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미림 Dec 25. 2020

심오한 생각은 짧았고, 들고 있는 빵은 너무 컸다

간쑤 성

    중국 서안을 시작으로 북서쪽으로 올라가는 여행이었다. 나는 그 길에서 이슬람교를 믿는 회족 마을과 티베트 불교를 믿는 장족 마을을 각각 여행했다. 그 두 마을 사람들은 놀라울 정도로 다른 삶을 살고 있어서 여행하는 몇 주 동안 여러 개의 나라를 한 번에 다녀온 기분이 들었고, 두 세상 모두 내 마음에 깊이 들어와 있다.





-

    중국 회족의 시작에는 크게 두 개의 설이 있다. 하나는 당나라와 티베트 토번 사이의 전쟁이 있던 9세기 초, 티베트 토번에 의해 동원된 아랍 및 페르시아 출신의 용병들이 당나라의 포로로 잡혀갔다가 처벌을 받는 대신 그 땅에서 한족 아내를 얻어 정착하게 되면서 시작되었다는 설이다. 또 다른 설로는 13세기 초, 칭기즈칸이 이끄는 군대에 속한 이들이 이슬람교를 믿는 중앙아시아 사람들이었고 이들이 중국에 정착하면서 회족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어쨌든 나는 무슬림 하면 까무잡잡한 피부와 오뚝한 코, 덥수룩한 수염과 짙은 쌍꺼풀을 가진 모습을 자동적으로 떠올렸는데, 이곳 중국에서 그 선입관이 무너졌다. 하얗고 동그란 모자를 쓰고 있다는 것만 빼면 회족 사람들은 한족 사람들과 비슷한 얼굴이었다.


    그래서 난 더 혼란스러웠다. 얼굴은 나와 비슷한 동양인인데, 먹는 거나 입는 건 물론 가치관과 세계관까지 완전히 다른 회족 사람들 틈에서 보내는 며칠은 신비롭기까지 했다. 도시를 울리는 이슬람 기도 소리와 모스크에 모여 일제히 머리를 땅에 대는 수천 명의 사람들. 그들은 어떻게 중국 문화 안에서 그들의 문화를 지켜냈을까. 시간은 피를 섞으며 그들의 얼굴을 동양인의 것으로 만들어 놓았지만, 그들 안에 있는 진짜 모습은 감히 건드리지 못했다. 회족뿐 아니라 중국 내 모든 소수 민족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회족 사람들의 도시에서 벗어나 외곽에 있는 작은 마을로 향했다. 마을의 이장 격인 '이맘'이 여행자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고, 귀한 손님들이 오셨다며 음식을 대접해 주겠다 했다. 그러곤 어디선가 꽤 통통한 산양 한 마리를 끌고 나타났다. 나는 그다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공터 한가운데에 작은 구덩이를 팠다. 양을 눕히고 양의 머리를 그 구덩이 쪽에다 놓았다. 양의 눈은 슬퍼 보였지만 반항하진 않았다. 매애애-하며 한번 울지도 않았다. 이맘은 커다란 칼을 가져와 양의 멱을 땄다. 컥, 외마디 작은 소리가 양의 입에서 돌멩이처럼 튀어나왔다. 칼이 닿은 목에서 피가 쿨럭쿨럭 흘러나와 구덩이에 쏟아졌지만, 땅은 그 피를 모두 삼켜 버렸다. 양은 몇 번인가 다리를 움찔대더니 그마저도 멈추었고, 참 착하게 죽었다.


    사람들은 양을 들고 다시 집 마당에 들어가 가죽을 벗기고 내장을 꺼내고 죽은 양을 뒤집어 걸어놓았다. 그렇게 하면 아직 덜 빠진 피가 흘러나온다고 했다. 나는 그 모든 과정에서 입을 틀어막고는 있었지만, 눈을 감지는 않았다. 거꾸로 매달린 양, 아니 양고기 앞에서 마을 꼬마들은 천진난만하게 장난을 치며 놀았다. 집안 여자들은 수줍게 웃으며 내장에서 똥을 뺐다. 그들에게 양을 잡는 일은 평범한 일상이거나 오히려 아주 신나는 파티의 시작일 것이다. 그날 저녁, 나는 양고기 요리를 먹었다. 가끔씩 양의 착한 눈이 생각났지만, 마을 사람들에게 실례를 범하고 싶지 않았다.


    그 집에서 하루를 묵고 난 다음 날 아침, 마을 산책을 하다가 많은 물소리가 들려 그쪽으로 가봤다. 같이 길을 나선 마을 청년이 저 강이 황하라고 알려주었다. 말로만 듣던 황하, 강의 이름과 꼭 맞게 황하는 황토색이었다. 5,000km가 훨씬 넘는 길이의 강은 대륙을 휘감듯 흐르며 어마어마한 문명들이 피어나는 것을 다 봤을 것이다. 그걸 생각하니 마음이 겸손해졌다. 청년은 그런 나의 마음을 헤아렸는지 아무 말도 걸지 않고 내가 강을 마음에 다 담을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우리는 그 앞에서 얼마 동안 있다가 돌아왔다.


    점심을 먹고 한 회족 할머니가 직접 만드셨다는 과일차를 마셨다. 기다란 유리컵 안에 말린 과일 몇 가지와 덖은 잎들, 꽃 한 송이가 소담히 들어 있었다. 할머니와 나는 한 마디의 대화도 나눌 수 없었지만, 내어주신 차를 맛있게 먹는 모습으로라도 감사를 전해드리고 싶었다. 할머니는 나의 등을 여러 번 토닥거려 주셨다. 황하 강 앞에서 내 마음을 헤아려주던 청년처럼, 할머니도 내 마음을 헤아려 주시는 듯했다.


    며칠 후 버스를 타고 다시 도시로 나왔다. 히잡 하나와 동그란 무슬림 모자 하나를 기념품으로 샀고, 전에 먹어보고 싶었던 커다랗고 동그란 빵 '카오낭'을 사서 들고 다니며 먹었다. 난 그 빵이 달달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퍽퍽하고 밋밋한 밀가루 빵이어서 좀 실망했다. 다시 모스크 앞에 가서 메카를 향해 절하고 기도하는 수천 명의 사람들을 바라본다. 무엇이 저들을 엎드리게 만드는 것일까, 하는 심오한 생각은 짧았고, 들고 있는 카오낭은 너무 컸다.


2014, 간쑤 성, 중국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