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개인적인 기억을 더듬어 아주 많이 각색한 단편 소설입니다. 이 글에 등장하는 모든 이름, 인물, 사건들은 허구입니다. 실존하는 인물, 장소 등과는 일절 관련이 없습니다.
5.
건물 안은 고요했다. 정보관 1층에 들어서서 입구를 걸어가면 바로 뒤돌아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있었고 그 계단을 지나쳐 왼쪽으로는 복도가 있었다. 준모는 계단을 오르거나 그 복도로 가거나, 둘 중 한쪽으로 갔음이 틀림없다. 음. 과학부 교무실과 실험 준비실이 있는 복도는 텅 비어 있었다. 그럼 계단이군. 유심히 귀를 기울이니 사부작사부작 헐렁한 교복바지가 스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나도 숨을 죽여 계단을 올랐다. 계단이 끝나는 3층까지 올랐지만 준모의 뒷모습을 보진 못했다.
계단이 끝나는 곳에서 벽에 붙어 왼쪽으로 꺾인 복도로 얼굴을 빼꼼, 내밀자마자 다시 머리를 원위치시켰다. 못 봤겠지? 준모는 3층 복도 끝에서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복도 끝은 막다른 길이니 되돌아온 것이 분명했다. 아아. 마주치겠는걸? 나는 후다닥 계단을 따라 2층으로 내려가 복도로 미끄러졌다. 스으윽. 2층 화장실의 무거운 유리문을 밀고 들어갔다. 끼이익. 1층으로 내려가기를 바라며 숨죽여 문에 기대었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긴장되는지. 갑자기 화장실로 들어오면 어쩌지? 심장이 쿵쾅거렸다.
한 2-3분 지났을까? 화장실 밖은 고요했다. 무거운 먼지 같은 게 둥둥 떠다니는 고요함. 그럼 분명 준모는 2층을 들르지 않고 내려간 걸 거야. 나는 화장실 문을 천천히 열고 복도로 나왔다. 2층 복도는 비어 있었다. 계단 위아래를 훑어보았지만 준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계단을 내려가 1층 복도를 확인했다. 역시 비어 있었다. 나는 정보관을 빠져나왔다.
그 짧은 시간에 정원은 아이들로 가득 찼다. 삼삼오오 모여서 게임 이야기며 만화 이야기 같은 쓸모없는 대화로 시끌시끌했다. 중앙 현관의 열린 유리문을 통해 대운동장에서 축구며 농구를 하는 아이들의 외침과 탄성, 탄식이 모래먼지와 함께 넘어왔다. 어디로 갔을까? 정원을 주욱 둘러보다 나는 다시 준모를 찾았다. 본관 왼쪽 끝 높은 담벼락을 따라 강당 쪽으로 걷고 있는 특유의 뒷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복잡한 아이들 사이를 피해 가며 나는 정원을 빠져나왔다.
강당이자 체육관인 건물 입구에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줄넘기를 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준모는 그들을 피해 강당과 담벼락 사이의 골목으로 들어갔다. 약 30미터 정도 거리를 유지하며 나도 그 뒤를 따랐다.
"어이, 경뒈. 뭐 하냐?"
줄넘기하던 아이들 중 한 명이 나를 불렀다. 정확히는 내 별명을 불렀다. 같은 반에 있는 짠쉐란 별명을 지닌 P였다. 우리 반 회장으로, 살집이 있어 둔할 것 같지만 놀라울 정도로 날렵한 친구였다. 공부도 잘하고 프로레슬링도 잘했다. 줄넘기를 꽤나 했는지 벌써 땀에 절어 안경은 뿌옇고 교복 셔츠 목부분은 땀으로 축축했다.
"아, 산책."
나는 짧게 답했다. 산책이라니. 참으로 당황스러운 답변이 아닐 수 없다.
"개소리를. 아참, 야! 좀 있다 나한테 빌렸던 토익 책 갔고 와라."
아. 나는 순간 혹시나 들킬까 몸을 낮추고 왼손을 펴 P에게 자제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동시에 오른쪽 검지손가락을 펴 입에 세로로 가져다 대고 ‘쉬이’ 거렸다.
"뭔 지랄이야?"
P는 어이없다는 듯이 욕을 날렸다. 나는 그 말을 무시하고 재빠르게 골목 끝으로 갔다. 골목 안쪽으로 고개를 내밀자 준모의 뒷모습이 저기 걸어가고 있었다.
"좀 있다 갔다 줄게."
난 P를 쳐다보지도 않고 빠르고 신속히 그 말을 내뱉었다. 내 눈은 준모의 뒷모습을 향해 있었다. 투덜대는 P를 뒤로하고 나도 그 골목으로 따라 들어갔다. 엉성하게 맞춰진 보도블록 사이사이로 듬성듬성 잡초들이 자라고 있었다. 강당 쪽 구석과 반대편 높은 벽 아래에도 긴 잡초들이 주루루 솟아올라 있었다. 예전에는 양아치들이 여기서 담배도 피우고 했다는 이야기를 선생님들께 많이 들었다. 씨씨티비를 달고 나서부터는 다른 장소를 찾은 것인지 이곳에 양아치들이 출몰하는 일은 없었다. 준모의 상체가 이내 강당이 끝나고 다시 운동장으로 연결되는 계단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볼 것도 없이 나는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