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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후 Oct 04. 2024

보면 볼수록 편하고 좋아지는 것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다

단순 노출 효과와 인지적 편향: 친숙함이 선호도와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

1992년 가을, 미국 위스콘신 대학교의 한 연구실. 심리학자 로버트 자이언스(Robert Zajonc) 교수는 오랫동안 연구해 온 '단순 노출 효과(Mere Exposure Effect)'에 대한 결정적인 실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의 목표는 친숙함이 선호도와 공감에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것이었다.


자이언스 교수는 실험 참가자들을 모집했다. 그들에게 중국어 문자를 보여주기로 했는데, 이는 참가자들이 의미를 전혀 알지 못하는 중립적인 자극물이었다. 실험은 단순했지만 그 결과는 놀라울 수 있었다.


"여러분, 이것은 중국어 문자입니다," 자이언스 교수가 실험 시작 전 참가자들에게 설명했다. "의미를 알려드리지 않을 겁니다. 그저 보기만 하면 됩니다."


몇 주에 걸쳐 실험이 진행되었다. 자이언스 교수는 일부 문자는 자주 보여주고, 다른 문자들은 덜 자주 보여주었다. 참가자들은 모르는 사이에 특정 문자들에 더 자주 노출되고 있었다.



실험의 마지막 날, 자이언스 교수는 참가자들에게 최종 질문을 던졌다.


"실험 중 본 문자들이 얼마나 긍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을 것 같은지 평가해 주세요."


결과는 자이언스 교수의 가설을 강력하게 지지했다. 참가자들은 더 자주 본 문자들이 더 긍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들은 의미도 모르는 글자를, 단지 자주 봤다는 이유만으로 더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이 실험은 '단순 노출 효과'를 명확하게 입증했다. 사람들은 단순히 어떤 대상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그 대상에 대해 더 긍정적인 감정을 갖게 된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이다.


친숙함의 심리학적 기제

자이언스 교수의 1992년 실험 결과가 발표되자, 한 젊은 진화심리학자가 자이언스 교수에게 질문을 던졌다.

"교수님, 왜 우리 뇌는 이렇게 작동하는 걸까요?"

자이언스 교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했다.


로버트 자이언스(Robert Zajonc) 교수


"그것은 아마도 우리의 생존 본능과 관련이 있을 겁니다. 생각해 보세요. 원시 시대에 낯선 것은 종종 위험을 의미했죠. 반면 익숙한 것은 안전을 의미했습니다. 우리 뇌는 그래서 익숙한 것에 대해 더 편안함을 느끼도록 진화했을 수 있습니다."


이 설명은 많은 연구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단순한 심리 현상을 넘어, 인간의 진화와 생존 전략이 현대인의 행동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2004년, 캐나다 워털루 대학의 스티븐 스미스(Steven Smith)와 리처드 페티(Richard Petty)는 이 연구를 한 단계 더 발전시켰다. 그들은 친숙함의 효과가 단순한 선호를 넘어 공감 능력까지 향상시킬 수 있다는 가설을 세웠다.


실험실에서 그들은 참가자들에게 다양한 광고 메시지를 들려주었다. 일부 메시지는 자주, 다른 것들은 가끔 들려주었다. 실험이 끝난 후, 그들은 참가자들에게 각 메시지에 대한 공감도를 물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참가자들은 더 자주 들은 메시지에 대해 더 깊은 공감을 표현했다. 심지어 처음에는 동의하지 않았던 내용도, 반복해서 듣다 보니 점차 동의하게 되는 경향을 보였다.


스미스는 이 결과를 보며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이것 봐, 리처드. 우리가 예상한 대로야. 친숙함이 공감을 만들어내고 있어!"


그러나 이들의 연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11년, MIT의 낸시 칸위셔 교수팀은 이 현상을 뇌과학적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그들은 fMRI를 이용해 참가자들이 익숙한 얼굴을 볼 때의 뇌 활동을 관찰했다.


실험실의 모니터에는 다양한 얼굴 이미지가 번갈아 나타났다. 칸위셔 교수는 집중하며 뇌 스캔 결과를 지켜보았다. 그때 그녀의 눈이 번쩍 떠졌다.


"여기 봐요!"


그녀가 동료들을 향해 외쳤다.


"익숙한 얼굴을 볼 때마다 방추상 얼굴 영역과 편도체의 활성화가 확실히 증가하고 있어요."


이 발견은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방추상 얼굴 영역(Fusiform Face Area)은 얼굴 인식을, 편도체(Amygdala)는 감정 처리를 담당하는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친숙함이 단순한 인지적 현상을 넘어 우리의 감정 반응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뇌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연구들은 친숙함이 우리의 인지 과정과 정서적 반응에 얼마나 깊이 관여하고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주었다. 단순한 선호를 넘어, 친숙함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방식의 근간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일상에서의 적용: 친숙함을 통한 공감 증진

이런 이론적 배경을 바탕으로,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친숙함을 활용해 더 깊은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반복적 노출: 자이언스의 중국어 문자 실험에서 보았듯이, 새로운 아이디어나 개념을 이해하려 할 때 한 번에 모든 것을 파악하려 하기보다는 여러 번 반복해서 접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는 학습 과정에서 특히 유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새로운 언어를 배울 때 매일 조금씩 꾸준히 노출되는 것이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학습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깊이 있는 관찰: 스미스와 페티의 연구에서 광고 메시지에 반복 노출된 참가자들이 보인 더 깊은 이해와 공감을 떠올려보자. 익숙한 대상이라도 매번 새로운 측면을 발견하려 노력하면 친숙함과 새로움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오랜 친구나 가족과의 대화에서 늘 새로운 질문을 하거나 새로운 주제로 대화를 시도해 보는 것이다.


문화적 몰입: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자 할 때, 단기간의 관광보다는 장기간 그 문화에 노출되는 것이 더 깊은 이해와 공감을 가능하게 한다. 이는 칸위셔의 연구에서 보여준 뇌의 반응과도 연관된다. 새로운 문화에 오래 노출될수록 그 문화의 얼굴, 표정, 행동 양식 등이 우리 뇌에 더 익숙해지고, 결과적으로 더 깊은 이해와 공감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관계 형성: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시간을 들여 상대방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이는 더 깊은 유대감과 공감으로 이어진다. 자이언스의 실험에서 보았듯이, 단순한 노출만으로도 긍정적인 감정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새로운 관계에서도 꾸준한 만남과 대화를 통해 서로에 대한 이해를 깊이면 자연스럽게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다.


자기 성찰: 자신의 감정과 생각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기록하는 습관을 들이면, 자기 이해와 자기 공감 능력이 향상된다. 이는 칸위셔의 연구에서 보여준 뇌의 반응을 자기 자신에게 적용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에 더 자주, 더 깊이 접할수록 자기 이해가 깊어지고 결과적으로 자기 공감 능력도 향상될 수 있다.


이러한 방법들을 통해 우리는 일상에서 친숙함의 힘을 활용하여 더 깊은 이해와 공감을 실현할 수 있다. 다음으로는 이러한 원리가 비즈니스 세계와 개인의 커리어 발전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살펴보자.


비즈니스와 개인 커리어에서의 적용

앞서 살펴본 연구 결과들과 일상에서의 적용 방법을 바탕으로, 이제 친숙함의 힘이 비즈니스 세계와 개인의 커리어 발전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탐구해 보자.


브랜드 전략: 오틀리의 도발적인 반복

2018년 여름, 스웨덴의 한 광고 회의실. 오트밀크 브랜드 '오틀리(Oatly)'의 직원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CEO가 방금 던진 질문에 모두가 망설이고 있었다.


"우리가 정말 이 슬로건을 쓸 거야? 'It's like milk, but made for humans'? 유업계가 우리를 가만히 놔둘까?"


침묵이 흐르다 한 젊은 직원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처음엔 충격적일 수 있어도, 계속 노출되면 사람들이 받아들이게 될 거예요."


CEO의 눈이 반짝였다.

"그래, 한번 해보자고!"


그렇게 시작된 오틀리의 도발적인 캠페인은 처음에는 논란의 중심에 섰다. 우유 업계는 격렬히 반발했고, 일부 소비자들은 불편함을 표했다. 하지만 오틀리는 굴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 슬로건을 버스, 지하철, 빌보드, 심지어 커피숍 벽에까지 끊임없이 노출시켰다.


ⓒOatly


시간이 지나면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이 슬로건에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심지어 재미있어하기 시작했다. 소셜 미디어에서는 이 문구를 패러디한 밈이 유행했다. 오틀리는 이를 재치 있게 활용해 고객들과 소통했다.


그 결과는 경이로웠다. 2021년, 오틀리의 글로벌 매출은 전년 대비 무려 52.6% 증가했다. 제품의 품질도 중요했지만, 이 대담한 마케팅 전략이 큰 역할을 한 것이다.


개인 커리어: 틱톡 이력서의 부상

2022년 초, 뉴욕의 한 스타트업 사무실. 인사 담당자는 한숨을 쉬며 책상에 쌓인 이력서 더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그녀의 눈에 이메일 한 통이 들어왔다.


제목: "이력서 대신 틱톡 영상을 확인해 주세요"


호기심에 링크를 클릭한 제시카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60초짜리 영상 속에서 한 지원자가 자신의 경력과 역량을 재치 있게 표현하고 있었다. 배경음악, 텍스트 효과, 심지어 춤까지. 담당자는 그 영상을 세 번이나 연속해서 보았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Z세대 구직자들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친숙함의 원리를 활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짧지만 강렬한 영상을 반복적으로 노출시킴으로써, 채용 담당자들의 마음속에 자신의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있었다.


2022년 틱톡의 조사 결과는 이 트렌드를 명확히 보여줬다. Z세대의 18%가 이미 틱톡을 통해 구직 활동을 하고 있었다. 전통적인 이력서가 사라질 날도 멀지 않아 보였다.


ⓒ틱톡


이러한 사례들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브랜드든 개인이든, 성공의 열쇠는 단순히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익숙함과 새로움의 균형을 찾는 데 있다는 것이다. 자이언스, 스미스, 페티, 칸위셔의 연구가 보여준 것처럼, 우리의 뇌는 익숙한 것에 더 깊이 반응한다. 하지만 그 익숙함을 어떻게 창조적으로 활용하느냐가 관건이다.


오늘날의 비즈니스 리더와 구직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당신은 어떻게 친숙함의 마법을 당신만의 성공 스토리로 만들어낼 것인가?"


결론

위스콘신 대학교의 조용한 실험실에서 시작된 자이언스의 작은 불씨는 이제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을 밝히는 등불이 되었다. 중국어 문자에 반복 노출된 참가자들의 눈빛에서 시작된 미세한 변화는, 마치 나비효과처럼 우리의 일상과 사회, 그리고 비즈니스 세계를 변화시키는 강력한 바람이 되어 불고 있다.


친숙함은 마치 오래된 나무와 같다. 겉보기에는 평범해 보이지만, 그 뿌리는 깊고 단단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가지를 뻗어 나간다. 이는 단순한 편안함을 넘어 더 깊은 이해와 공감, 그리고 혁신의 토양이 된다. 낯선 것을 향한 모험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발 밑의 익숙한 땅을 더 깊이 파는 것이 더 큰 보물을 발견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당신의 일상은 어떠한가? 매일 마주치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반복되는 업무의 리듬 속에서, 당신을 둘러싼 환경의 세세한 부분에서 어떤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까? 익숙함의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면, 전에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색채와 패턴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친숙함의 힘을 활용하는 것은 마치 정원을 가꾸는 일과 같다. 매일 조금씩 관심을 기울이고 물을 주다 보면, 어느 날 문득 아름다운 꽃이 피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당신은 이미 한 걸음 더 성장해 있을 것이다.


자, 이제 당신의 일상으로 돌아가 보자. 오늘 당신이 마주할 익숙한 풍경들 속에서, 어떤 새로운 가능성이 숨어 있을까? 친숙함이라는 마법의 지팡이를 들고, 당신만의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갈 시간이다. 기억하라, 가장 위대한 모험은 때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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