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가지가지 한다

by 오늘도 생각남

어렸을 적 책을 읽을 때는 서문과 목차는 건성으로 봤다. 바로 본문부터 책 읽기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부연 설명은 건너 띄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어른이 되어서 뒤늦게 서문과 목차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서문은 저자가 책을 쓴 이유를 포함하고 있다. 서문을 보면 책에서 어떤 이야기를 다룰 것인지를 알 수 있다. 목차는 책의 뼈대를 보여준다. 그래서 서문과 목차는 부연 설명이 아니라 책의 핵심 요약이라 할 수 있다. 핵심 요약을 건너뛰고 책을 빨리 읽게 됐다고 좋아했던 순진했던 나. 지금은 책을 읽을 때 목차부터 본다. 서문에서 밝힌 책을 쓰는 이유를 목차에서 잘 구조화하여 보여주고 있는지도 꼼꼼히 살핀다. 목차만 잘 읽어도 책의 절반은 다 읽은 것 같은 충만함이 들기도 한다.


맵에도 목차가 있다. 주요 가지는 맵의 뼈대이고 목차다. 주요 가지는 맵이 뻗어갈 방향을 보여준다. 맵 유형은 주요 가지에 의해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읽기와 쓰기에도 주요 가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읽기는 세부 가지를 거슬러 올라가 주요 가지를 발견하고 중심 이미지(주제)를 찾아내는 요약의 과정이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한 문장을 찾아내는 것이다. 쓰기는 읽기의 역순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한 문장(중심 이미지)에서 시작해서 주요 가지를 설정하고 세부 가지를 뻗어가는 확장의 과정이다. 주요 가지를 찾았다면 읽기도 쓰기도 절반은 끝난 셈이다.


주요 가지는 자석의 성질도 갖고 있다. 주요 가지가 결정되면 세부 가지는 저절로 달라붙는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주요 가지의 자석 원리를 잘 보여주고 있다. 유튜브는 내가 직전에 봤던 영상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다음번에 유튜브에 접속하면 지난번에 봤던 영상과 비슷한 영상들을 추천해준다. 영화 리뷰 영상을 봤다면 또 다른 영화 리뷰 영상을. 예능 영상을 봤다면 관련 예능 영상을. '관심'이라는 나의 주요 가지를 파악해서 '관련 영상'이라는 세부 가지를 추천하는 것이다. 어떤 때는 나보다 내 취향을 더 잘 아는 듯도 하다. 혹자는 유튜브의 자석 알고리즘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개인 성향(주요 가지)에 맞춰 필터링된 정보로 이용자 스스로 편향된 정보에 갇히는 '필터 버블'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게 되는 '확증편향'에 빠질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의식하던 의식하지 못하던 나의 ‘관심’이라는 주요 가지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내 삶의 세부 가지들은 저절로 결정되고 있다. 이렇듯 주요 가지는 방향과 흐름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글에서도 맵에서도 삶에서도.


그렇다면 주요 가지를 어떻게 잘 설정할 수 있을까? 주요 가지는 패턴이다. 주요 가지는 결국 패턴 선택의 문제라 할 수도 있다. 좋은 패턴을 많이 배우고 상황에 맞는 패턴을 잘 선택할 줄 알아야 한다.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라'는 말이 있다. 세상을 넓게 보라는 의미다. 그러나 거인의 어깨에서 봐야 하는 것은 넓은 세상만이 아니다. 거인의 '생각의 주요가지'도 봐야 한다. 거인의 '생각의 경로'를 배워야 한다. 그것은 훌륭한 '생각의 패턴'이다. 거인에게서 생각의 패턴을 배우고 필요한 경우 상황에 맞게 꺼내쓸 줄 알아야 한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말이 있다. 여기에 '가지'를 보태고 싶다. 숲이 세상이고 나무가 한 개인이라면 가지는 그 개인을 이루고 있는 뼈대다. 가지들이 나무를 만들고 나무들이 모여 숲을 이룬다. 숲의 가장 기본적인 뼈대는 가지가 만든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가지 중심 사고’가 중요하다. ‘가지’를 정복하는 자가 ‘숲’을 정복할 수 있다.


맵을 잘 모르는 사람은 중심 이미지와 가지를 그리는 당신의 모습을 보고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 "참, 가지가지한다." 하지만 신경 쓰지 마시라. 그것은 그 사람이 아직 맵의 가치와 ‘가지 중심 삶’의 중요성을 모르기 때문이니. '가지가지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면 당신은 '목차가 있는 삶'과 '뼈대있는 삶'을 잘 살고 있는 것이다.

SmartSelect_20201030-223754_CamScanner.jpg
keyword
이전 09화디지털 맵 vs 아날로그 맵, 뭐가 더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