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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침범 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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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댄스댄스댄스 Sep 20. 2023

침범 (2)

단편소설

개인적인 기억을 더듬어 아주 많이 각색한 단편 소설입니다. 이 글에 등장하는 모든 이름, 인물, 사건들은 허구입니다. 실존하는 인물, 장소 등과는 일절 관련이 없습니다.



2.

우리는 고등학교 3학년 그 1년 간 같은 공간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같이 공부를 한다거나 놀거나 한 기억은 없다. 아예 제대로 된 대화를 한 적도 없었다. 호기심 반 장난 반으로 내가 말을 건 적은 몇 번 있지만 언제나 되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아. 떠올랐다. 딱 한 번 준모가 내게 문장을 던진 적이 있었다. 대화(communication)란 기본적으로 상대방의 질문에 통사적, 의미적, 화용적으로 적절한 답변을 한다거나 어떤 주제에 관해 일관성 있게 턴을 주고받는다거나 아니면 귀신씻나락 까먹는 소리라도 서로에게 던지며 낄낄거리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준모가 내게 던진 말은 대화라는 범주에 속하지 못했다. 그러나 평범한 그 문장은 내 뇌에 기억을 담당하는 뉴런 어딘가에 고이 숨어 있다 준모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때 그 신호에 반응하여 자신을 드러냈다.


나를 침범하지 못하게 해 줘.


지금도 정확히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부탁이었는지, 경고였는지, 혹은 하소연이었는지. 사생활을 침범한다던가, 사회적 거리를 침범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침범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하지 말라’가 아니라 ‘못하게 해 줘’라는 종결은 또 뭔지. 하지만 각각의 단어가 조사로 묶여 합쳐졌을 때 문장이 뿜어내는 그 감정‘들’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그 말을 던지고 한참이 지난 후, 그가 스스로 벌인 일로 학교를 떠나기 전까지 나는 다시는 준모에게 말을 걸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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