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개인적인 기억을 더듬어 아주 많이 각색한 단편 소설입니다. 이 글에 등장하는 모든 이름, 인물, 사건들은 허구입니다. 실존하는 인물, 장소 등과는 일절 관련이 없습니다.
9.
그날 기절해 구급차에 실려간 Y는 다행히 그렇게 큰 부상을 당하지는 않았다. 가벼운 뇌진탕과 짧은 기억상실, 큰 혹이 생긴 정도였고,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작 이틀 쉰 후에 머리에 붕대를 감고 다시 등교했다. 준모는 그날 선생님을 따라 교무실로 갔다가 야간타율학습이 끝나기 전 다시 조용히, 그러나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교실로 들어왔다. 자신의 가방과 짐을 챙겨 교실을 나간 그는 그 뒤로 다시는 볼 수 없었다.
나는. 나는 그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듯하였다. 반의 어느 누구도 준모가 어떤 식으로 Y를 공격했는지 보지 못했다. 어떻게 그걸 알 수 없었을까? 나는 N에게 내가 본 일을 말했고, 그 이야기는 삽시간에 반에 퍼졌다. 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죄책감을 느꼈다. 준모에게도. Y에게도. 반 아이들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왜 그런 일을 벌였을까? Y는 덩치가 있고 좀 껄렁껄렁하고 장난을 잘 치기는 했지만 누군가를 괴롭히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녀석은 아니었다. 오히려 수업시간에 촐랑거리며 엉뚱한 대답으로 다른 학생들의 놀림을 받거나 빈축을 사며 헤실거리는 그런 아이였다. 담임선생님의 상담과 많은 아이들의 질문에 Y 역시 제대로 된 답을 하지 못했다. 다만, 그는 일전에 준모의 노트를 훔쳐봤던 적은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고작 노트를 봤다고 사람 머리를 아령으로 찍는다? 그런 일이 이 사건의 원인이라고는 선생님들도, 학생들도 믿지 않았다.
교실에 있던 아령은 치워졌고, 우리는 준모의 빈자리를 그대로 둔 채 수능시험을 준비했다. Y는 정밀검사에서 머리에 큰 이상이 없다는 결과를 받았다. 복도와 운동장을 배회하는 준모의 모습도 어느새 흐릿한 기억이 되었다. 가끔 친구들과 그의 이야기를 잠깐씩 나누긴 했지만 모두가 의문 투성이일 뿐, 어느 누구도 해답을 내놓지는 못했다. 1994년부터 매년 그랬듯이 3학년 2반 44명의 아이들은 아주 추운 겨울에 수능을 치렀고, 시험 다음날 나는 준모를 쫓았던 학교 계단과 정원과 복도와 운동장을 한 바퀴 돌았다. 우리는 그렇게 성인이 되었다.
얼마나 흐른 걸까? 나는 두 팔을 머리 뒤로 괴고 누워 어두운 천장을 바라보았다. 새벽 2시? 3시? 뭐 괜찮다. 다행히 내일은, 아니 오늘은 토요일이었다. 아마 오전에 꾸벅꾸벅 졸면서 아이를 돌볼 테지만 출근을 안 해도 된다는 게 어디랴. 하이볼의 술기운 때문인지, 오랜만에 만난 N과 즐거운 대화를 나눠서인지, 준모에 대한 기억을 더듬느라 방황해서인지, 잠이 오지 않았다.
그때 어둠 속에서 우웅 하는 진동과 함께 스마트폰의 불빛이 번쩍였다. 이 시간에 예의 없이 누가 문자를 보낸 걸까? 나는 살짝 짜증이 나 얼굴을 찌푸리며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잠금 비밀번호를 풀고 문자를 확인했다. 고3 담임 선생님의 온라인 부고장이었다.
[Web발신] [訃告]
故 김OO님께서 별세하셨기에 아래와 같이 부고를 전해 드립니다.
故 김OO님 (73세/남) 00월 00일 별세
황망한 마음에 일일이 연락드리지 못함을 널리 혜량해 주시길 바랍니다.
상주 김OO, 김OO, 한OO, 박OO, 김OO, 김OO
빈소 OO대학교 OO병원장례식장 000호
발인 2023년 00월 00일 (월요일) 07시 00분
장지 OO묘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