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떠난다. 아빠의 연설이 시작되었으니 언제 끝날 지 모르기 때문일 거다. 더욱이 아빠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하기가 편하지 않은 이유도 있을 게다.
아이들의 심정도 이해는 간다. 내가 아이들보다 분명 주식에 대해서는 더 잘 안다고 생각하는 데도 주식 투자 수익률에서는 아내나 아이들보다 내 수익률이 낮다.
주식을 잘 알아도 주식 수익률이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주식은 주식회사에서 회사의 권한을 나누어 주는 일종의 증권이다. 주식은 회사의 전체 자산을 회사가 발행한 전체 주식의 수로 나누어 갖는다는 일종의 약속이다. 그리고 회사를 운영하면서 발생하는 이익에 대해서도 n분의 1에 해당하는 권리가 보장되는 증권이다. 더불어 주주총회에서 보유한 주식의 수만큼의 의결권을 갖게 된다. 이것이 주식의 전부다.
그런데 주식의 권한을 남에게 넘기는 일종의 주식 거래가 발생하면서 문제가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이러한 과정을 사람들은 주식 투자라고 한다. 그리고 주식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기능은 뒷 전으로 밀리고 주식 투자가 주식을 대표하는 의미로 등장하여 일반적으로 주식 투자를 한다는 말을 그냥 주식한다고 이야기한다.
여기까지는 주식의 본래의 기능이 반영된 부분을 찾을 수 있다. 주식 투자를 하는 사람들은 투자하려는 회사의 경영 상태나 재무구조 등등을 살펴보고 앞으로의 회사 전망을 살펴보며 투자처를 물색한다.
그렇다고 회사의 경영 상태나 재무구조 그리고 앞으로의 전망이 좋다고 하여 무조건 주식의 가격이 오르는 거는 아니다. 절대적인 어느 기관이 있어서 이러한 다양한 회사의 상황을 평가하여 주식 가격을 정해주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실제 주식 가격의 결정은 회사의 건전성과 발전 가능성 등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주식의 가격은 주식 시장에서 팔려는 사람과 사려는 사람, 즉 매도자와 매수자에 의해서 결정된다. 주식을 팔려는 사람이 많아서 자신이 팔려는 주식이 잘 팔리지 않으므로 자신의 주식 매도 금액을 낮추어 불러서 싸게라도 팔려는 사람이 많으면 주식의 가격은 떨어진다.
반면에 주식을 사려는 사람이 많아서 현재의 주식 가격으로는 주식을 사기가 힘들어서 매수 금액을 높게 불러서라도 사려는 사람이 많아지면 주식의 가격은 오르게 된다.
이때에 주식을 팔거나 사려는 사람들이 모두 회사의 가치를 생각하고 앞으로의 수익률을 전망하여 거래를 하지는 않는다. 주식을 거래하려는 사람들의 이유는 정말도 다양하다. 당장 자금이 필요하여 가지고 있던 주식을 처분하려는 사람부터 매수 금액보다 현재의 주식 가격이 올랐으므로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서 팔려는 사람까지 그 외에도 다양한 이유로 주식을 팔려고 한다. 사려는 사람의 이유도 마찬가지로 다양하다.
이러한 다양한 이유로 주식을 사려하고 팔려하면서 주식의 본래의 기능은 거의 잊히고 주식이 마치 돈 놓고 돈 먹기 식의 도박과 비슷한 양상을 띄게 된다. 실제로 가치 투자를 옹호하고 장기 투자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이러한 주식 가격의 결정 과정을 무시할 수는 없다. 단지 언젠가는 참이 거짓을 이길 거라는 종교적 신앙과 같은 믿음을 갖고 있을 뿐이다.
모든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엄청 많은 사람이 주식을 할 정도로 주식의 열기는 대단하다. 유튜브를 보면 주식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강의를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누군가는 장기 투자를 하여 돈을 벌었고 누군가는 단기 투자를 해서 돈을 벌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자신의 방법이 옳다고 주장하며 자신들을 따라 할 것을 권한다.
누군가는 회사의 가치에 중점을 두어 투자해야 한다고 하고 누군가는 주식 지수를 보고 투자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어느 투자 방법도 우리의 투자 수익을 완전하게 보장하지는 못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허와 실이 공존하여 돌아가고 있다. 실에 해당하는 회사의 가치가 뛰어나다고 하여 반드시 주식 가격이 오르는 게 아니며 허에 해당하는 현재의 주식 가격을 무시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무엇이 허이며 무엇이 실인가 이다. 주식을 하는 목적이 회사 운영에 따른 이익 분담금을 받기 위함이 아니고 회사 운영에 관여하기 위함이 아니며 오로지 주식 거래를 통한 차익을 실현하기 위함이라면 주식 지수와 그래프를 보면서 투자를 하는 행위를 단정적으로 잘못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허와 실이 공존하는 상황은 단지 주식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동네 마트나 재래시장에 가면 작은 공간에서 반찬을 파는 가게를 볼 수 있다. 요즈음 젊은 사람들은 여기서 파는 반찬을 어떤 의미로 생각할지 궁금하다. 내가 어릴 때의 반찬은 말 그대로 밥을 먹기 위한 찬이었다. 주식이 밥이었으므로 밥을 잘 먹기 위한 일종의 보조 음식이었다. 그래서 밥을 먹지 않고 생선 한 마리를 통째로 먹는 일은 용납되지 않았다.
밥은 주식이 아니라 찬을 먹기 위한 보조 음식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듯하다. 밥공기는 점점 작아져서 양식당에 가면 밥공기 자체가 없어지고 접시 위에 아이스크림 떠 놓은 모양으로 밥을 액세서리처럼 조금 주는 경우도 있다. 이제는 반찬이라고 하지 말고 찬반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자동차나 가전제품을 살 때에도 기능보다 먼저 디자인을 살펴보게 된다. 디자인은 이미 모든 분야에서 대세가 되었다. 제품의 기능은 이제 거의 평준화되어 있으므로 기능보다는 내 마음에 드는 아름답고 세련된 디자인의 제품에 먼저 눈이 가게 된다. 분명 제품에서 기능이 실이고 디자인은 허에 불과한 거일 텐데 요즈음은 디자인이 실이고 기능이 허가된 듯한 느낌이다.
그렇다고 실이 없는 허는 존재할 수 없다. 단지 허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허와 함께 하는 실의 위치를 제대로 인지하고 살아가야 하는 세상에 와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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