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개인적인 기억을 더듬어 아주 많이 각색한 단편 소설입니다. 이 글에 등장하는 모든 이름, 인물, 사건들은 허구입니다. 실존하는 인물, 장소 등과는 일절 관련이 없습니다.
7.
시간은 흘러 여름방학이 끝나고 입시의 계절이 돌아오고 있었다. 교실 창문의 얇은 커튼은 선선해진 바람에 하늘거렸다. 바람과 함께 찌르르르 정체 모를 벌레 소리가 간혹 들려왔다. 가을밤은 깊어갔지만 우리는 여전히 의자 위에 앉아 있었다. 야간타율학습시간. 교실은 억지로 침묵을 삼키는 아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책상 옆에 바닥에서 허리 높이까지 문제집을 쌓아 놓은 놈도 있고, 츄리닝 바지 한쪽을 무릎 위까지 걷어 올린 놈도 있었다. 시디플레이어에 이어폰을 꽂고 록음악을 들으며 책을 보는 녀석. 졸린다고 복도로 나가 사물함 위에 책을 놓고 서서 공부하는 녀석. 엎드려 자는 녀석. 그리고 가만히 앞을 응시하며 앉아 있는 준모도 있었다.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나고 그를 미행했던 작은 사건 이후에 나는 준모에게 어떤 대화도 시도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조용히 움직였고 어느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았다. 나는 쉬는 시간엔 친구들과 프로레슬링을 하며 땀을 흘렸고, 수업 시간에는 그래도 꽤나 성실히 수업에 임했다. 담임선생님과 대학 입시에 대해 몇 번 상담을 하면서 앞으로 뭘 해야 할지에 대해서 어쭙잖게 고민하기도 하였다.
2학기에 짝이 된 N이 고장 난 시디플레이어를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드라이버로 플레이어 안쪽을 열고 여기저기를 눌러보고 분해하고 조립하고 있었다. 다행히 감독 선생님은 자리를 비웠다. 분명 숙직실에서 한숨 자고 있을 것이다.
"이거 이렇게 하면 된다고 했는데?"
N은 약간 짜증이 난 듯 시디플레이어와 드라이버를 책상 위에 '탁' 내려놓았다. 잘 해결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나는 책은 보는 둥 마는 둥 하다가 N에게 슬쩍 말을 걸었다.
"야. 너 퀸(Queen) 아냐?"
당시에 팝송이나 락음악을 듣는 것은 꽤나 잘난 체할 만한 취미였다. 나는 베스트 앨범 하나 밖에 들어보지 않아 퀸이 어떤 음악을 하는지도 잘 몰랐지만, 그 음악을 듣는다고 으쓱해하며 여러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다녔다.
"오, 너도 퀸 좋아하냐? 난 베스트 앨범 세 개 다 샀지."
번데기 앞에서 괜히 주름잡았네.
"나 지금 앨범 시디 있는데 같이 들을래?"
"음. 보다시피 내 시디피가 안 돼서. 좀 더 고쳐보고 되면 듣자."
그때, 교실 앞문이 드르륵 열리며 감독선생님이 들어왔다. 여러 학생들이 공부하느라 숙이고 있던 고개를 일제히 들었다. 선생님은 30센티미터쯤 되는 사물놀이 북 채를 왼쪽 겨드랑이에 끼고 있었다. 우리는 입을 다물고 자세를 바로 잡았다. 어떤 학생들은 자고 있는 짝의 어깨를 흔들었다. 선생님은 3, 4 분단 사이 통로를 스르르 지나며 엎드린 아이들의 머리를 채로 톡, 톡 두드렸다. 소리는 작지만 꽤나 아픈 매였다. 자다 깬 아이들은 머리를 비비며 다시 허리를 폈다.
"졸지 마라이. 이제 3달 안 남았다이."
특유의 말투로 경고한 선생님은 교실 뒷문으로 나갔다. 아이들은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누구는 고개를 들어 기지개를 켜고, 누구는 다른 친구와 이야기를 속닥이고, 또 다른 누구는 일어나서 화장실에 갔다. 꽈악 조여있다 어수선하게 풀리는 분위기 속에서 나는 준모가 조용히 일어나는 모습을 보았다. 일부러 그에게 시선을 돌린 것은 아니었다. 허리 스트레칭을 하기 위해 좌우로 몸을 틀었을 뿐이었다. 내가 보고 있던 공간 속에서 준모의 움직임이 나타났다. 내 시선의 초점이 그에게로 옮겨갔다. 교실 뒤 게시판 쪽으로 조용히 걸어가자 나도 고개와 몸을 뒤로 돌려 그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