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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후 Sep 28. 2024

하루 10분 쓰는 것만으로도 삶이 달라진다

자기 서사의 힘: 정체성 형성과 행동 변화

2008년 1월, 뉴욕 시의 한 공립 고등학교. 겨울 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9학년 교실에 들어선 선생님의 얼굴에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오늘부터 몇 주에 걸쳐 특별한 수업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여러분, 이번 학기에는 조금 특별한 활동을 할 거예요," 


선생님이 말했다. 교실 뒤쪽에서 몇몇 학생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고개를 들었다.


마이클이라는 이름의 한 학생이 특히 눈에 띄었다. 그는 항상 시험 전날이면 불안에 시달렸고, 그때마다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마이클은 이번 학기에도 별다른 변화가 있을 거라 기대하지 않았다.


첫 번째 중요한 시험 직전, 리사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10분 동안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대해 글을 쓰라고 했다. 


"여러분이 시험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여러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자유롭게 써보세요. 그리고 이러한 감정들이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인지도 생각해 보세요."


마이클은 펜을 들고 잠시 망설였다. 그러다 천천히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시험을 볼 때마다 긴장돼.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 긴장감은 내가 이 시험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뜻이야. 그리고 난 이전에도 긴장 속에서 잘 해냈어. 이번에도 할 수 있을 거야."


이 활동은 학기 중 여러 차례 반복되었다. 매번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도록 격려했다.



몇 주가 지나고 중간고사 기간이 다가왔다. 마이클은 여전히 긴장했지만, 뭔가 달랐다. 시험지를 받아 들고 심호흡을 하며 자신에게 속삭였다. 


'난 할 수 있어. 긴장은 그저 내가 준비되어 있다는 신호일 뿐이야.'


학기가 끝나갈 무렵, 놀라운 변화가 있었다. 마이클뿐만 아니라 이 활동에 참여한 많은 학생들의 성적이 눈에 띄게 향상됐다. 특히 평소에 시험 불안이 심했던 학생들에게서 더 큰 효과가 나타났다.


이때서야 밝혀진 사실은, 이 모든 것이 교육 심리학자인 티모시 윌슨(Timothy Wilson) 교수와 그의 연구팀이 준비한 장기적인 실험의 일부였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야기 수정(story editing)' 기법이라 불리는 이 반복적인 글쓰기 활동이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있었다.


티모시 윌슨 교수, ⓒUniversity of Virginia


윌슨 교수의 이 혁신적인 접근법은 우리가 자신과 세상에 대해 만드는 이야기, 즉 내적 내러티브의 힘에 주목했다. 이는 심리학계에서 주목받고 있던 또 다른 개념인 '내러티브 참여(Narrative Engagement)' 이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자, 이제 이야기의 마법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들여다보자. 내러티브 참여 이론은 우리가 이야기에 푹 빠질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고 말한다. 마치 우리가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된 것처럼, 그들의 경험과 감정을 직접 느끼게 된다. 그리고 믿기 힘들겠지만, 이 가상의 여정이 실제 우리의 행동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윌슨 교수의 실험은 이 강력한 도구를 학생들의 손에 쥐어준 셈이다. 학생들은 자신의 불안과 걱정에 대해 글을 씀으로써, 자신만의 내적 대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자신의 감정과 행동을 새롭게 해석하고, 마치 현명한 조언자의 지혜를 얻은 것처럼 변화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2000년대 초반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의 멜라니 그린(Melanie C. Green)과 티모시 브록(Timothy C. Brock) 교수의 연구는 더욱 의미를 갖는다. 그들은 '내러티브 전이(Narrative Transportation)'라는 개념을 통해 이야기가 어떻게 사람들의 신념과 태도를 변화시킬 수 있는지 설명했다.


그린과 브록에 따르면, 우리가 이야기에 푹 빠지면 현실 세계는 잠시 흐릿해지고 이야기 속 세계가 선명해진다. 마치 꿈속으로 들어간 것처럼 말이다. 이 상태에서 우리는 주인공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그들의 생각을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러한 메커니즘은 뇌과학적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2009년 프린스턴 대학의 우리 하손(Uri Hasson)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이야기를 듣는 사람의 뇌 활동 패턴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의 뇌 활동 패턴과 동기화되는 현상이 관찰됐다. 이야기가 우리를 하나로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끈이라는 증거다.


2013년 에모리 대학의 그레고리 번스(Gregory S. Berns) 교수팀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갔다. 그들은 소설을 읽은 후 사람들의 뇌가 실제로 변화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마치 이야기가 우리 뇌의 근육을 단련시키는 것처럼, 언어 처리와 감각 운동 영역의 연결성이 강화된 것이다.


이런 이론적 배경을 바탕으로,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스토리와 공감을 통해 어떻게 행동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자기 서사 만들기: 마이클의 사례처럼, 자신의 미래 모습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이를 이야기로 만들어보는 것이 좋다. 이 과정에서 목표를 향한 동기부여가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다.


롤모델의 이야기에 몰입하기: 존경하는 인물의 자서전이나 그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통해 그들의 경험을 간접적으로 체험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이는 새로운 관점과 태도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감정적 공명 활용하기: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보다 감동적인 스토리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할 때 더 효과적이다. 가족이나 동료와의 대화에서도 이를 활용해 볼 수 있다.


시나리오 시뮬레이션: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있다면, 각 선택에 따른 결과를 구체적인 이야기로 만들어보는 것이 좋다. 이는 더 나은 의사결정을 도와줄 수 있다.


긍정적 자기 대화: 내면의 부정적인 독백을 긍정적인 서사로 바꿔보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할 수 없어"라는 생각 대신 "나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장할 거야"라는 식의 내적 이야기를 만들어보는 것이 좋다.


이야기의 힘은 비즈니스 세계와 개인의 커리어에서도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기업들은 단순히 제품 스펙을 나열하는 대신, 고객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스토리를 전달한다. 파타고니아(Patagonia)가 그 좋은 예다. 이 아웃도어 의류 기업은 제품의 기능성을 넘어, 환경 보호와 사회적 책임이라는 더 큰 이야기를 전한다. 그들의 "우리의 지구를 위한 사업(Business for Our Home Planet)" 캠페인은 단순히 옷을 파는 것이 아니라, 고객들이 환경 보호에 동참하는 주인공이 되도록 독려한다. 이를 통해 파타고니아는 단순한 소비자를 넘어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공동체를 형성하며 고객과 강력한 유대를 만들어낸다.


ⓒ파타고니아


조직 내부에서도 스토리텔링의 힘은 크다. 리더가 단순히 목표 수치를 제시하는 대신, 그 목표 달성 후의 비전을 구체적인 이야기로 그려낸다면 팀원들의 동기부여와 참여도는 크게 높아질 것이다.


개인의 커리어에서도 마찬가지다. 취업 면접에서 스펙을 나열하는 대신 자신의 경험과 역량을 하나의 일관된 서사로 풀어내면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다. 네트워킹 상황에서도 효과적인 스토리텔링은 더 의미 있는 관계 형성으로 이어진다.


자신의 커리어를 하나의 '영웅 서사시'로 바라보는 시각은 장기적인 동기부여와 회복탄력성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 어려움을 성장의 기회로, 실패를 필연적인 시련으로 재해석하면 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


결국, 스토리와 공감을 통한 행동 동기 부여는 단순한 심리적 트릭이 아니다. 이는 인간의 근본적인 인지 과정과 뇌의 작동 방식에 기반한 강력한 도구다.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타인과 연결되며, 우리 자신을 변화시킨다.



뉴욕의 한 고등학교에서 시작된 작은 실험을 떠올려보자. 마이클과 그의 급우들이 시험 전 자신의 감정을 글로 써 내려가며 경험한 변화. 그들의 작은 에세이가 실제 학업 성취도 향상으로 이어졌듯이, 우리 모두의 내면에는 변화의 씨앗이 잠재해 있다. 그리고 그 씨앗은 바로 우리가 만들어내고 공유하는 이야기를 통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다.


당신의 이야기는 어떤 모습인가? 그리고 그 이야기는 당신을 어떤 주인공으로 만들어갈까? 이제 펜을 들어 당신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갈 시간이다. 그 이야기 속에서 당신은 단순한 관찰자가 아닌,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진정한 주인공이 될 것이다. 마이클이 그랬듯이, 당신도 자신의 이야기를 바꿈으로써 현실을 바꿀 수 있다. 자, 이제 당신의 새로운 챕터를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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