팅이 되어 있어 바깥 경관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두 시간 반을 달려 카이르완에 도착했다. 거긴 오래된 도시의 냄새가 났다. 두껍고 탄탄하고 각진 노란색 성벽 파란 하늘색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며 메디나(구시가지를 이슬람 국가에서 부르는 말)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은 모세혈관 같은 골목들이 끝없이 이어진 휘황찬란한 곳이었다. 수많은 보석 가게들과 향신료 가게들, 과자점들과 레스토랑들. 어느 것 하나 단조로운 게 없는 곳이었다. 동양인은 나와 꼬마 형제 둘과 선생님 부부, 이렇게 다섯 밖에 없었다. 키가 크고 잘생긴 북아프리카 사람들은 힐끔거리거나 아니면 아예 대 놓고 노골적으로 우리를 바라보았고, 툭툭 말을 던지기도 했다. 그들의 관심에 지칠 때쯤, 건물 이층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어느 가게에 들어갔는데 바깥보단 조용했지만 눈이 부시도록 반짝이는 수많은 장식들로 혼란스러운 곳이었다. 거긴 여행자들을 상대로 낙타와 함께 사진을 찍어주고 돈을 받는 곳이었다. 눈을 가린 낙타 한마리가 기둥에 묶여 있었다. 나는 사진을 찍고 싶지 않다고 말했지만 주인아저씨는 내 손목을 낚아채서 낙타의 목을 만지게 했다. 무례함에 화가 나기 보다는 낙타에게 마음이 쓰였다. 혹에 두른 수많은 구슬들이 낙타의 눈물처럼 보였다.


    얼마를 내고 도망치듯 건물을 빠져나왔다. 조금 더 메디나를 걷다간 온몸에 힘이 빠질 것 같아 얼른 밖으로 나왔다. 한산한 골목, 거리에 늘어놓고 파는 양탄자 구경을 하다가 상인에게 붙들려 사지도 않을 양탄자 설명을 삼십 분 넘게 들었다.


    "이거 기도할 때 진짜 좋아. 기도를 안 한다면, 그냥 집에 걸어 놔도 예쁘지 않겠어? 이거 다 손으로 짠 거야."


    그를 뿌리치고 대 모스크로 했다. 일부 무슬림들은 메카와 예루살렘, 사우디아라비아의 메디나와 함께 이곳 카이르완을 4대 성지로 여긴다고 했으니, 이 모스크가 가지는 의미도 굉장할 것이었다. 콧수염이 멋진 모스크 관리인은 나에게 회색 스카프를 건네주며 머리를 가려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그 옆에 있는 빨간색을 달라했다. 관리인은 한 번 으쓱하고는 빨간 스카프를 건네주었다. 모스크는 굉장히 컸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많은 정교한 문양들로 가득한 곳이었다. 시간을 껴안은 수많은 양탄자들, 손으로 깎아 만든 나무 문들, 타일들, 굵고 얇은 기둥들과 샹들리에. 섬세한 것에서 눈을 돌려 높이 솟은 탑을 바라보면 현기증이 났다.


    그건 현기증이 아니라 허기였다. 우리는 모스크를 나와 식사를 할만한 튀니지안 식당을 찾았다. 바깥은 저녁이 내려앉았고, 노랗던 성벽에 가로등이 비치니 곧 황금색으로 빛났다. 두려운 건 딱 하나, 키가 큰 남자들이었다. 저녁 시간의 카이르완에는 어린아이들이나 노인들, 여성들은 보이지 않았다. 젊은 남자들만 벽에 기대어 소란스럽게 떠들어댔고, 거칠게 운전을 해댔다. 다행히 더 어두워지기 전에 괜찮은 식당을 찾아냈다. 구글 지도의 평점도 꽤 높은 곳이었다. 식당 안엔 현지인들이 가득했고, 조금 대기를 한 다음 안내해주는 자리에 가서 앉았다. 거기서 꾸스꾸스와 토마토 올리브 샐러드, 오짜와 쇼르바를 먹었다. 모든 음식이 입에 잘 맞았다.


    바깥은 이제 완연한 밤이었다. 아까 본 동네 청년들은 그 수는 적어졌지만 여전히 시끄러웠다. 무슬림들은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데, 꼭 술에 취한 것처럼 어쩌면 약을 한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무서웠다. 잰걸음으로 주차장 가다가 내게 기대어 잠을 잤던 꼬마가 갑자기 코피를 흘려서 그 자리에 멈춰섰다. 선생님은 아마 얘가 너무 신나는 하루를 보내면서 무리를 한 것 같다고 말했다. 맞아, 너 아까 너무 신나게 돌아다니더라. 우리 중 누구도 휴지를 가지고 있지 않아 아이의 고개를 숙이게 하고만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쌩-하고 달리는 자동차 한 대가 위협적으로 우리 옆을 지나갔다. 아, 얼른 옷으로라도 코를 막고 자리를 뜨려는 순간 아까 그 차가 다시 우리 옆으로 미끄러지듯 오더니 차를 세웠다. 그때 난 '어떻게 하면 멋지게 싸워 이길까'와 '어떻게 하면 빠르게 도망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자, 여기 휴지."


    그 자동차 안에는 네다섯 명의 남자들이 타고 있었고, 그 중 한명이 창문을 내리고 우리에게 휴지를 건넸다. 부드럽고 젠틀하게. 얼떨결에 건네받은 휴지로 아이의 코를 막고 나서야 자동차에 대고 고맙다는 말을 했다. 남자들은 쿨하게 엄지를 지켜 세우더니 다시 쌩-하고 가던 길을 다. 무릎에 들어간 긴장이 풀리고 그제야 카이르완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 깊은 밤의 메디나가 눈에 들어왔다.


2018, 카이르완, 튀니지






















이전 16화 비가 내리는 나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