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역사적 폭력과 문학의 정치성
문학은 단지 현실을 반영할 뿐 아니라 현실에 대한 우리의 감각을 창조하는 데 이바지한다. 그와 동시에 문학은 또한 다른 인식의 틀에 의존하고 그것을 반영하고 수정하며 반발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텍스트는 고립된 섬이 아니다. 문학이 현실 그대로를 모사하는 것은 아니지만 문학의 매개가 언어라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문학은 그 내적 자율성 못지않게 문학 바깥의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
랑시에르는 문학이란 애초부터 정치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문학은 작가의 사회 참여라는 측면에서 정치적인 것도 아니고 사회구조나 정치적 운동들을 표상한다는 측면에서 정치적인 것도 아니다. 문학은 오히려 “시간과 공간들, 말과 소음,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 등의 구획 안에 문학으로서 개입”한다는 의미에서 정치적인 것이다.
이 글은 고통의 역사에서 동요하면서 ‘인간의 조건’이 무엇인지 탐색해 온 작가들- 황석영 장편『오래된 정원』, 임철우 장편『백년여관』, 한강 장편『작별하지 않는다』, 박솔뫼 장편『미래 산책 연습』을 읽는다. 저들 작가들은 5·18 ‘이후’ 문학의 책임 윤리를 숙고하는데 매우 중요한 텍스트를 제공한다. 그것은 타인의 고통을 기억하고 증언하고 연대하는 인간의 모습을 제시하는 것으로 수렴된다.
이 글은 5·18이 과거의 역사(유물)가 아니라 현재에도 유효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이 분명하다면(김상봉의 언어로 말하자면 ‘타인의 고통에 대한 상상력’) 나아가 5·18을 경험하지 않은 미래 세대에게 넘겨줄 미래사회를 상상하고 구축하기 위한 힘과 지혜를 모으기 위한 매우 핵심적인 사건이라면 5·18 이후의 문학은 어떤 윤리적 태도를 취해야 마땅할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을 견지한다.
이 글은 1980년대라는 시간과 광주라는 공간을 넘어 또 다른 역사적 고통 속으로 외연을 확장한 소설 읽기를 통해 역사적 폭력을 서사화한 문학이란 모름지기 ‘타자로 향하는 길’이어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하고자 하는 목표를 갖는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과거의 5·18을 현재의 5·18로 다시 불러올 수 있는 문학적 윤리-태도를 재정립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5·18의 의미를 다시 되살리고 현재화하는 것은 미래사회를 상상하고 구축하기 위한 하나의 모색이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분석하고 있는, 국가폭력을 경험한 소설의 인물(들)은 80년대와 광주를 넘어 제주 4·3과 베트남 전쟁, 그리고 난징학살, 히로시마 원폭, 문화대혁명, 일본군 위안부 등 희생자들에게 공감과 연대의 정서를 갖는다. 문제는 죽음을 목도한 생존자들의 무의식의 심층에 남아 있는 외상(trauma)의 완결에는 종착지가 없다는 것, 완성된 회복이란 없다는 데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복이 가능한 방향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죽은 이들에 대한 산 자들의 애도라고 볼 때, 애도에 관한 철학적 사유는 이 글의 논의에서 중요한 메타포가 된다. 실로 우리가 함께 겪은 고통스러운 상실을 애도하지 않으면, 세상은 그저 견고하고 안전한 외양 아래 머물러 있을 것이고 그 안에서 성가신 ‘주체 같은 것’이 발명되는 일은 영영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