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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침범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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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댄스댄스댄스 Sep 22. 2023

침범 (4)

단편소설

개인적인 기억을 더듬어 아주 많이 각색한 단편 소설입니다. 이 글에 등장하는 모든 이름, 인물, 사건들은 허구입니다. 실존하는 인물, 장소 등과는 일절 관련이 없습니다.


4.

쉬는 시간이나 점심, 저녁 시간에 준모가 학교의 이곳저곳을 배회한다는 사실은 우리 반 대부분이 알고 있었다. 나는 엎드린 채로 생각했다. 점심도 안 먹고 돌아다니나? 교실 뒷문이 ‘드르륵‘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드르륵‘ ‘탁’ 닫혔다. 불현듯 나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잠은 달아났다. 도대체 어딜 그렇게 싸돌아 다니는지 궁금해졌다. 갑자기 그런 게 왜 궁금해진 걸까?


교실 뒤쪽의 미닫이문을 조심스럽게 열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왼쪽이냐, 오른쪽이냐? 오른쪽 이과 교실 쪽 모퉁이를 돌고 있는 준모의 뒷모습을 발견했다. 나는 마치 스모킹 건을 찾기 위해 용의자를 쫓는 형사처럼 벽에 붙어 걸어갔다. 문과인 1, 2반 교실과 3학년 교무실을 지나면 기역자로 꺾인 모퉁이가 나타난다. 거기서부터 길게 3반부터 8반까지 이과 교실이 있다. 중앙 계단과 8반 옆 동편 끝 계단 중 어디로 내려갈까? 나는 모퉁이를 돌아 주욱 이어진 복도 끝을 보았다. 준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뛰었다. 신고 있던 슬리퍼 소리를 없애기 위해 얼음 위인 것처럼 발로 바닥을 밀며 발소리를 줄였다. 스윽 스윽. 4반과 5반 사이 중앙계단으로 들어서서 난간에 고개를 숙여 아래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다보았다. 준모의 정수리가 순간 사라졌다. 나는 조심스럽게 난간을 붙잡고 계단을 내려갔다. 난간 사이 아래로 간혹 그의 검은 머리가 보였다. 1층까지 내려가는구나. 나는 되도록 슬리퍼 소리를 내지 않으려 조심스럽게, 그러나 신속히 계단을 내려갔다. 그래도 텅 빈 학교 계단은 울림이 컸다. 스윽, 철퍽, 스윽, 철퍽. 에휴. 이러다 뒤돌아 보겠다, 바로 들킬 것만 같았다.


준모가 1층 중앙현관에 다다를 무렵 그와 나의 거리는 대략 서른 계단 정도가 되었다. 다행히 준모는 뒤돌아 보지 않았다. 이제 나는 속도를 줄이고 준모의 속도에 맞춰 조심스럽게 계단을 한 걸음씩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서면 중앙 현관에는 거대한 네모 기둥이 하나 크게 서 있었다. 그 기둥 네 면은 학교의 교훈이나 교가, 교표, 교화 같은 것이 장식되어 있거나, 수십 년 전 수상한 운동부 트로피라던가, 시계 같은 것이 걸려 있었다. 기둥을 중심으로 오른쪽 벽에는 교육과정이 어쩌고 체험활동이 저쩌고 하는 학교교육활동에 관한 게시물이 붙어 있었고 반대편 벽에는 길게 거울이 매달려 있었다. 현관의 앞 뒤로는 유리문이 길게 뻗어 있었고 양쪽으로는 복도가 펼쳐졌다.


준모는 뒤편으로 열린 유리문을 지나 본관 건물과 정보관 사이의 정원으로 나갔다. 잠깐의 시차를 두고 나도 천천히 유리문을 통과해 뒤를 따랐다. 아. 대단한 대한민국의 남고딩들이여. 10분도 되지 않아 시커먼 아이들이 점심식사를 마시고 어느새 정원 여기저기에서 놀고 있어 부산스러웠다. 준모는 학교 중앙 소정원의 나무와 낮은 덤불, 벤치를 스르르 피해 정보관 입구로 들어갔다. 신기하게도 그는 애초에 정원에 있는 다른 학생들을 지나치지 않는 루트를 골라 걸었다. 덕분에 뒤따르던 나도 다른 학생들과 마주치지 않았다. 3층짜리 정보관에는 과학실이나 컴퓨터실, 도서관, 전교 100등까지의 학생들이 야간타율학습을 하는 독서실, 과학 교무실 등이 있었다. 보통 점심시간에는 한적한 곳이고 출입구도 하나밖에 없어서 미행(?)을 들킬 위험이 높았다. 나는 잠깐 망설였지만 에라 모르겠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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