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탈이 세네요? 멋집니다

"옥땽으로 땨라와"에 대응하기

by 빛송이

취업을 하기 전까지 나는 정말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다.

정신없이 몸을 움직이고, 포스를 두들기고, 무서운 짐을 들고 창고를 채웠다.

그 과정에서 남은 기억하나는 5년이 지난 지금도 나에게 든든하게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멘탈이 세네요? 멋집니다."





영화관에서 일을 할 때였을 것이다.

그날도 정말 정신없이 몸을 움직이며 러쉬를 해치우고 있었다.

(영화관은 영화 시작 시간 직전에 가장 바쁘기 때문에, 그 시간을 러쉬라고 불렀다)

까칠하기로 유명한 직원 한 명과 함께 많은 아르바이트생들이 몰려드는 손님들을 응대하던 와중에,

드디어 내가 그 직원과 충돌했다.


정말 단순한 문제였다. 밀려드는 주문 속에 그 직원은 콜라, 포도환타, 사이다, 제로콜라 등 음료수를 계속해서 뽑아내고 있었고, 나는 그걸 고객들의 주문에 맞추어 세팅하고 안내했다. 그러다가 콜라 주문에 포도환타가 나가는 사고(?)가 발생했고, 그 직원은 나를 한심한 듯이 째려봤다. 나는 바쁜 와중에 그런 태도로 소통하는 직원에게 화가 나서 그냥 무표정으로 "아... 네, 그러네요"라고 대답하고는 고객님께 음료를 다시 드리며 사과한 뒤, 다른 주문을 빠르게 처리했다.


러쉬가 끝나고 나는 그 직원에게 주방 뒤편으로 불려 갔다.

"OO 씨, 주방 백으로 오세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생각했다.

그 직원은 새로 들어오는 여자 아르바이트생들을 돌아가며 한 번씩 울리기로 유명했기 때문에, 이미 몇 번의 사례를 본 후였다. 그래서 오히려 웃겼던 것 같다.

마치 "옥땽으로 땨라와" 같은 느낌이랄까.


그 직원이 한 말은 대충 왜 그런 식으로 대답하냐는 말이었다.

나는 전혀 생산성이 없는 대화라고 생각했고, 그 직원의 표정은 그저 화풀이를 하고 싶어 하는 모습이었다.

가만히 하고 싶어 하는 말을 다 할 수 있도록 기다리다가 타이밍을 보고 죄송합니다를 외쳤다.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얼른 해줘야 끝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눈물이 차오르는 것 같았고 꾹 참느라 이를 꽉 깨물었다.

날이 선 여러 말들을 들으며 심장이 벌렁거렸고, 목에서 심장박동이 느껴졌다.

상호 존중이 없는 사이에서 죄송합니다를 외쳐야 하는 상황이 화가 났지만, 오히려 그 직원을 측은하게 여기기로 굳게 다짐하며 버텼다.


그 직원은 뭔가 찝찝하다는 듯이 사무실로 올라가 버렸고

나는 다시 주방 앞으로 나왔다.

러쉬가 끝난 뒤라 다른 동료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억지로 더 밝은 척을 했다.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그릇을 가진 사람과 충돌한 상황이 억울하고 짜증 났기 때문에, 기가 죽거나 약한 모습을 보이면 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그런 나에게 고인 물 아르바이트생이 이렇게 말했다.

(보통 1년을 넘게 다닌 아르바이트생들을 고인 물이라고 불렀다. 나쁜 표현으로 쓰이지는 않았고 그냥 오래 다녔다는 느낌? 워낙 금방 그만두는 아르바이트생들이 많았기에 그렇게 불렀다.)


"멘탈이 세네요? 멋집니다."


다들 '그 직원'에게 불려 간 나를 걱정했는데, 막상 괜찮은 모습을 보니 조금은 반전이었나 보다.

사실 나는 괜찮지 않았지만 꾹 참은 나의 노력이 뿌듯했다.


그 뒤로도 그 말은 나에게 메아리처럼 남아서, 나를 더 멋지게 만들어주었다.

스스로가 작아지는 순간들을 마주할 때마다 생각이 났다.

나는 나름 단단한 사람이야. 멋진 사람이야!


'그 직원' 같은 사람들이 앞으로 나의 앞에 다시 나타난다 하더라도, 웃어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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