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는 아이를 조그만 창고에 홀로 두고 밖에서 문을 잠갔다. 창고 안은 캄캄했다. 사내는 문 밖 돌바닥에 그려진 바둑판에 바둑을 두기 시작했다. 창고 안에 갇혀있는 아이와 함께. 사내는 돌바닥 바둑판에. 창고 안 아이는 머릿속으로. 아이에게 머릿속으로 바둑 두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사내가 아이를 혼자 창고에 가둔 것이었다. 그렇게 며칠 동안 밥도 먹지 못하고 창고 안에 갇혀 머릿속으로 바둑을 두던 아이는 결국 사내를 이기게 된다. 그리고 창고 밖을 나온다. 영화 ‘신의 한 수, 귀수 편’ 이야기다.
이와 비슷한 장면을 간혹 영화에서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악당과 싸움에서 지고 있던 주인공이 지그시 눈을 감는다. 눈은 감았지만 마음의 눈을 뜨고 결국 악당을 물리친다. 영화 속 이 장면들은 눈에 보이는 현상보다 본질에 집중할 때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메시지로 이해된다.
맵 고수도 손으로 맵을 그리지 않는다. 맵은 중심 이미지와 가지로 구성돼 있다. 중심 이미지와 가지는 현상일 뿐이다. 그렇다면 맵의 본질은 무엇일까? 바로 ‘질문’이다. 맵 주제에 대한 중심 이미지와 생각의 가지들은 ‘질문’으로부터 나온다.
멋진 중심 이미지를 그려내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주제에 맞는 중심 이미지를 고민하는 과정이다. 주제를 잘 표현할 수 있는 중심 이미지를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는 것. 이 과정에서 우뇌가 발달하고 시각화 능력도 함께 자라난다. ‘2021년’이란 주제를 중심 이미지로 표현한다고 가정해보다. 어떻게 시각화할 수 있을까? 우선 ‘2021’이란 숫자가 떠오른다. 2021년은 ‘소’ 띠의 해다. 여기서 ‘소’는 2021년과 관련된 중요한 이미지다. 2020년의 가장 큰 화두는 역시 ‘코로나 바이러스’였다. 2020년은 이제껏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이었다. 2021년 키워드 중 하나를 ‘바이러스 이코나미’라고 정의하는 사람들이 있다. ‘위기를 기회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도 많이들 한다. 그런 점에서 영문자 ‘V’ 도 2021년과 관련해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Virus Economy의 ‘V’와 위기를 기회로 삼아 바이러스로부터 승리하자는 Victory의 ‘V’. 결론적으로 중심 이미지에는 ‘2021’이라는 숫자를 크게 그리고 숫자 ‘0’ 대신 몸통이 동그란 소를 그려 넣는다. 소의 동그란 몸통 안에는 Virus Econmy와 Victory를 상징하는 V를 그려 넣는다.
이런 고민의 과정이 중심 이미지를 그리는 본질이다. 종이에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생각을 옮기는 과정일 뿐이다.
가지도 마찬가지다. 가지치기를 할 때도 중요한 것은 질문이다. 맵의 가지들에는 보이지 않는 질문들이 숨어있다. 가지가 뻗어나가는 방법은 세 가지다. 질문 가지, 분류 가지, 연상 가지. ‘2021년 계획 세우기 맵’을 그린다고 가정해보자. '내가 왜 2021년 계획을 세우고 있지?', '2021년은 무엇을 목표로 할까?' 하는 질문들이 질문 가지를 만든다. '어느 분야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 카테고리를 구분하는 질문은 분류 가지를 만들어낸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은 뭘까?', '그와 관련된 일이 뭐야 있을까?' 하는 연관성, 관련성을 찾는 질문은 연상 가지를 만든다.
아이들에게 맵 교육을 시킬 때도 ‘질문’은 효과적이다. 중심 이미지와 가지를 그리는 방법부터 가르치려 하면 아이들이 맵에 대한 부담을 느낄 수 있다. 질문을 먼저던져보자. 단답형보다는 서술형으로 아이가 대답할 수 있도록 질문하는 것이 좋다. 아이들에게 할 수 있는 질문은 크게 두 종류다. why와 how. '왜 그랬을까?(why)', '너라면어떻게 했을 것 같아?(how)' 질문을 던져서 아이가 생각의 가지치기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나아가 스스로 질문 가지를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맵 교육의 목적이라 할 수 있다.
한창 당구에 재미를 붙인 당구 초보들이 겪는 동일한 경험이 있다. 자려고 누우면 천장이 당구대로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당구공도 함께 보인다. 눈을 감아도 당구대와 당구공은 사라지지 않는다. 머릿속으로 수백 번, 수천 번 당구를 친다. 한 마디로 당구에 미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미쳐야 미친다고 했던가. 이 상태가 지속되는 어느 날, 당구 초보는 ‘당구의 길’을 보기 시작한다. 내 당구공을 쳐서 득점할 수 있는 길을. 그리고 그렇게 초보는 고수가 된다.
바둑 고수가 머릿속으로 바둑을 두고 당구 고수가 머릿속으로 당구를 치는 것처럼 맵 고수도 손이 아니라 머리로 맵을 그린다. 맵의 본질은 '질문'이다. 종이와 펜은 거들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