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개인적인 기억을 더듬어 아주 많이 각색한 단편 소설입니다. 이 글에 등장하는 모든 이름, 인물, 사건들은 허구입니다. 실존하는 인물, 장소 등과는 일절 관련이 없습니다.
8.
교실 뒤편은 벽 전체에 큰 게시판이 붙어 있었는데, 거기엔 전지로 된 수능 점수별 지원 대학 커트라인표라던가, 특정 대학 홍보물 같은 것들이 이것저것 게시되어 있었다. 복도 쪽 귀퉁이엔 청소도구함과 쓰레기통이 있었고 중간 즈음에는 몇몇 학생들의 책과 누군가 운동을 하겠다며 가져다 놓은 아령이 몇 개, 그 외 잡동사니들이 있었다. 준모는 무릎을 굽히고 앉아 나란히 있는 아령 중 하나를 잡았다. 꽤 무게가 나가는지 양손으로 들고 천천히 일어났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준모는 아령을 가지고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 얘가 운동이라도 할 건가? 가끔 쉬는 시간에 교실 뒤에서 운동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준모와 아령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그는 창가 쪽 제일 뒷자리에 앉아 있던 Y의 뒤에 섰다. 두피가 거의 다 보일 정도로 짧은 스포츠머리를 한 Y는 책상에 엎드려 졸고 있었다. 준모는 아령을 든 두 팔을 천천히 위로 올렸다. 그 모습이 마치 0.5 배속으로 느리게 재생하는 영상 속 같았다. 나를 제외한 어느 누구도, 심지어 Y도 무슨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아니. 그 광경을 보고 있는 나도 그가 무얼 하고 있는지 인식하지 못했다. 나는 그저 저거 보라며 N의 어깨를 툭툭 쳤을 뿐이다.
준모가 아령을 휘두르는 모습 역시 나에게는 편안하고 고요한 슬로모션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 후 일어난 일은 너무나도 혼란스럽고 다급하고 충격적이었다. 약 10킬로그램의 아령은 Y의 뒤통수를 퍽 가격했고, 그 충격으로 그는 책상 옆으로 우당탕 넘어져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령으로 머리를 가격한 소리보다는 Y가 넘어지는 소리가 훨씬 컸다. 교실에 있던 모두가 놀라 일어났다. 몇 명은 우르르 쓰러진 Y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Y는 일어나지 못했다. 그의 코에선 코피가 흘렀고 아령에 맞은 머리에는 검게 물든 혹이 피어올랐다. 누군가 Y의 어깨를 흔들며 깨우려 했다. 누군가는 선생님을 불러오라고 외쳤다. 누군가는 황급히 주변 책상과 의자를 치웠다. 좀 멀리 떨어져 있던 앞쪽 아이들은 아직 무슨 일인지 파악을 못해 웅성거리고 있었다. 준모가 내려친 아령은 Y의 등 쪽에 놓여 있었다.
준모는? 준모는 조용히 뒤로 걸어 벽에 붙었다. Y 주변에서 그를 챙기던 어느 누구도 준모가 벌일 일인지 인지하지 못한 듯했다. 아무도 왜 그랬냐고 준모에게 묻거나 다그치지 않았다. 아니, 90개의 눈이 있는 교실에서 그런 일을 벌였는데 아무도 몰랐다? 그가 Y를 공격한 것도, 아이들이 준모를 특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법이라도 부린 걸까?
교실 뒷문이 우당탕 열리며 감독 선생님이 들어왔다. 그는 무리 진 아이들을 헤치고 쓰러진 Y 앞에 급하게 쪼그려 앉았다. Y의 얼굴과 머리를 확인하고 어깨에 손을 올린 채 선생님은 말했다.
"무슨 일이야? 얘는 왜 쓰러져 있는 거야?"
어떤 학생이 더듬더듬 말했다.
"모… 모르겠어요. 갑자기… 쓰러졌어요.“
두 눈이 휘둥그레진 선생님은 다시 물었다.
"왜 그런 거야? 왜? 도대체 무슨 일이야? 머리에 혹은? 이 아령은 뭐야?“
선생님은 누구에게 대답을 얻을지 모르겠다는 듯이 다급하게 이쪽저쪽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시선을 멈춰 한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벽에 기대어 있던 준모가 오른손을 들고 서 있었다.
“뭐? 왜? 넌 왜 손들고 있어? 너… 네가 본거야?“
준모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거의 모든 학생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아내고 있었다. 안 되겠다. 내가 말해야겠다. 나는 Y 주변에 몰린 무리 뒤로 갔다. 그때 선생님이 다시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혹시… 혹시 네가 그런 거야?”
준모는 천천히 들고 있던 손을 내렸다. 모두의 시선 속에서 그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