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난 공부방 - 아이에게서 삶을 배웁니다.
" 왜 공부하니?”
처음 아이를 보면 물어보는 질문이다. 초등 아이부터 고등부까지 아이들은 다양한 답변을 한다. 가장 많이 하는 답변이 무엇일까?
첫째, 부모가 이유이다. “엄마, 아빠가 공부를 해야 잘 산데요.”
잘 살기 위해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질문을 한다.
“잘 사는 것이 뭐라고 생각해?”
“돈을 잘 버는 거요.”
내가 공부하는 이유가 아닌 부모로부터 수없이 들은 말로 머릿속에 박혀버린 이유를 말한다. 대학을 가야 안정적인 직장을 얻고 사람한테 무시를 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남의 시선과 안정적인 직장을 이유로 아이들에게 공부를 하라고 한다. 그러나 더 이상 안정적인 직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잘 살기 위해서 공부해야 한다는 이 말이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다. 무조건 돈과 직장에만 연결하여 공부를 하도록 만드는 것은 아이에게 잘못된 선입견을 심어줄 수 있다.
두 번째, 지극히 개인의 존재 면에서 공부의 이유를 찾는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엄마가 시켜서 했던 공부는 대학을 가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바뀌어 있다. 전공이나 하고 싶은 공부를 말하는 것이 아닌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라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대학을 간 다음에는?”
이 질문에는 대부분 답을 하지 못한다. 대학만 생각하고 공부를 하니 그다음의 자신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가장 놀라게 했던 대답이 있다. 인정받기 위해서라고 답한 경우였다.
“어떤 인정?”
공부를 함으로써 받은 성적이나 상장 등이 자신이 잘한 결과를 말해주기 때문에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학생은 늘 리더와 멘토 역할을 하기 위해 고등학교 내내 고군분투하였다. 누군가를 이겨야 했고, 대회에 나가서 상을 타야만 자신이 인정받을 수 있다고 여겼다.
경쟁하는 친구가 자신보다 잘하면 자존심이 상해 못마땅하였다.
“평생 공부를 인정받기 위해서 할 거야?”
그저 공부의 목적이 나의 이익에 한정되었다. 공부가 즐거울 리가 없다.
세 번째, 타인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들이 있다.
“선생님, 저는 무언가를 생각하고 영상을 찍거나 편집하는 것이 좋은데요. 제가 다른 아이들 하는 걸 도와줄 때도 좋고, 제가 찍은 영상이 수업 때 사용되니까 보람도 있고 너무 기쁜 거예요.”
아이는 이를 계기로 하기 어려운 공부를 견디기 시작하였다. 방송국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일하는 자신을 떠올리며 자주 나와 얘기하였다. 사람들이 자신이 기획하고 만든 영상을 보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영어 지문 해석 연습을 하였다. 더 많은 자료와 책을 보려면 영어를 확실히 잘해야 한다며 설명하는 연습을 꾸준히 하였다. 점수가 낮게 나와도 스스로 마음을 다잡고 공부를 지속하였다.
또 다른 경우가 있다. 이 학생 역시 타인의 마음을 살피는 의사가 되기를 소망하며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다. 그러나 공부를 하다 극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중학교 때도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해 노력하던 아이였다. 모든 것을 철저하게 계획하며 움직이던 아이는 어느 날 눈물을 터뜨렸다. 잠도 안 오고 책을 볼 때마다 불안하다고 하였다.
“왜 잠이 안 오고 불안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
“의사가 되지 못할까 봐요.”
할 것은 많고 하루에 계획된 그 양을 달성하지 못하면 잠을 포기하였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참담하고 가슴이 저려 결국 나도 아이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이 문제를 푸느라 한참 애를 먹었다. 영어와 수학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샘이 너무 마음이 아프다. 그렇게 네 마음이 괴로워서 어떻게 공부를 해. 밥은 어떻게 먹어. 의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으니 아무것도 즐기지 못하잖아. 잠이 안 오는 게 당연해.”
늘 자기가 하는 계획과 목적은 결과와 동일하여야 했고, 오로지 내신 1등급이라는 목표만 있었다. 아이에게 물었다.
“신경정신과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마음이 아픈 사람이야. 어느 날 어떤 사건과 사고로 혹은 실패를 거듭하거나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유로 잠을 못 자고 상처 입은 사람들로 가득해. 그 환자에게 너는 뭐라고 말할 거야? 너처럼 시간을 잘 계획하고 무조건 열심히 해서 1등을 하면 회복 가능하다고 말할 거야? 그렇게 말하면 좋은 의사일까? 똑똑한 의사는 너무 많아. 그런데 좋은 의사는 찾기 힘들어. 환자 마음을 알아주고 그 사람 입장에서 말하는 의사 말이야. 약은 배운 대로 처방하면 되잖아. 네가 원하는 정신과 의사는 뭔데?”
아이와 그 날부터 같이 책을 읽고, 산책하는 시간을 정하고 좋아하는 음악과 영화를 찾기도 하며 우선 평온함을 찾기 위해 노력하였다. 도움이 되는 책과 영상을 찾아주었고 어떤 일이 네게 생겨도 나는 너를 지지한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나는 우리가 공부해야 하는 공통의 이유를 찾고 싶었다. 더 이상 제각각의 이유로 마음고생을 하고 스트레스받아가며 자신을 잃어버리는 공부를 하도록 둘 수가 없었다.
그런 목적으로 공부하는 것은 우리 모두 불행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나는 아이들과 대화를 시작했다. 아이들의 장점을 찾으며 그 장점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찾아보는 것도 숙제를 내주기도 하였다.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이 무엇인지,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내가 나누어줄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적어보게 하니 자신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며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종이를 채워나갔다. 또한 모르는 것들을 알게 됐을 때 느끼는 그 감정을 알게 하고,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는 자신을 발전시키며, 타인에게 공감할 수 있는 능력, 내가 알게 된 것을 나누고자 공부를 하는 것임을 알도록 하였다.
공부를 왜 해요?라는 질문에 단순히 ‘잘 살기 위해서’‘너 잘 되라고 공부하는 거야.’ 이런 말로 아이를 좁은 프레임에 가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수없이 절망하고 낙담한다. 그 어려움을 숱하게 겪으며 나를 알아간다. 그 시간 동안 부모와 선생님은 아이를 지지하고 기다려줘야 한다. 재촉하지 말아야 하며 아이들마다 가지고 있는 속도를 믿어야 한다.
우리가 왜 사람과 교감하고 살아야 하며, 한 사람의 존재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 알고 배운다면 각자의 공부 이유가 형성될 수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힘을 잘 키우고 연마해서 이롭게 쓰일 수 있음을 알도록 해주는 것이 부모와 선생님의 역할로 여겨진다. 우리가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결국 사람에게 공감하고 조화롭게 살아가기 위함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