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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풋볼 보헤미안 Sep 20. 2021

에우제비우 콤플렉스

리스본 라이벌 벤피카 vs 스포르팅 CP

포르투갈에서 가장 뜨거운 리스본 더비에 오다 @풋볼 보헤미안

포르투갈 프리메이라 리가의 대표 빅 매치는 이른바 ‘데르비 데 리스보아’, SL 벤피카와 스포르팅 리스본 CP의 맞대결을 일컫는 리스본 더비다. 이들 못잖게 리그에서 막강한 전력을 뽐냈던 FC 포르투를 제쳐두고 어떻게 최대의 라이벌전이냐고 되물을 수도 있으나, 포르투갈에서 이 두 팀의 경기는 ‘데르비 두 데르비스’, 즉 더비 중 더비라 불릴 정도이니 최고 빅 매치라 불러도 손색없다. 


이 두 팀의 라이벌전을 현지에서 직접 살필 수 있는 정말 귀한 기회를 얻었다. 스포르팅 CP의 안방인 이스타디우 조세 알바라데에서 벌어졌던 2018-2019 포르투갈 프리메이라 리가 20라운드에서 벌어진 맞대결이다. 이 경기에서 원정팀 벤피카가 적지에서 4-2로 대승하며 홈팀 스포르팅 CP의 속을 단단히 긁어놓았다. 득점까지 올렸던 당시 벤피카의 초신성 주앙 펠릭스를 비롯해 벤피카 선수들의 기량이 왜 포르투갈 최강이라 평가받는지를 알 수 있었던 경기였다.      

스포르팅 曰 우린 두 명이나 세계 최고 선수를 배출했다?  @풋볼 보헤미안

그런 벤피카 선수들을 바라보며 이스타디우 조세 알바라데의 한구석에 적힌 문구가 왠지 초라하게 느껴졌다. ‘2 FIFA WORLD PLAYERS - FIGO & RONALDO’. 그러니까 2000년대 최고 슈퍼스타였던 루이스 피구, 그리고 지금 리오넬 메시와 더불어 세계 최고 선수 자리를 다투었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바로 이 스포르팅 CP 출신이라는 점을 자랑스러워한 것인데, 뭔가 옛 영광만 추억한다는 느낌이 들었던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게다가 이방인이 보기에는 이 두 선수를 난데없이 내세운 이유가 왠지 벤피카를 향한 열등감의 표현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먼저 순수하게 개인적 감상임을 밝힌다. 포르투갈은 지금껏 발롱도르를 단 세 명 배출했다. 앞서 언급한 피구와 호날두, 그리고 벤피카 레전드 에우제비우다. FIFA 올해의 선수상으로 기준을 옮기면 포르투갈 선수는 피구와 호날두뿐이다. 하지만 에우제비우가 활약했을 시기에는 FIFA 올해의 선수라는 상이 존재하지 않았다. 어찌 됐든 스포르팅 CP는 포르투갈 클럽 중 발롱도르 최다 배출 클럽이자, 유일한 FIFA 올해의 선수 배출 팀이다. 자랑스러워할 만한 업적이며, 걸어서 10분 거리에 안방을 둔 같은 동네 앙숙 벤피카와 비교해 유일하게 앞서는 성과다.     


그러나 피구와 호날두가 스포르팅 CP가 아닌 다른 클럽에서 최고의 별이 된 건 ‘안 비밀’이다. 반면 에우제비우는 일평생 벤피카에서 뛰며 수많은 우승컵과 발롱도르까지 품었다. 이런 케이스는 포르투갈 내에서는 에우제비우가 유일하니, 스포르팅 CP의 이런 태도는 벤피카 팬들이 보면 코웃음을 칠 일이 아닐까 싶다.   

에우제비우를 상징하는 사진. 어마어마한 허벅지를 보라 @풋볼 보헤미안

말 나온 김에 벤피카 올 타임 넘버원 레전드이자 지금도 포르투갈의 국민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는 에우제비우 얘기를 해보자. 이 에우제비우를 바라보는 스포르팅 CP 팬들은 속이 쓰리다. 50년이 훌쩍 넘은 과거의 일이지만, 이유가 있다.      


이른바 ‘에우제비우 사가’는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포르투갈 축구 팬들 사이에서 뜨거운 논쟁거리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이렇다. 스포르팅 CP가 당시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모잠비크에 두고 있던 위성 클럽 스포르팅 클럽 로렌수 마르케스(이하 SC 로렌수 마르케스)에서 뛰던 에우제비우가 정작 유럽 무대로 진출할 때는 라이벌인 벤피카의 유니폼을 입었다는 것이다. 케이스가 약간 다르긴 하지만, 공들어 키운 유스 우수 선수가 프로 데뷔를 앞두고 다른 팀, 그것도 라이벌 팀에 안긴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사실 스포르팅 CP 처지에서는 억울할 만한 일이었다. 애당초 에우제비우는 스포르팅 CP가 아니었으면 축구계에 입문조차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에우제비우는 벤피카로부터 퇴짜를 받은 선수였다. 에우제비우는 스포르팅 클럽 로렌수 마르케스의 문을 두드리기 전 본래 벤피카의 위성 클럽인 그루푸 데스포르티보 로렌수 마르케스(이하 GD 로렌수 마르케스)입단을 시도했다고 한다. 동경하던 클럽인 벤피카로 향할 수 있는 루트였기 때문인데, GD 로렌수 마르케스는 재능을 몰라봤는지 매우 매몰차게 굴었다. 에우제비우에게 두 번이나 불합격 통보한 것이다.     


좌절을 곱씹고 있던 에우제비우에게 기회를 준 은인 같은 팀이 바로 SC 로렌수 마르케스, 그리고 모체라 할 수 있는 스포르팅 CP였다. 이에 에우제비우는 1960년 모잠비크 리그 우승을 안기는 것으로 보답했다. 그랬던 에우제비우가 정작 유럽에 진출할 때 왜 스포르팅 CP가 아닌 벤피카를 선택했을까?     


단순히 개인적 변심이었다고 볼 수 없다. 스포르팅 CP는 안이했다. 위성 클럽에서 뛴 선수가 모 클럽으로 오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작고한 에우제비우의 회고에 따르면, 스포르팅 CP는 에우제비우와 일단 ‘유스 선수’로 계약하길 원했다. 그러니까 포르투갈 무대에서 적응하는지 여부를 보고 정식 계약을 하겠다는 자세였다. 아무래도 수준 차라는 게 있으니, 스포르팅 CP 처지에서는 꼼꼼하게 살피겠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이렇게 바라보면 꽤 현명한 태도였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큰 별’이 될 선수를 영입하려면 도박을 걸어야 하는 법이다. 바르셀로나는 리오넬 메시를 영입할 때 서류가 없어 부랴부랴 냅킨 계약서를 썼다. 벤피카도 도박을 걸었다. 벤피카에 두 번의 유러피언컵 우승을 안긴 헝가리 출신 명장 벨라 구트만 감독이 에우제비우의 기량을 몹시 탐냈기 때문이다. 


구트만 감독은 에우제비우에게 아예 1군 팀 인사이드 레프트 포워드를 맡길 생각을 가졌을 정도로 영입에 공을 들였다. 하이재킹하기 위해 에우제비우에 ‘루스 말로수’라는 코드명까지 붙였다. 스포르팅 CP의 눈을 속이기 위해 가상의 선수까지 만들어 블러핑한 것이다. 차근차근 유스 계약부터 하자는 스포르팅 CP, 1군 주전 제안은 물론 007 작전까지 벌일 정도로 공을 들이는 벤피카. 당신이 에우제비우라면 어느 팀을 선택할까?     

벤피카의 트로피 진열장. 우측은 1960-1961 유로피언컵, 지금의 챔피언스리그 트로피다 @풋볼 보헤미안

당연히 벤피카일 것이다. 그리고 에우제비우의 이 선택은 벤피카와 스포르팅 CP의 운명을 완전히 갈랐다. 에우제비우가 유럽 땅에 발을 밟았을 1961년만 하더라도 벤피카와 스포르팅 CP의 리그 우승 횟수는 똑같이 열 번씩이었다. 또한 당시 기준으로 양 팀 모두 유러피언 컵(現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기록은 없었다. 그러니까 그야말로 우열을 가리기 힘든 라이벌 관계였다는 뜻이다.


하지만 에우제비우가 벤피카에 온 이후 모든 게 변했다. 벤피카는 에우제비우가 입단한 후 1974년 팀을 떠날 때까지 열한 번의 리그 우승을 추가했으며, ‘빅 이어’도 가슴에 품었다. 벤피카는 이때의 ‘승자 본능’을 자양분 삼아 현재 통산 리그 우승 36회를 기록하고 있다. 반면 스포르팅 CP는 에우제비우가 포르투갈 무대를 떠난 1974년까지 단 네 번의 우승을 추가하는 데 그쳤다. 2021년 기준 포르투갈 리그 우승 횟수는 총 19회, 벤피카에 거의 더블 스코어로 밀리고 있다. 게다가 유럽 대회 우승은 전무하다.


에우제비우를 벤피카에 빼앗긴 스포르팅 CP는 많은 걸 잃었다. 비단 우승컵뿐만 아니다. 벤피카는 에우제비우를 품고 난 후 포르투갈 대표 명문이라는 이미지까지 가져갔다. 만일이라는 상상은 부질없는 것이긴 해도, 어쩌면 벤피카가 누린 황금기가 자신들의 것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 배가 아플 수밖에 없다. 그래서 피구와 호날두를 내세워 벤피카보다 나은 면모가 있다는 걸 강조하려는 게 아니었을까? 그래도 꽤 쓸쓸해 보이는 자랑거리다. 


사족이지만, 피구와 호날두가 스포르팅 CP에 선물한 건 각각 타사 데 포르투갈(FA컵), 수페르타사 칸디두 데 올리베이라(슈퍼컵) 하나뿐이다. 고집스레 자꾸 언급하지만, 피구와 호날두가 세계 최고가 된 건 스포르팅 CP를 떠난 후의 이야기다.

만약 스포르팅 CP가 에우제비우를 영입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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