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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하 Apr 13. 2021

10. 일대일 마주 보기-30센티미터 밀착

아이에게서 삶을 배웁니다.

학생 a


"채점 다 했어?"

"모르는 거 질문 만들었어?"

" 아니요. 하고 있어요."

" 샘 기다리다가 눈 빠지겠다."

" 흐흐흐"


학생 b


"노트 정리했어?"

"네. 다 했어요."

"가지고 와, 샘한테 설명해줘야지."

" 샘! 샘! 잠시만요. 5분만 시간 주세요."


학생 c


" 샘! 샘한테 지금 가요?"

" 응! 어서 와~"


보통 공부방에서는 이런 대화가 오고 간다. 나는 아이들을 망부석처럼 기다리고 있다. 시간만 보고 있으면 초조해질 때도 있고, 다음 시간 수업을 생각하면 제시간에 아이들이 나가고 들어와야 일하기도 편하지만 수업은 고무줄처럼 늘어지는 일이 부지지수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기다림의 미학이라는 단어를 이 상황에 집어넣으며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고 있다.


그룹 수업을 하더라도 끝나기 전에 적어도 십 분에서 십오 분 정도는 학생 각각 나와  마주해야 한다. 찰나 수업  후 계획이나 활동 등 개인적인 대화도 오간다.

이 과정이 매 수업시간  반복되어 피로도가  높지만

화살이 과녁 중심에 들어가는 듯 공부의 밀도와  정확성은 훨씬 높았기에 빨리빨리에서 벗어나 이 시간을 선택했다.

나는 그룹수업을 왜 개인 수업처럼 하고 있을까.

설명을 똑같이 했어도 이해도는 천차만별이었고, 알고 모름의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할진대, 왜 동일하게 이해하기를 우리는 바라는지에 대해 나는 스스로 의문이 들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평소와 다름없이 문법 파트 하나를 설명하고 문제를 풀게 하고, 해석을 하게 하며 특별함 없는 수업을 하고 있던 날이다. 목이 터져라 개념과 문장 구조 설명을 하고 "숙제는 여기까지!" 하고  책을 덮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신나게 가방을 싸는데 한 학생이 쭈뼛쭈뼛하다.

"무슨 일 있어?"

아이는 오늘 배운 내용이 하나도 이해가 안 간다며 울상이다. 나는 애를 썼지만, 수업 말미에 전해지는 찜찜함을 잊을 수가 없다. 모든 아이들이 부리나케 나갔기에 의자를 끌어당겨 앉아 아이와 시선을 마주했다.


"어디를 모르겠어?" 녀석이 긴장했다.

" 샘 똑같은 말 여러 번 해도 화 안내잖아. 괜찮아. 말해봐. "


어디서부터 막힌 건지 펜을 들고 짚으면서 말한다. 막 중1이 된 아이는 표현하는 것도 어려워하여 말하는 속도가 느리기도 했고, 한 말을 다시 하기도 하면서 자신의 상황을 내게 알렸다. 그때  순간적으로 내게 문제가 있음을 자각했다. 모든 아이들에게 동일하게 물었던 내가 잘못했음을 알았다.

" 다 이해했지?"

라는 이 질문은 개개인의 상황을 신경 쓰지 않는 질문이기도 했다. 학생의 설명을 들으면서 내 기준 혹은 보편적인 수준에 맞춘 수업을 중단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설명하기를 목적으로 두고 전반적인 수업을 조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니 아이들마다 교재도 제각각으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이와 마주 앉은 거리 30센티미터, 표정을 놓치지 않고, 숨죽이고 아이 소리에 집중했다.

그리고 다시 하나하나 설명했다. 그리고 다시 내게 설명해보라고 했다. 처음보다 속도가 빠르고 끊기는 것도 나아졌다. 다른 문장으로 넘어가 그대로 한 번 더 설명해보라고 했다. 또 나아졌다.

아이는 웃으며 나갔다.


그날부터 나는 모든 아이들과 매 수업시간마다 마주하고 있다. 아이들이 거부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내 옆에 가까이 앉아 하나씩 짚으며 아이의 소리를 듣는 것은 내게 참을성을 가르쳤으며 사람을 좀 더 세밀하게 보도록 하여 서로를 더 이어주는 다리가 되었다.

수업 끝나기 전에 모든 아이들이 내 앞에 앉는다. 지문 설명부터 문법 설명, 그날 문제 푼 것 등 각자 설명하는 것은 상황에 따라 다르다. 어떤 아이는 설명은 다음 시간에 하고, 질문만 하는 경우도 있다.

무엇이든 괜찮다. 한 챕터에서 이루어지는 질문과 설명은 자유롭다. 다만 그것이 끝나면 같이 수업을 하는 아이들 앞에서 설명을 다시 해야 한다. 그전에 나와 마주하는 단계가 있으니 빈틈이 메워진다.


하지만 무작정 설명하기를 시킬 순 없다. 교재가 있지만 A4 사이즈 노트에 공부한 내용이 모두 필기되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나와 마주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이다. 이를  위해 노트 필기법도 가르쳤고 수정하며 자신의 노트가 쌓여갔다. 학생은 자신이 필기한 것을  펼쳐둔 채 내게 질문하고 설명한다. 거리는 30센티미터.


나는  다시 질문한다.

" 여기 주제가 뭐예요?"

" 이 문장 해석 다시 해주세요!"

" 이 지문에서 뒷받침 문장은 어디인가요?"

" 이 문제 답이 왜 이거예요? 다른 문장은 왜 답이 아니에요?"

이 과정이 끝나면 노트를 덮고 나갈 수 있다.


" 오예" " 아싸~~! "  대부분의 아이들이 이런 감탄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오늘 수업은 좀 요란했다. 어려워하는 관계대명사 파트를 나가면서 발을 동동 구른다.

다음 시간에 이 부분 전부 설명하는 것 모두 돌아가며 할 거니까 열 번 스무 번 연습해서 나타나기!


한탄하기도 하지만, 모든 것을 설명했을 때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니 그 과정을 즐긴다.  나 역시 그렇다. 조급함을 뒤로하고 기다린 보람이랄까.

처음에는 엉성하고 완벽하지 않지만  아이들 앞에서 설명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 대견하다.  설명이 끝나고 파닥거리며 자리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 웃음이 터진다.

나는 아이들과 마주하는 30센티미터 거리가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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