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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영의 Oct 23. 2024

타자로 향하는 길

3.박솔뫼『미래 산책 연습』

그가 태어나기 이전의 역사인 80년대를 바라보는 박솔뫼(1985년, 광주 출생)의 시선은, 황석영 장편『오래된 정원』을 원작으로 하면서도 황석영을 비롯한 거대담론을 관통하는 리얼리즘적 전형성을 냉소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임상수 감독의 동명 영화에 나오는 ‘은결’(오현우와 한윤희 사이에서 태어난 딸)의 캐릭터와 매우 흡사하다. 영화에서 은결은 1982년생으로 현재(영화는 2007년 초 개봉되었고, 영화에서의 배경은 21세기 초)의 젊은 세대를 대표한다. 은결은 변화한 세상과 변화해야 하는 사유방식 모두를 함의한다. 그는 아버지인 현우와의 통화에서 아버지가 행복하게 살았는지 묻는다. 현우가 그때는 “자기만 행복하면 아주 나쁜 놈이 되는 시대”라고 말하자 그녀는 “바보 같은 시대”라고 말한다. 그녀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를 만나던 날 그녀가 아버지를 바라보는 눈빛은 ‘자신과 상관없는 사람을 보듯’ 무심하다. 이를 통해 그녀는 역사에도 관심 없고 혈연에도 연연하지 않고 오직 자기 세계만이 중요한 신세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소설에서 5·18의 기억을 말하는 것에 대한 ‘나’의 무덤덤한 태도를 ‘나와는 무관함’의 감정적 태도, 5·18 미체험 세대의, 나와는 무관한 일인 듯하는 태도가 아니라 ‘그들의 사건’을 ‘우리의 사건’으로, 인간의 역사로서 보편적으로 기억할 새로운 회로(분유-分有-경험 혹은 기억을 나누어 갖는 것)를 이 작가가 인식하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마땅하다.


   저와 같은 소설 내 인물의 태도는 최근작『미래 산책 연습』에서는 조금 다르게, 그러니까 이전의 소설보다는 좀 더 명료하게 과거와 미래에 대해 말한다. 일기가 될지 소설이 될지 모를 무언가를 쓰고 있는 작가 ‘나’는 온천장 근처를 산책하던 중 우연히 들어간 목욕탕에서 60대 여성 최명환을 만나 그의 소개로 충동적으로 부산에 월세 아파트를 계약한다. 젊은 시절 최명환은 부산 미국문화원 앞의 회사에서 근무하며 돈을 모으고 모으며 그 돈을 이유로 모욕당한 과거가 있다. ‘나’는 글을 쓰거나 부산을 산책하고, 가끔 최명환의 사무실에서 차를 마시고, 친구들과 드문 부산의 눈에 관한 대화를 나눈다. ‘결혼한 적도 아이를 낳은 적도 없고 당연히 재산을 물려줄 사람도 없는’ 최명환이 자주 이야기하는 주제 중 하나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왔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14쪽) 하는 것이다. 살아온 기억에 관한 것. 그런데 최명환과 자주 만나 대화를 나누는 ‘나’는 “최명환의 말처럼 기후가 변화하고 동물들이 사라지고 지구의 끝이 가까워질 때 나는 그 창 너머를 ‘떠올리며’ 내가 갖고 싶은 미래가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아름다운 과거로 여겨질 것이고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간절히 되살리고 싶고 만들어가고 싶은 미래이기도”(18쪽) 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지나쳐온 과거의 내용에는 무엇이 담겨 있고 만들어가고 싶은 미래는 또 무엇인가를 확인하는 것이『미래 산책 연습』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교도소에서 막 출소한 친척 언니 ‘윤미’가 부산에 있는 미문화원 방화사건과 연관되어 있다는 진술이 그들이 이야기 나누는 ‘과거’를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미문화원 방화사건에 관한 사전적 기록에는, 1982년 3월 18일 부산의 고신대 학생들인 문부식, 김은숙, 김화석, 박정미 등은 미국이 신군부의 쿠데타를 방조하고 광주학살을 용인한 것을 비판하면서 부산 미문화원에 잠입하여 방화하고 “미국은 더 이상 남조선을 속국으로 만들지 말고 이 땅에서 물러가라”는 내용을 담은 유인물을 살포한 일로 서술되어 있다. 이어서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은 미국이 전두환 대통령과 신군부세력의 군사독재를 용인하고 지원하는 데 대한 항거였으며, 사건 관련자들을 체포, 구속하는 과정에서 천주교인들까지 탄압함으로써 종교계의 민주화운동을 촉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방화라는 ‘폭력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그 와중에 무고한 대학생이 사망(부산 미문화원 안에서 책을 보던 동아대생 장덕술이 사망)하면서 이 사건은 큰 사회적 충격을 안겨주었다.”고 서술되어 있다.


   소설의 서술자는 그러나 “어디서 누가 무엇을 보고 있었을지 아무도 보지 못한 것이 나중에 무엇을 남기는지 우리는 결코 확신할 수 없을 것”(51쪽)이라고 말한다. 이는 “다른 방식으로 말할 자유, 혹은 다른 인물의 입으로 말할 자유는 정치적인 위반의 자유”인 것, 나아가 “이런 언어들이(소설의 내용이 아니라) 소설 장르 자체가 내포하는 정치성의 확대이자, 그것으로부터의 탈주”라고 할 수 있다. 화자가 기억하는 그날은,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었고, “무엇을 얼마나 뿌렸을 때 어느 정도의 결과가 발생하는지 그들은 정확히 예측할 수 없었을”(51쪽) 것으로, “그러므로 그것만으로 이후 누군가 죽고 다치는 것을 그들은 예상하지 못했다”고, “실제로 인화 물질을 들고 건물 일 층으로 들어갔던 이들은 스무 살 안팎의 젊은 여성 네 명이었고, 불을 붙인 사람도 그들이었다.”고(51-52쪽) 말한다. 실제로나 소설 내에서나 그들의 (과거의) 행위에는 80년 5·18의 기억-열정과 연결되어 있을 것인데, 같은 기억에 대해 박솔뫼는 “과거의 진정성 모델과 다른 종류의 미학 정치적 실험, 탐구, 실천을 자신만의 새로운 감각으로 수행(서사화)하고 있는 것이다.


   소설『미래 산책 연습』에서 학교 선생님은 언니(윤미)를 감시해야 한다고 수미에게 말한다. 같은 반 친구였던 ‘정승’은 예전에 용두산 근처 미문화원에 불을 내서 잡혀간 사람 중 한 명이 이모라고 알려준다. ‘나’는 “이미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일이었지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들으니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39쪽) 하고 생각한다. 이 짐짓 모른 체하는 태도는 앞에서 언급했던「그럼 무얼 부르지」의 화자 ‘나’와 짝패를 이룬다. 그것은 프로이트식으로 설명할 때 ‘불쾌로부터의 심리적 도주’라 할 수 있다.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의식되지 않으면서도 작용할 수 있는 의도’, 곧 불쾌의 감정과 결합되어 기억의 재생 시 불쾌를 다시 유발할 수 있는 어던 것에 대한 기억의 거부로 볼 수 있다. 


   소설『미래 산책 연습』에서 출소한 윤미 언니는 집에 온 지 두 달 동안 매일 잠을 자다가 어느 날 광주에 가야겠다고 말한다.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광주,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친구를 만나러 가겠다고 나서는 윤미를 할머니와 엄마는 듣자마자 반대한다. 수미는 윤미 언니와 함께 광주에 간다. 윤미가 만나러 가는 이는 그와 같은 이름의 ‘조윤미’다. 광주의 고등학생 ‘조윤미’는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뉴스를 보고 부산의 대학생인 ‘조윤미’에게 편지를 보냈던 것이다. 출소한 언니를 두고 언니의 인생은 망했고 시집도 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수미는, 광주에 다녀온  후, ‘조윤미’라는 (언니와 같은 이름의) 광주시민이 1980년의 민주화운동에 대해 증언하는 장면을 TV를 통해 본다. 광주청문회 자리에서 조윤미는 그때 자신이 본 것을, 사람이 어떻게 죽었고, 자신의 눈앞에서 누가 죽었는지를 말하고 있었다. 거기까지가 과거의 기억에 관한 일이라면 ‘미래’란 어떤 의미일까.


   소설의 화자는 예전 미문화원이었던 자리에 있는 부산 근대역사관에서, 이곳을 오갔을 미국이라는 곳을 새롭게 꿈꾸었을 학생들을 떠올리고 그들이 어디로 흩어졌을까 생각하다가 그러다 이곳에 불을 붙인 이들을 떠올린다. 그들은 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물으며 미문화원에 불을 붙였다. 직접 불을 붙인 네 명의 젊은 여성 중 한 명은 후에 작가가 되고, 몇 권의 책도 번역했다. 화자는 그가 번역한『밥 딜런 평전』을 읽는다. 그러다 생각한다.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들, 와야 할 것들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지금에서 그것을 지치지 않고 찾아내는 사람들은 이미 미래를 위해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그래서 화자는 “나는 이 책의 번역자와 함께 미문화원을 방화했던 이들은 광주라는 사건을 끊임없이자신에게 묻고 그 이후의 시간의 의미를 묻고 답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한다.”(91쪽)


   다시 반복해서 말하자면, 과거는 현재와 ‘함께 있다.’ 물론 그것이 언제 어디서건 명시적으로 감각할 수 있는 형태로 상존하는 것은 아니다. 드러나 있음으로써 은폐되어 있을 수도 있고, 반대로 다른 이미지들에 가려 은폐되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는 현재 속에 존재한다. 그러나 누구 못지않게 치열하게 자신의 시대를 살았던 황석영 소설『오래된 정원』의 인물 오현우와 한윤희는(그리고 작가 황석영은) 그 과거를 폐기하고 말았음을 앞에서 살핀 바 있다. 황석영 이후의 세대, 80년 이후의 세대 작가인 박솔뫼는 그러나 80년 광주의 기억을 다만 회상 기억으로서만 아니라 그것을 미래와 연결 짓는다. 과거의 사건을 역사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에 대해 발터 벤야민의 사유를 빌리자면, ‘그것이 도대체 어떠했던가’를 인식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위험의 순간에 섬광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과 같은 “어떤 기억을 붙잡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때 박솔뫼는 5·18 ‘이후’ 문학의 책임 윤리를 숙고하는데 매우 중요한 텍스트, 자기 고통을 넘어서서 타인의 고통으로 나아가는 윤리적 에토스, 곧 타인의 고통을 기억하고 증언하고 연대하는 인간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박솔뫼 소설의 인물은 그렇게 기억을 나누어 갖는 일에 함께 참여하고자 하는, 이를테면 ‘함께-있기(being-with)’의 바람 같은 것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잇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5·18 ‘이후’의 작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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